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SOBR 특공대 — 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셴코의 '죽음 부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정적들에게 구타와 투옥, 그리고 강제수용소행을 명령해 왔다. 더욱 완강하게 버티는 상대에게는 '특수신속대응부대(SOBR)', 즉 벨라루스 독재자의 죽음 부대가 찾아갔다.

독재의 시작

1994년 여름, 루카셴코가 벨라루스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이 자리에 딱 맞는 훌륭한 후보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취임 불과 2년여 후, 헌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반발하는 국회의원들을 구타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입을 막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사용해 온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정적들은 영원히 사라져야 했다.

매우 특별한 임무를 위한 부대

이를 위해, 안제이 브제지츠키와 마우고자타 노춘이 저술한 『루카셴코, 러시아의 잠재적 차르』에서 언급했듯이, 다음과 같은 무리가 조직되었다.

대통령의 어떤 명령이라도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고, 반항하는 정치인의 심장(정확히는 뒤통수)을 겨눌 수 있는 무리. 특수신속대응부대(SOBR)라 불린 이 조직은 비밀 부대여야 했지만, 국가 조직 안에서 활동했다.

SOBR 특공대 — 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셴코의  죽음 부대

1994년 루카셴코는 좋은 대통령 후보로 보였지만, 그는 곧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사진 출처: 『루카셴코, 러시아의 잠재적 차르』 제공).

부대 창설 작업은 1996년에 시작되었다. 대원들은 벨라루스 특수부대 군인들 가운데서 몰래 선발되었고, 드미트리 파블리첸코 대령이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전체 작업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서기였던 빅타르 세이만과 내무장관 유리 시바코프가 감독했다.

물론 루카셴코의 처형자들은 평범한 깡패처럼 취급되지 않았다. 벨라루스 기준으로 이들은 진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민스크 근교에는 이들을 위해 특별한 마을까지 건설되었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직업'을 익혔다.

사냥을 나선 SOBR

죽음 부대가 바치카(루카셴코의 별명)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연습' 대상을 선정해야 했다. 차갑게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인원이 부대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선택된 것은 갱단원들과 노숙자들이었다. 즉,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루카셴코 전기의 저자들이 강조하듯, 이렇게 해서 일석이조를 얻었다. 특공대원들은 피에 익숙해졌고, 동시에 벨라루스의 범죄 세계도 청소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실행자 집단이 선발되자, 알렉산드르 그리고리예비치는 가장 위험한 정치적 적들을 처리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들—1999년 봄의 일이다—은 독자적인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SOBR 특공대 — 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셴코의  죽음 부대

뒤통수에 총상. 특수신속대응부대, 즉 루카셴코의 죽음 부대 대원들이 희생자를 죽일 때 사용한 것도 정확히 같은 방식이었다.

반항파 중에는 널리 존경받던 전 내무장관 유리 자하랑카 대령도 있었다. 독재자의 정책에 반대한 그는 독립적인 장교연합을 조직하기로 결심했고, 이 단체는 빠르게 큰 인기를 얻었다.

루카셴코에게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위협을 느꼈고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결정이 내려졌고, 1999년 5월 7일 저녁, 집으로 돌아가던 자하랑카는 신비한 상황 속에서 실종되었다. 이것이 벨라루스 야권 인사들의 일련의 기이한 '실종' 사건의 시작이었다.

3개월 후, 비슷한 운명이 빅토르 한차르에게 닥쳤다. 그는 전 중앙선거위원회 의장이자 대안 선거의 설계자였다. 9월 16일, 그는 친구 아나톨 크라소우스키와 민스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2000년 7월 7일, 체첸에서 돌아오던 기자 드미트리 자바츠키가 민스크 공항에서 '실종'되었다. 그 역시 아마도 특수신속대응부대의 희생자였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야권에 큰 동정을 보이지 않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한때 루카셴코의 개인 카메라맨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러시아 TV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벨라루스의 독재자는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소음기 달린 권총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들이 모두 바치카의 지시로 살해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전 민스크 감옥 소장 올레그 알카예프의 증언이 모든 의문을 불식시켜준다.

파블리첸코 대령이 사형 집행에 쓰이는 소음기 달린 권총을 빌려간 곳이 바로 그의 감옥이었다. 벨라루스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뒤통수에 총을 맞는다. 그런데 대령이 감옥을 방문한 날짜는 항상 또 다른 야권 인사의 '실종' 날짜와 일치했다.

알카예프가 이 사실을 깨닫고 즉시 KGB에 신고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파블리첸코는 신속히 체포되었고,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대통령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끝내 법정에 회부되지 않았다.

루카셴코의 개인적 요청으로 조사는 신속히 종결되었고, 벨라루스 검찰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너무나 많은 불편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소동의 유일한 결과는 세이만의 해임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해를 입지는 않았다. 바치카는 '처벌'로 그를 …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SOBR 특공대 — 벨라루스 독재자 루카셴코의  죽음 부대

2003년 12월 12일, 바르샤바 외무부 건물 앞에서 벨라루스인과 폴란드인들이 벨라루스 '실종자'들의 초상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사진 출처: Bladyniec; CC BY-SA 3.0 라이선스).

파블리첸코와 그의 부하들의 활동에 대한 최종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30명 이상이 이 잔혹한 특공대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민스크의 한 묘지에 몰래 매장되었다. 적어도 2001년 서방으로 도피한 벨라루스 검찰청 전직 수사관 드미트리 피에트루슈키에비치와 알레흐 슬루차크는 그렇게 증언했다. 목숨이 걱정된 올레그 알카예프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참고 자료

안제이 브제지츠키, 마우고자타 노춘, 『루카셴코, 러시아의 잠재적 차르(Lukashenka. The would-be Tsar of Russia)』, SIW Znak,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