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점령지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장본인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이웃이 어느새 살인마로 — 점령 폴란드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의 비밀

독일군은 어떻게 광활한 점령지 폴란드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대량 학살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요? 한때 평범한 시민이던 그들이 짐승처럼 변해버린 과정은 홀로코스트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단면 중 하나입니다.

홀로코스트를 통계적 관점에서 간략히 정리해 보면, 1942년 3월까지 폴란드 유대인의 약 25%가 이미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압도적 다수는 아직 게토와 작은 마을, 촌락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3년 동부 전선이 교착 상태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강제 수용소는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처벌 체계와 수용동, 그리고 가스실과 화장터 같은 집단 살해 시설이 경비병들의 통제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시, 마을, 게토에서의 '절멸 작전'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대량 학살 임무를 수행하려면 막대한 숫자의 실행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창설된 것이 바로 함부르크 출신 제101예비경찰대대였습니다. 대원들은 1940년대 독일 도시의 평범한 주민들과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저마다 습관과 사고방식, 결함을 지닌 지극히 보통의 시민이었습니다. 최전선에 나갈 나이는 지났지만, 수용소로 향하는 강제 이송 작전, 그리고 이후에는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하기에는 충분한 인력이었습니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이들은 결코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함부르크, 1940년 5월 — 기차역의 작별

제101예비경찰대대의 장교들이 점령지 폴란드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어. 당신은 전쟁터로 가는 거잖아."
"걱정 마세요. 폴란드에 가는 길입니다. 곧 그곳에 평화와 질서를 세우고 올 테니까. 폴란드인들에게 여기 누가 주인인지 보여줄 겁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질서를 지키는 경찰일 뿐이에요. 전쟁은 멀리 있고, 나는 금방 돌아옵니다."

이는 폴란드로 떠나기 직전, 대대 소속 한 경찰관이 아내와 나눴을 수도 있는 작별 인사입니다. 어쩌면 그는 빠른 귀환을 기대하며 출발했을지도 모릅니다. 기차역에서 이미 가족과 독일 맥주, 소시지가 그리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중년의 평범한 경찰관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후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1942년 7월, 비우고라이 근교 요제푸프 — 양심과 명령 사이

제101예비경찰대대는 약 2,000명의 유대인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수용소로 호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청소'하는 임무였습니다.

트랩 소령은 장교들을 소집하여 명령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일반 대원들은 계획된 작전의 세부 사항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업인이자 예비역 중위인 하인츠 부흐만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결코 무고한 여성과 아이들을 총살하는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소령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수송 감독 업무로 옮겼습니다. 경찰 대열의 대원들에게도 임무를 사양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를 선택한 이는 단 열두 명뿐이었습니다. 트랩 소령 역시 흔들렸지만, 되뇌는 말은 늘 같았습니다. '명령은 명령이다.'

트랩이 양심과 씨름하는 동안, 부사관들은 이미 대원들에게 작전 요령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대대 의무관 쇠네펠더 박사는 어깨 위쪽 인체 윤곽을 스케치하고, 총검으로 먼저 접촉한 뒤 정확한 겨냥 지점을 짚어 보였습니다.

점령지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장본인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 이었다

첫 번째 유대인 무리가 숲 가장자리로 끌려왔을 때, 경찰관 한 명이 각각 다가가 숲 속 깊은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서 카머 하사는 유대인들에게 한 줄로 엎드리라고 명했고, 각 경찰관은 지시받은 대로 목덜미를 겨냥해 총을 쐈습니다. 이 장면은 되풀이되었고, 살인자들은 시간도, 살해한 사람의 수도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트랩 소령은 다시 한번 작전 탈퇴의 기회를 제시했고, 또 십수 명이 대열에서 물러섰습니다. 이후에도 소규모 무리가 카머를 찾아 임무 면제를 요청했으며, 일부는 스스로 발사를 회피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명령대로 행동했습니다.

모든 유대인을 살해한 뒤 대대는 비우고라이로 복귀했습니다. 보드카가 넘쳐흘렀고, 트랩은 자신의 가치 체계를 달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체제' 탓으로 돌렸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작전에 투입된 500명의 평범하고 온순한 남성 중, 명령을 듣자마자 임무 변경을 요청한 이는 왜 겨우 열두 명에 불과했을까요? 그들의 선택을 '거역하기 어려운 명령'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혹은 집단 소속감과, 거부했을 때 따라올 동료들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붙잡았던 걸까요? 사회 시스템 자체가 오작동한 것일까요? 일부는 나치 이념상 유대인은 조만간 제거될 운명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임무를 거부했든 아니든, 요제푸프에서 저지른 만행은 대대 전체에 상흔을 남겼습니다. 처형 직후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카머 하사가 내뱉은 말입니다. '다시 해야 한다면 내가 미쳐 버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고 했나요? 이후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제101예비경찰대대는(먼저 다른 임무로 차출된 대원들을 제외하고) 잔혹하고 효율적인 살인 기계로 변모해 갔습니다.

그리고 요제푸프의 참극은 대량 학살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참고 자료

  • Christopher R. Browning, 『Ordinary Men: Reserve Police Battalion 101 and the Final Solution in Poland』 (Rebi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