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나아가는 길, 그 위대한 희생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 비행에 도전하던 시절, 수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늘을 향했습니다. 사진은 1967년 아폴로 선실 시뮬레이터 안의 승무원 모습입니다.
"만약 우리가 죽게 된다면,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우주 정복은 그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이자 유인 달 착륙 임무 후보였던 버질 그리섬(Virgil Grissom)이 남긴 말입니다.
톰 울프(Tom Wolfe)는 저서 『옳은 것들, 우주로 간 카우보이』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 미국에게 우주비행사들은 러시아와의 냉전 대결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케네디 대통령의 정치적 부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재편된 '새로운 지평'의 개척자이자, 대통령의 두려움 없는 정찰병, 달 경쟁에서의 힘이자 강대국의 무기였습니다. 아니, 그들은 더 이상 단순한 시험 파일럿도, 결코 실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 비행에 도전하던 시절, 수많은 우주비행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진은 1967년 아폴로 선실 시뮬레이터 안의 승무원 일부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길에는 자연의 한계에 맞서고 새로운 개척지를 향한 살벌한 경쟁에 뛰어든 이들의 희생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험의 크기와 죽음의 가능성은 인류 발전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높았습니다. 그리섬 본인이 그 사실을 몸소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 좀 꺼내 줘!" — 아폴로 1호 화재 참사
1967년 1월 27일 저녁,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 발사장에서 곧 우주로 날아오를 예정이던 아폴로 우주선의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우주선은 새턴 IB(Saturn IB) 운반 로켓의 최상단에 장착되어 있었고, 선실에는 세 명의 승무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H. 화이트(Edward H. White), 로저 B. 채피(Roger B. Chaffee), 그리고 버질 '거스' 그리섬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발사 전 단계의 절차들을 연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선실에는 순수 산소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는 표준적인 절차였습니다. 낮은 기압 상태의 산소를 사용하면 아폴로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더 많은 연료를 싣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선장 그리섬을 비롯해 화이트와 채피는 자리에 앉아 발사 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잔고장이 끊이지 않았고, 우주선과 관제센터 간의 통신도 자꾸 끊겼습니다. 훈련 종료 10분 전, 로저 채피가 외쳤습니다. "불이야, 타는 냄새가 나." 몇 초 뒤 화이트가 소리쳤습니다. "선실에 불이 났어!" 이후 채피의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좀 꺼내 줘!"

아폴로 발사 전 시험 한 차례가 세 명의 승무원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사진은 아폴로 1호 선실 내부의 그을린 잔해입니다.
관제센터의 관계자들은 우주선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구름을 발견했습니다. 직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구조에 나섰습니다. 잠시 후 아폴로 외부의 불은 꺼졌고, 기술자들은 선실 해치 잠금 장치를 여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해치를 열었을 때, 내부에서 열파와 연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곧 그들의 눈앞에는 그을린 선실 내부와 의자에 앉아 있는 채 타버린 우주비행사들의 시신이 펼쳐졌습니다.
조사 결과, 화재의 원인은 그리섬 의자 앞쪽 선실 왼편 배선 하네스의 합선이었습니다. 발생한 전기 아크가 순수 산소 환경 속에서 격렬한 화재로 번졌습니다. 선실 안에서 불은 빠르게 확산되었고, 온도는 섭씨 760도까지 치솟았으며, 엄청난 압력이 선체 세 곳을 파열시켰습니다. 탈출에 실패한 우주비행사들은 화상과 유독가스 중독으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숨진 참사에도 달 착륙 준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폴로 계획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톰 울프가 『옳은 것들, 우주로 간 카우보이』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나는 이 나라가 역량을 다해, 이번 10년이 끝나기 전에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큰 감동을 줄 수 없으며, 우주라는 먼 영역의 탐구에 있어 이보다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어렵고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드는 계획도 없을 것입니다.
참사 이후 이루어진 것은 아폴로 선실의 개조였습니다. 폭발식 해치가 추가되었고, 전선의 배선과 절연 방식, 선실 내 대기 조성이 변경되었습니다.
펼쳐지지 않은 낙하산 — 소유즈 1호 추락 사고
비극이 일어난 지 몇 달 뒤, 소련의 소유즈 1호(Soyuz 1)가 추락했습니다. 1967년 4월 23일, 블라디미르 코마로프(Vladimir Komarov) 대령 단독 승무로 발사된 소유즈 1호는 우주에서 소유즈 2호와 도킹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 작전은 소련 기술의 또 하나의 위대한 성공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선은 발사 첫날부터 고장에 시달렸습니다.
먼저 태양전지 패널 하나가 고장 나면서 대부분의 시스템을 가동할 에너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어서 자세 제어 센서, 냉각 장치, 고도계, 안정화 시스템이 잇달아 작동을 멈췄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 소유즈의 발사는 취소되었고, 코마로프에게는 귀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아폴로 1호 승무원의 죽음 이후 몇 달 뒤, 소련 역시 자국의 우주 비극을 겪었습니다. 소유즈 시리즈의 첫 임무는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목숨을 잃는 참사로 끝났습니다. 사진은 우주비행사를 기리는 우표입니다.
지구 19회째 공전 도중, 코마로프가 탑승한 소유즈 귀환선이 우주선에서 분리되어 궤도에서 하강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도 7km 지점에서 작은 파일럿 낙하산이 전개되었고, 이어 감속용 낙하산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메인 낙하산은 끝내 꺼내지 못했습니다. 선실은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비 낙하산이 전개되었지만, 감속용 낙하산 줄에 얽혀 버렸습니다.
얽힌 낙하산을 끌고 내려온 소유즈 귀환선은 시속 644km의 속도로 지면에 충돌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충격으로 감속 로켓이 폭발했고, 화염이 잔해를 태웠습니다. 코마로프는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담긴 유품함은 크렘린 성벽에 안치되었습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모스크바로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코마로프는 우리 중 한 명이었다"고 적으며 말입니다.
우주복 없이 돌아온 승무원 — 소유즈 11호 감압 사고
1971년 6월 6일, 게오르기 도브로볼스키(Georgy Dobrovolsky, 선장), 빅토르 파차예프(Viktor Patsayev), 블라디슬라프 볼코프(Vladislav Volkov) 세 명의 승무원을 태운 소유즈 11호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되었습니다. 소유즈 11호는 살류트 1호(Salyut 1) 우주정거장에 도킹했고, 우주비행사들은 그곳에서 22일을 보내며 우주 체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6월 29일, 승무원들은 임무를 마치고 우주선에 탑승해 정거장에서 분리했습니다. 소유즈호는 지구로 접근해 착륙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1시 35분(이미 6월 30일이었다), 선장이 감속 엔진을 가동했고, 우주선은 여러 부분으로 분리된 뒤 귀환선이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낙하산들은 정확한 순간에 펼쳐졌고, 자동 장치가 열차폐막을 분리했으며, 귀환선은 무사히 지면에 닿았습니다. 그러나 환영 인파가 캡슐에 다가가 해치를 열었을 때, 의자에 앉아 있는 우주비행사들을 발견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볼코프, 도브로볼스키, 파차예프가 탑승한 우주선은 1971년 6월 6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되었습니다. 1971년 6월 29일 지구 귀환 과정에서 세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사 결과, 지구 상공 100~120km 지점에서 선실의 기압이 급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선실이 소유즈호에서 분리되는 과정에서 외부로 통하는 밸브 하나가 손상되었고(작은 볼이 튕겨 나갔습니다), 밸브가 열리면서 선실을 채운 혼합 기체와 외부 환경 사이의 압력 평형이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지구 상공 5km에서 일어나야 했다는 점입니다.
급격한 감압으로 우주비행사들은 질식했습니다. 감압은 소화기관 내 가스 팽창, 혈압 상승을 일으켰고, 마침내 체내 수분이 끓어버렸습니다. 승무원의 죽음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주복 대신 평범한 작업복만 입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꺼운 전문 우주복을 입은 세 사람을 수용할 공간이 선실에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고 이후 밸브는 재설계되었고, 우주복 착용이 의무화되었습니다.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진 참사 — 챌린저 호 폭발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가 플로리다 우주센터에서 다음 임무를 위해 발사될 예정이었습니다. 불과 3년 전에 취역한 이 신형 우주선의 열 번째 우주 비행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관제센터에는 47세 군 조종사 프랜시스 스코비(Francis Scobee)가 이끄는 일곱 명의 승무원이 자리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인 37세 주디스 레즈닉(Judith Resnik)도 함께했고, 1만 1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Christa McAuliffe)도 탑승했습니다. 그녀는 챌린저호 안에서 학생들에게 우주에서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1월 27일 밤부터 28일까지 플로리다는 이례적으로 추웠습니다. 기온은 영하 4.4도까지 떨어졌고 얼어붙는 듯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발사대에 세워진 우주선은 대형 연료 탱크와 두 개의 측면 부스터 로켓과 연결된 채 얼음층으로 뒤덮였습니다.
발사 전 기술진은 얼음을 제거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1월 28일 오전 11시 38분경, 챌린저의 메인 엔진이 점화되었고 이어 부스터 로켓이 발화했습니다. 15층 건물 높이의 로켓이 지면을 밀고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관람석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수백만 명이 TV 화면으로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발사 1초도 지나지 않아 오른쪽 부스터 로켓의 접합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 불꽃이 치솟았습니다. 0.01초가 지날 때마다 화염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고온과 비행 중 가속 부하가 로켓 하부 고정 장치를 약화시켰고, 결국 로켓이 주 연료 탱크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뒤틀린 로켓이 탱크를 들이받으면서 연료가 누출되었고, 충돌 지점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시속 3천 km로 비행하던 우주선 주위에 거대한 화염구가 형성되었고, 기체 전체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크고 작은 파편들은 하얀 연기 꼬리를 남기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발사 장면을 중계하던 TV에는 케이프커내버럴에 모였던 관중들의 겁에 질린 얼굴이 비췄습니다.
흥미롭게도 승무원 선실은 폭발을 견뎌냈습니다. 선실은 전선 다발을 끌고 25초 동안 더 상승해 고도 19km에 도달했습니다. 이후 추락하기 시작해 2분 45초 뒤 해수면에 충돌하며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일곱 명의 우주비행사는 선실이 바다에 부딪히는 순간에야 목숨을 잃었습니다. 승무원 전원의 시신(정확히는 그 파편)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중 그렉 자비스(Greg Jarvis)의 유해는 4월 20일에야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사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낮은 기온 때문에 오른쪽 로켓의 세그먼트 사이 밀봉 링(O-ring)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누출된 틈으로 내부 연료가 타오르는 불꽃이 새어 나온 것입니다.

1986년 발사 직후 폭발하는 챌린저 호. 승무원들은 폭발 자체는 생존했지만, 이후 기체 붕괴와 해수면 충돌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작은 폼 조각이 만든 참사 — 컬럼비아 호 공중 분해
2003년 2월 1일, 또 다른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Columbia)호가 비극을 맞았습니다. 우주에서 두 주간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승무원들은 그동안 의학 및 생물학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오후 2시 44분, 우주선이 대기권에 진입했습니다. 케네디 우주센터의 교통 관제센터는 불길한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센서들이 왼쪽 날개의 이상을 감지했고, 이어 그 날개에 연결된 두 타이어의 공기압 상실이 보고되었습니다. 오후 3시경, 텍사스의 목격자들은 우주선이 하늘에 남긴 궤적이 점점 잘게 부서지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몇 분 뒤, 각종 크기의 우주선 파편들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뒤틀리고 그을린 선체 부품, 탱크, 외피의 세라믹 타일들. 인체의 잔해도 함께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지역에 흩어졌습니다.
여성 두 명과 남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일곱 명의 승무원 전원이 숨졌습니다. 여기에는 우주에 간 최초의 이스라엘인인 일란 라몬(Ilan Ramon) 대령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후 3시, 왼쪽 날개가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갔고, 잠시 뒤 우주선은 공중 분해되었습니다. 챌린저 때와 마찬가지로 승무원 선실은 생존했습니다. 그러나 선실에서 공기가 새어 나가기 시작하자 승무원들은 빠르게 의식을 잃었습니다. 헬멧을 잠그고 장갑을 착용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불과 몇 초 뒤, 우주비행사들의 생명 징후는 멎고 말았습니다.
조사 결과, 우주선이 공중 분해된 원인은 왼쪽 날개 앞전 열차폐막의 손상이었습니다. 1월 16일 컬럼비아 발사 당시 외부 연료 탱크에서 단열 폼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것이 왼쪽 날개를 강타해 지름 25cm의 구멍을 뚫었습니다. 두 주 뒤 지구로 귀환하던 우주선에서 뜨거운 가스가 그 부위의 외피를 녹이며 내부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선체 내부를 파괴했습니다. 우주선은 조종 능력을 잃었고, 공기역학적 힘이 그것을 찢어버렸습니다.

궤도에 있는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의 승무원들. 그들 중 누구도 이 임무에서 산 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주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죽음의 시험이자,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초강대국' 간 냉전 대립 전체를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우주 물체를 궤도에 올리는 경쟁이 특정 강대국이 궁극적이고 무적의 파괴력을 보유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예비전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톰 울프는 『옳은 것들, 우주로 간 카우보이』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양대 강국 모두 이러한 '파괴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대중이 처음에 생각한 것은 핵탄두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능력, 즉 전 지구적 위협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파괴는 가장 먼저 개개인의 인간에게 닿았습니다.
참고 문헌
- Marek Jarosiński, A Scream in Space, Scientific and Technical Publishing House, Warsaw 1991.
- Krzysztof Kanawka, Ten years after the Columbia disaster, [accessed on June 13, 2018].
- Tom Wolfe, The Right Stuff, Agora, Warsaw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