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된 전복 세력? 위장한 러시아인? 아니면 유대인? 미로스와프 슈미워(Mirosław Szumiło)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폴란드에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었다.
전후 폴란드사는 연구자들과 독자들 모두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공산 정권의 중추를 이루었던 당 간부들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무려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ładysław Gomułka)조차 학술적인 전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노력해 온 이가 마리아 퀴리-스클로도프스카 대학교(UMCS)의 미로스와프 슈미워다. 폴란드뿐 아니라 러시아의 기록 보관소에서도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전쟁 직후 몇 년간 폴란드 공산주의 엘리트의 집단적 초상을 그려낸다.
지도부의 3분의 1
1948년까지 나라의 운명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결정은 폴란드 노동자당(PPR)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서기국 소속, 단 21명으로 구성된 소수 집단에 의해 내려졌다.
당 권력 핵심부의 3분의 1(21명 중 7명)은 유대계 출신이었으며, 당 지도 조직 전체에서는 35%(30명)를 차지했다. '유데코무나(Żydokomuna)'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 때문에 당은 "유대계 출신 인사들이 현장에서 두드러진 직책에 서지 않도록 하고, 조용한 사무실 자리에 배치하는" 방식을 택하려 했다.
스탈린주의 범죄를 유대인 탓으로 돌리는 러시아 포스터.
이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저마다 다른 태도를 보였다. 로만 잠브로프스키(Roman Zambrowski)는 조상의 종교와 문화를 완전히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대인이지만, 스스로를 폴란드인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유대 민족의 어떤 특성에 경악하기도 한다. 나는 폴란드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폴란드 노동운동 속에서 자랐다."
힐라리 민츠(Hilary Minc)는 1930년에 자신을 폴란드인이라고 선언했고, 레온 카스만(Leon Kasman)은 유대계 폴란드인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가족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동화되어 있었으며, 이디시어를 모르았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소련에서 작성한 개인 신상서류에는 세 사람 모두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기재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소련에서는 제3제국과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에서 정체성이 아니라 '피'가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데코무나인가, 스탈린 숭배인가?
반면 시온주의 활동가 가문 출신인 야쿠프 베르만(Jakub Berman)은 당의 허락을 받아 유대교식 결혼식까지 올렸다. 정치 활동 초기에 학술 사회주의 청년단체 '포호드냐(Pochodnia, 횃불)'에 소속되었던 옥스(Oks) 역시 베르만처럼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선언했다. 안토니 알스테르(Antoni Alster)는 스스로를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이라 칭했고, 이디시어에 능통했으며 전쟁 후에도 누힘(Nuchim)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미로스와프 슈미워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국적 선언은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국제주의자였고, 흔히 '소비에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녔다. 폴란드 노동자당의 모든 간부는 '직업 혁명가'로서 코민테른의 노선을 따라 사고하고 행동해야 했다.
'믿음 깊은' 공산주의자였던 그들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고향'인 소비에트 연방에 경건한 태도를 취했다. 당 속어에서 모스크바를 '메카'라고 불렀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글은 《역사 분기지(Kwartalnik Historyczny)》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폴란드 공산주의 엘리트는 규모는 작지만 구성원의 배경은 매우 다양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민족적·사회적 출신, 교육 수준, 인생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그들은 "'인민 정권' 강화 사업에서 한결같이 협력했다." 이들 가운데 유대계 출신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폴란드 노동자당 지도 조직에서 다수를 이루지는 않았다.
출처
Mirosław Szumiło, 폴란드 노동자당의 지도부(1944~1948): 역사적·사회학적 초상, 《Kwartalnik Historyczny》 제121권(2014), 제2호, 287~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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