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투안 파르망티에(Antoine Parmentier)의 초상화 (좌측 패널)
감자는 신대륙, 즉 아메리카가 발견된 이후 유럽에 전해진 수많은 작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소박한 덩이줄기가 정확히 언제 구대륙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1570년, 스페인으로의 공식 입국
생각보다 늦었습니다. 감자가 유럽에 처음 도착한 것은 1570년, 스페인 항구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활발했던 대서양 무역로를 타고 배에 실려 온 것이죠.
하지만 공식적인 '입국'과 실제 '식탁 등장' 사이에는 무려 1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감자가 유럽인의 주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먹지 않고 꽃으로 감상하던 시절
외모가 투박하고 볼품없던 이 덩이줄기는 한동안 식용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감자는 약용으로 쓰이거나, 하늘색과 보라빛이 어우러진 예쁜 꽃 때문에 관상용 식물로 재배되곤 했습니다. 정작 그 뿌리에는 훌륭한 영양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던 셈입니다.
파르망티에가 바꾼 감자의 운명
감자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인물은 프랑스의 농학자 앙투안 파르망티에(1737~1813)입니다. 그는 7년전쟁 중 포로 생활을 하며 감자를 먹고 살아남았고, 이후 기근에 허덕이는 프랑스를 구할 작물로 감자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감자 만찬회를 열고, 왕실 앞에서 감자 요리를 선보이는 등 끊임없는 홍보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18세기 후반, 감자는 마침내 편견의 굴레를 벗고 그 뛰어난 미식적·영양학적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의 빵'
값싸고 든든한 식량이었던 감자는 루이 16세로부터 '가난한 이들의 빵'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자 꽃을 머리 장식으로 즐겨 사용했다는 일화도 있을 만큼, 감자는 프랑스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일랜드를 지탱한 주식
유럽에서 감자의 효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가난했던 아일랜드였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굶주림에 내몰린 아일랜드 민중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식이 되었고, 인구 폭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다만 단일 작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훗날 19세기 대기근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