노장의 기베르(Guibert of Nogent)는 이를 "사탄에게 바치는 액체 제물"이라 불렀고, 콜롬바누스(Columbanus)는 이 행위에 대해 최소 2년의 금식을 권했으며, 장 제르송(Jean Gerson)은 치유법으로 고행, 즉 자기 채찍질을 권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서기 4세기와 5세기가 교차하는 시점은 고대의 몰락과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자위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이후 처음 몇 세기 동안 교회는 훨씬 절박한 문제들, 즉 생존, 박해, 심지어 사자와의 싸움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지위가 안정되자, 사상가들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 [18+] 자위에 관한 모든 진실: 사탄에게 바치는 액체 제물 이었나?](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018344959.jpg)
성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 435년경 서거)는 에로틱한 꿈, 밤의 환상, 자위가 모두 정욕의 징후이며, 아무리 경건한 수사라 할지라도 성덕(聖德)으로 가는 길에서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를의 성 카이사르(Caesar of Arles, 5~6세기) 역시 비슷한 견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노장의 기베르(11~12세기)는 이 문제에 관해 극단적인 견해까지 내놓았습니다.
사탄에게 바치는 제물
기베르는 신앙심 없는 한 수사가 흑마법의 비밀을 탐구하고자 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아는 유대인을 찾아갔고, 그 유대인은 차례로 이 (신성하지 못한) 인간을 악마 그 자체에게 소개해 주는 데 동의했습니다.
기베르에 따르면, 사탄은 비밀 지식에 대한 대가로 그 남자에게 정액으로 만든 제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내게 뿌리고, 직접 맛을 보라. 나를 숭배하는 자가 반드시 행해야 할 바로 그것이다"라고 지옥의 군주는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이 기묘한 이야기가 이후 사제들이 강단에서 거듭 인용하며, 자위(오나니즘)의 진짜 목적이 사탄 찬양에 있음을 신도들에게 경고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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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중세의 나체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만큼 엄격하게 검열되지 않았습니다.
6세기에 활동한 성 콜롬바누스도 자위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취했고, 그의 참회 규정집에서는 이 죄를 지은 자들에게 최소 2년의 엄격한 금식을 권고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는 짐승과의 성행위에 대한 처벌과 동일한 수준이었습니다.
추기경급 중죄
어쩌면 랭스 대주교 기 드 로예(Guy of Roye)는 기베르와 콜롬바누스의 저술을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3세기 후에 이르러 자위가 너무나 중대한 죄이므로 오직 주교 본인만이, 그것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사면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다소 급진적인 편이었습니다. 수도원과 종교 생활의 중심지 바깥에서는 자위 문제가 마치 애초에 문제가 아닌 것처럼 다루어졌습니다.
자위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낙인찍는 이는 없었고, 세속 당국 역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참회록(고해 규정집)의 저자들조차 자위를 매우 관대하게 평가했습니다.
9세기의 「파에니텐티알레 비고티아눔(Paenitentiale Bigotianum)」은 자위하는 사제에 대한 처벌로 겨우 3주 금식을 권고했습니다. 「고대 영국 참회록(Old English Penitentiary)」 역시 "자기 손으로 몸을 더듬다 잠든" 행위에 대해 단 20일 금식만을 부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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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이 남근에 상당히 집착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진 속 두 개의 중세 브로치가 그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달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사진: Journal of Archaeology in the Low Countries)
처벌은 일반적으로 남녀 모두 비슷했지만, 물건을 사용한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되었습니다. 베름스의 부르카르트(Burchard of Worms, 10~11세기)는 인공 남성기를 사용한 여성의 자위에 대해 혼자 했다면 1년, 여럿이 함께 했다면 무려 3년의 보속을 권고했습니다.
다른 학문적 저작들은 자위가 모든 성적 죄 가운데 가장 경미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교회 내부에서조차 이토록 사소한 행위가 과연 고해와 보속을 필요로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모두가 한다면?
중세의 자위에 대한 폭넓은 태도는 14세기와 15세기가 교차하는 무렵 장 제르송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는 이 주제에 관해 통째로 하나의 학술 논문(맞습니다, 실제로!)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자위를 중요한 문제로 여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부터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제임스 A. 브런데이지(James A. Brundage)가 저서 「법률, 성과 기독교 사회(Law, Sex and Christian Society)」에서 설명하듯, 제르송은 "소년들은 흔히 5살, 심지어 3살 때부터 자위를 시작한다. 자신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깨달을 만큼 자랐을 때는 이미 자기 쾌락에 깊이 중독되어, 수동적으로라도 계속 성기를 만지작거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세 사상가가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좋은 교우관계, 끊임없는 기도, 잦은 금식, 그리고 고행, 즉 자기 채찍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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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삽화가 몇 명이나 죄스러운 행위에 눈을 뜨게 했을까요? 「데크레툼 그라티아니(Decretum Gratiani)」, 바르톨로메오 디 브레시아 주해, 이탈리아, 1340~1345년 (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소용이 없다면? 제르송에 따르면, 언제든 땅에 침을 뱉으면서 악마를 쫓는 주문을 외우면 됩니다. 그러면 정욕은 잠시 잊힐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