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계를 넘다: 시체 조각품과 닥터 데스
도발적인 예술은 이제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이 다소 섬뜩하고 병리학적이라면 어떨까? 과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1977년, 독일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귄터 폰 하겐스(Gunther von Hagens)는 훗날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이라 불리게 된 기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수십 년 후, 그가 만든 '시체 무용단'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귄터 폰 하겐스, 그의 생애
그는 1945년, 당시 독일 점령하에 있던 스칼미에지체(Skalmierzyce)에서 SS 부대 요리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부모와 함께 폴란드를 떠나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이주했다.
1965년 예나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전까지 간호사로 일하며 시신 운반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에 깊이 관여하면서 감옥에 갇혔고, 결국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2년 후, 그는 정치범들과 함께 서독 정부가 지불한 몸값으로 석방되어 자유를 되찾았다.
이후 뤼베크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하이델베르크에서 마취과 및 응급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곳에서 해부·병리 연구소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는데, 이 분야는 그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햄 써는 기계에서 온 영감
연구소에서 조교로 일하는 동안, 폰 하겐스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왜 의학에서 사용되는 장기나 조직 표본은 플라스틱 블록이나 포르말린 속에 박제되어야 하는가? 그러던 중 그는 한편으로는 천재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로 논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플라스틱을 표본(장기) 내부에 직접 주입하여 안팎으로부터 보존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보존된 장기와 조직은 훨씬 큰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학생들은 표면을 직접 만져보며 정확한 구조를 익힐 수 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사람 신장의 연속 표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파라핀 박매 방식으로 신장을 잘게 썰어내는 작업은 너무 번거로웠습니다. 저는 50장마다 하나씩만 필요했으니까요.
대학 상점에서 점원이 햄을 썰어주는 것을 보던 순간, 소시지 절단기로 신장을 썰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 투자 제안서에서 '회전 절단기'라고 명명한 이 장치가 최초의 플라스티네이션 투자였습니다.
신장 절편을 액체 아크릴(플렉시글라스)에 넣어 박매했습니다. 경화제를 첨가할 때 발생하는 공기 방울은 진공으로 제거해야 했습니다.
플라스티네이션 — 죽음을 멈추다
이후 폰 하겐스는 혁신적인 이 기법을 완성하기 위해 후속 단계들을 꼼꼼히 다듬어 갔다. 플라스티네이션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신체 조직에서 수분과 지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신은 25도 섭씨의 차가운 아세톤 욕조에 담긴다. 이상적인 용매인 아세톤은 먼저 인체 조직의 물을 대체하고, 이어서 지방까지 대체한다.
그다음 시신은 특수 진공 탱크에 넣어진다. 이 탱크는 앞선 과정에서 조직에 축적된 아세톤을 모두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개별 장기 또는 시신 전체가 적절한 플라스틱, 즉 폴리머 수지에 담근다. 이 수지의 성분은 폰 하겐스 박사의 철저한 비밀이다. 이렇게 준비된 표본은 특수 가스 챔버에서 자외선으로 경화되는데, 이 가스의 구성 역시 비밀에 부쳐진다.
플라스티네이션의 마지막 단계는 적절한 염료로 조직과 장기를 착색하는 것이다.
전체 과정에는 무려 1년이 걸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길어지기도 한다. 코끼리의 플라스티네이션에는 3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기린은 그보다 조금 짧았다. 이 복잡한 과정 덕분에 폰 하겐스는 어떤 의미에서 죽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는 인체 유해가 부패하지 않고 오랜 세월 훌륭한 상태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논란의 예술
귄터 폰 하겐스의 발명과 활동이 순수한 연구 목적에 머물렀다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과학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의과대학에 기증해 왔고, 미래의 의사들이 실제 신체로 해부학을 배우도록 도왔다. 이 분야에서 폰 하겐스의 공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갔다. 1995년, 그는 인체 시신으로 만든 플라스티네이트를 선보이는 세계 최초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바디 월즈(Body Worlds)' 전시는 전 세계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는 동시에, 그 이상으로 거센 논란을 낳았다.
2003년 뮌헨에서 열린 전시회는 법정 공방으로 끝났다. 바이에른 법률에 따르면 시신은 사망 후 96시간 이내에 매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과학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예외).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폰 하겐스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플라스티네이트하여 전시회의 한 장면(scene)의 요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사형수의 시신으로 만든 플라스티네이트가 전시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과학적 목적, 그리고 그 너머
피부 없이 순환계가 드러난 채 예술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체 시신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과학과 호기심이 끝나고 예술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확실한 것은, 이 전시회가 인체를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전시물은 인체의 각 계통과 장기를 보여준다. 흡연자의 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가 어떤 모습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눈알이나 심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이곳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폰 하겐스는 긴 세월의 작업 동안 똑같은 심장 두 개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2006년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개봉 이후, 플라스티네이션과 폰 하겐스의 '시체 조각품'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영화의 한 장면은 마이애미의 바디 월즈 전시회에서 펼쳐지는데, 스크린에는 말을 타는 사람들, 포커를 하는 유명 인물들의 플라스티네이트가 선명하게 등장한다.
폴란드의 거절
2005년, 귄터 폰 하겐스는 루부슈 주 시에니아바 자르스카(Sieniawa Żarska)에 있는 국영 농장의 유휴 건물을 매입하려 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인체 시신으로 플라스티네이트를 생산하는 공장과, 이를 위한 거대한 보관창고가 들어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각 반발했다. 결국 폴란드 당국은 이 논란성 있는 투자를 허가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즈난과 바르샤바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두 차례의 바디 월즈 전시회 개최도 거부당했다. 그 결정은 종교적·이념적 문제와 시신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설명되었다. 흥미롭게도 영국에서는 하겐스의 플라스티네이트가 높은 평가를 받아, 현지 보건당국과 적십자가 기증자를 찾고 있기까지 한다.
'닥터 데스'
1980년대부터 귄터 폰 하겐스는 과학적 목적의 플라스티네이트 제작 회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그의 시설은 독일 구벤(Guben)을 비롯해 중국과 키르기스스탄에도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키르기스스탄에서는 1999년부터 국립의과대학 플라스티네이션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폰 하겐스는 모든 플라스티네이트 시신이 기증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확보되었다고 주장한다. 잠재적 기증자가 등록할 수 있는 특별한 웹사이트도 오랫동안 운영되어 왔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사망 후 자신의 몸이 전시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시회 입구에서 관람객은 그가 남긴 짧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바디 월즈 전시회는 관람객에게 붙잡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죽음 이후 플라스티네이트된 몸은 영혼의 부재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플라스티네이션은 개별적인 애도의 대상이었던 몸을 우리가 존중하는 대상으로 바꿉니다, 배우고 시야를 넓히며 인식의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해줍니다.
바디 월즈가 계몽과 성찰, 나아가 철학적·종교적 성격의 자기 발견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관람자의 출신과 삶의 철학에 관계없이 열려 있는 해석의 공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