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하임 다리 위의 비극
1231년 9월 16일, 바이에른 공작 루트비히 1세 비텔스바흐(Ludwig I Wittelsbach)가 켈하임에서 목숨을 잃었다. 독일 중세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고용한 암살자가 있었던 걸까?
사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 불운한 아침, 켈하임 시내 다리 위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단검으로 바이에른 공작이자 제국의 핵심 인물이었던 루트비히 1세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흥분한 목격자들이 곧바로 살인범을 죽여 버려 의뢰인을 확인할 수 없었던 사례도 있었다. 1306년 올로모우츠에서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 3세를 살해한 병사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나 루트비히 1세의 살인범은 피해자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다. 고문을 받으러 끌려간 그는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누군가의 지시였는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문 끝에 숨을 거두었고, 비밀은 무덤까지 가져갔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널리 '암살단(Assassins)', 즉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 분파의 소속으로 여겼다.
완벽한 킬러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살인 방식이었다. 암살단은 단검과 칼을 이용한 암살을 즐겨 사용했으며, 바그다드 칼리프 알무스타르시드, 예루살렘 왕 몽페라토의 콘라드 같은 유력 인물들이 그들의 희생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둘째, 잔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살인범이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는 점이다.

알라무트. 암살단의 유명한 요새다.
암살단이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일화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지도자의 명령이라면 심연 속으로 뛰어들어 그 자리에서 죽음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1194년 '산의 노인'이라 불리는 암살단 지도자를 방문한 샹파뉴의 앙리(리처드 사자심왕의 조카)는 바로 그런 '쇼'를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살인범은 엘부르즈산맥의 알라무트 요새, 즉 암살단의 본거지에서 먼 길을 떠나 바이에른 켈하임까지 가서 루트비히 비텔스바흐를 죽여야 했을까? 공작은 한때 제5차 십자군에 참전해 이집트에서 무슬림들과 싸운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적인 9월 16일로부터 10년 전인 1221년의 일이었고, 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너무나 편리한 죽음
루트비히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15세의 오토 2세 비텔스바흐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의심했다. 그러나 황제 프리드리히 2세 호엔슈타우펜과 갈등을 빚으면서 아버지 살해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와 피해자 사이의 나쁜 관계는 비밀이 아니었다. 루트비히 비텔스바흐는 프리드리히의 은혜(예컨대 아들을 라인 팔츠 상속녀와 혼인시켜 준 것)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부터 황제와 교황의 분쟁에서 교황의 편에 섰다. 1231년 9월 16일, 프리드리히 2세가 성가신 적수 하나를 잃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5차 십자군. 바로 이때 황제 프리드리히는 암살단과 첫 접촉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기독교 세계 최고 통치자를 자처하던 황제는 13세기 유럽 군주들 가운데 이슬람에 대해 독특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아랍어를 구사했고 사라센 경호대를 거느렸다. 영국의 중세사학자 스티븐 런시먼은 그에 대해 "독일인과 노르만의 혼혈로 태어났지만, 양육 면에서는 진정한 시칠리아인, 즉 반은 그리스, 반은 아랍인 이 섬의 아이였다"고 평했다.
수상한 접촉
중요한 것은 그가 암살단과도 접촉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1227년 프리드리히 2세의 사절이 주군의 서한과 함께 알라무트 요새에 나타났다. 선물로 8만 디나르도 함께 보냈다. 이어 1232년 7월에는 황제가 시칠리아 궁정에서 암살단 사절단을 접대했다. 이러한 접촉에는 정치적 명분이 있었다. 예루살렘 왕국 상속녀와 결혼한 프리드리히 2세는 중동 정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실제로 십자군에도 참여했다) 암살단의 우호적 중립을 확보하는 데 신경을 썼다. 한편 암살단 역시 날로 커지는 몽골의 위협을 자각하고 황제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 과정에서 그들은 바이에른 공작을 제거하는 '작은 부탁' 하나쯤 들어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중세 사료를 그대로 믿는다면 답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황제가 주로 로마 교황청과의 갈등 때문에 당대 연대기 작가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로 학계는 황제가 바이에른 공작 살해를 위해 암살단을 고용했다는 기록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안타깝게도 진실은 살인범과 함께 무덤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 자료
기본 자료:
- Jerzy Hauziński, Fryderyk II Hohenstauf i asasynowie. Mało znany epizod w relacji Muhammada al-Hamawiego, [in:] Ars historica, Poznań 1976, pp. 229–240
- Jerzy Hauziński, Muzułmańska sekta asasynów w literaturze europejskiego średniowiecza, Poznań 1978
- Herzogsmord in Kelheim. Das Attentat auf Ludwig I. von Bayern, "Geschichte mit Pfiff", issue 10, 2011, pp. 16–19
보충 자료:
- Steven Runciman, A History of the Crusades, vol. 3, Warsaw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