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죽음의 천사 클리닉: 나치가 장애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곳

1940년, 빈에 '암 슈피겔그룬트(Am Spiegelgrund)' 클리닉이 문을 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아이들이 이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병원'이라는 이름은 기만적인 위장에 불과했습니다. 벽돌 담장 안에서 어린 환자들의 죽음을 가른 것은 오직 진단명뿐이었습니다. 병력 기록에 '백치'라는 단어 하나가 적히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1940년 7월 24일, 암 슈피겔그룬트의 문은 T4 작전의 일환으로 이송된 '환자들'에게 열렸습니다. 아홉 개 건물로 이루어진 이 시설에는 640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은 제3제국의 전문가들이 정한 '건전한 시민'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장애를 지녔거나, 신체적 결함이 있거나, 아니면 단지… 말썽꾸러기였다는 이유로요! 유대인 혈통 역시 어린아이를 '입원'시키기에 충분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암 슈피겔그룬트 직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이들이 나치 체제 속 삶에 적응할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짐작하듯이, 나치 이념에 반하는 사고의 흔적, 낫지 않는 병, 부모의 알코올 중독, 다른 표현형까지도 '부정적 진단'을 내리기에 더없이 좋은 근거가 되었습니다.

처형 대상으로 낙인찍히다

'제국의 이상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판단된 아이들은 국가의 짐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금방 드러난 사실은, 이 시설이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암 슈피겔그룬트는 '결함'을 제거하기 위해 설계된 우생학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실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초기 평가를 마친 아이들은 세 가지 처분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관찰 대상으로 분류되거나, 시설 밖 생활을 허가받거나, 아니면 안락사 처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병든' 아이들, 그리고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된 아이들은 암 슈피겔그룬트에서 독살 또는 고의적인 방임과 고문을 통해 살해되었고, 이후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치명적인 질병 탓으로 돌려졌습니다. 사망 원인으로 가장 자주 보고된 것은 폐렴, 혹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치명적인 근육 경련이었습니다.

죽음의 천사 클리닉: 나치가 장애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곳

소아병원의 놀이방. 1921년


실제 이곳에서 벌어진 소위 '치료'는 전기 충격, 내장이 마비될 때까지 얼음장 같은 찬물에 담그는 고문, 황 용액 주사 등이었습니다. 황 주사는 여러 후유증을 일으켰는데, 극소수의 생존자들은 하지의 통증과 운동 능력 저하를 호소했습니다.

어린 환자들을 상대로 아포모르핀, 페노바르비탈, 각종 진정제의 효과가 실험되었습니다. '과학자' 행세하던 직원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병들고,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구경만 했습니다. 일부 아이들은 백신 실험을 위해 결핵균에 고의적으로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1942년부터 시설장을 맡은 에른스트 일링(Ernst Illing)의 증언에 따르면, 알약 형태의 바르비투레이트를 투약한 뒤 아이들이 죽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매우 달랐습니다.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며칠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일링 재임 기간에는 주로 루미날(luminal)이나 베로날(veronal) 알약을 갈아서 설탕에 섞어 먹기 좋게 만든 뒤 투여하는 방식으로 살해가 자행되었습니다.

죽음의 천사 클리닉: 나치가 장애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곳

이념과 과학의 이름으로

그러나 죽음조차 암 슈피겔그룬트에서 벌어진 비인간화의 마지막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죽은 아이들은 해부대에 올려져 토막이 났고, '연구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포르말린에 담겼습니다. 이 분야를 전담했던 인물 중 한 명이 하인리히 그로스(Heinrich Gross) 박사였습니다. 그는 광범위한 실험을 위해 아이들의 뇌 조직 절편을 대량으로 수집했습니다. 이 기괴한 행위는 나치 진영으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고, 그는 심지어 과학·예술 분야의 공로로 오스트리아 1등급 십자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죽음의 천사 클리닉: 나치가 장애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곳

슈피겔그룬트 재판


잔혹한 이 관행에 부모들 스스로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물든 일부 부모들은 장애를 지닌 자식을 '전문가들'에게 넘겼습니다. 이 범죄적 시스템의 첫 번째 희생자는 게르하르트 크레츠슈마르(Gerhard Kretschmar)로, 심각한 발달 결함을 이유로 가해자들에게 넘겨진 아이였습니다.

에디트 셰퍼(Edith Sheffer)의 저서 『아스페르거의 아이들』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부모는 아들을 '괴물'이라 불렀다. 그리고 히틀러에게 살해 허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퓌러는 자신의 주치의 카를 브란트(Karl Brandt)를 라이프치히로 보내 아기를 진찰하게 했고, 브란트는 다섯 달 된 게르하르트를 '백치'라고 선언했다. 아이에게 바르비투레이트가 투여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는 3~5일 뒤인 1939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 교회 기록에는 그의 죽음이 '심부전'으로 기재되었다.

이 사건은 제국 내 '유해한' 존재들을 제거하는 일련의 작전의 서막이 되었으며, 암 슈피겔그룬트에서만 거의 800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나치의 우생학이 시행된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으며, 병든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암 슈피겔그룬트 클리닉은 '완벽한 민족'이라는 발상이 제국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급진적 정책이 광범위한 선전과 결합하면 어떤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T4 안락사 작전은 정신병원에 수용된 성인들도 '제거'했습니다. 물론 의사들이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한 우발적 사망으로 위장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대량 학살까지는 단 한 걸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최초의 가스실이 바로 이 작전의 일환으로 설계되었으니까요.

죽음의 천사 클리닉: 나치가 장애 아동을 고문하고 살해한 곳

참고 문헌

  • Sheffer, E., 『아스페르거의 아이들: 제3제국을 위해 일한 의학』, 포즈난 출판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