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 교과서를 펼쳐보면 누가 소련을 무너뜨렸다고 적혀 있을까? 물론 미국이다. 냉전에서 승리한 것도 누구인가? 역시 미국이다. 그런데 이 정직한 저자들이 단 한 가지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있다. 실제로 미국 당국은 소련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이다.
1991년 중반, 소련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는 러시아 연방 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그러나 조지 부시는 그를 전혀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옛 질서의 대표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지지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들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날로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그 주민들을 설득해 자유를 요구하기보다는 소련 제국에 함께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체 왜였을까?
보리스 옐친은 러시아의 민주주의 개혁을 대변하는 인물이었지만,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사진: Kremlin.ru, CC BY 3.0).
조지 부시의 비겁함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세르히 플로키(Serhii Plokhy)의 저서 『마지막 제국(The Last Empire)』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의 최근 기밀이 해제된 문서를 활용했고, 그 문서들로부터 소련의 마지막 순간을 관통한 부시 정책의 새로운 모습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미국 외교관은 이렇게 회고했다.
"1991년 여름, 미국 측 누구도 소련 붕괴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상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민족주의 운동에 공개적인 지지를 보낼 경우 폭력 사태가 촉발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일부 공화국에서 핵무기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핵무기를 쥔 유고슬라비아', 즉 소련이 붕괴할 경우 그런 형태로 변질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미국 정책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1991년 8월 1일,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연설하며 "자유와 독립은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민족 증오에 기반한 자살적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세력을 경계하라고 경고했다.
이 글은 세르히 플로키의 저서 『마지막 제국: 소련 붕괴의 역사』(Znak Horyzont, 2015)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은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을 지지했지만, 소련의 붕괴와 이를 구성하는 공화국들의 독립 열망에는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설은 우크라이나 민주파와 미국 내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부시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흐름에 몸을 맡긴 미국
그렇긴 하지만 1991년 여름까지는 모든 것이 조지 부시와 그의 행정부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1991년 3월 17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소련 인구의 76.4%(발트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몰도바 제외)가 연방의 존속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7월에는 보리스 옐친과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놀랍게도 단어 하나를 바꾸는 데 합의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을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합'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조지 부시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 사진은 화학무기 생산 중단 및 비축량 파괴 조약에 서명하는 두 정상(사진: George Bush Presidential Library, ID:P13385-08; 퍼블릭 도메인).
새 연합은 광범위한 자치권을 가진 국가들의 연방이면서도, 공통의 통화·군대·외교 정책을 유지하는 체제가 될 예정이었다. 새 연방 조약의 서명일은 8월 20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8월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기도가 벌어지면서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 개혁과 연방 공화국들에 대한 자치권 확대를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그 결과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고 옐친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이 사건은 곧 소련 공산당 해체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선언, 그리고 이어지는 벨라루스와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한편 미국은 사실상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1991년 미국 외교 정책을 이끌던 인물들. 조지 부시 외에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국방장관 리처드 '딕' 체니, 스코우크로프트의 부관 로버트 게이츠 등이 있다(사진: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d. 186429, 퍼블릭 도메인).
세르히 플로키는 『마지막 제국』에서 이렇게 적었다.
"백악관은 여전히 급변하는 상황에 반응하기만 할 뿐이었다. (...)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는 미국의 과도한 개입이 또 다른 쿠데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음모? 아니었다!
미국은 소련 상황의 전개에 대해 뚜렷한 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국방장관 리처드 체니가 소련 제국을 적극적으로 분해하자고 촉구했을 때,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의 다른 인사들에게서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이 내린 결정은 발트 3국의 독립 승인뿐이었고, 그마저도 연방 중앙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고르바초프와의 핵무기 추가 감축 협상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11월,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를 앞두고도 백악관에서는 여전히 소련 분리 반대론이 우세했다. 의회, 언론, 리처드 체니, 그리고 미국 내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의 압력 끝에야 부시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찬성하면 독립을 승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이 소련의 종말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11월 30일 부시는 고르바초프와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승인이 오히려 그 나라를 새 연방 조약 협상으로 되돌려놓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원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인의 90%가 조국의 독립을 지지했다. 그리고 키예프 당국의 확고한 태도가 소련의 최종 해체를 결정지었다. 그것은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로베슈 삼림의 비스쿨리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멀리서 지켜보는 관찰자에 불과했다. 따라서 소련 붕괴는 일부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믿고 주요 언론에서도 내세우는 것처럼 CIA의 음모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소련 핵무기고의 행방은 미국 행정부가 가장 걱정한 문제였다(사진: 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 / Nevada Site Office Photo Library, 퍼블릭 도메인).
교만의 죄
물론 미국의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몰도바, 남캅카스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1991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재검토를 시사하며 던졌던 소박한 위협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까지는 모든 것이 미국에 순조로워 보였다.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공화국들은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남게 되었다. 소련의 핵무기고는 안전하게 관리되었고, 소련 제국의 폐허 위에는 대전쟁이 아닌 지역 분쟁만이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거를 준비하던 조지 부시는 최대 경쟁국의 해체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1992년 1월 28일,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인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신의 은총으로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습니다. (...) 냉전은 단순히 저절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겨낸 전쟁입니다."
이 글은 세르히 플로키의 저서 『마지막 제국: 소련 붕괴의 역사』(Znak Horyzont, 2015)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초강대국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부시는 미국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선포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군사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평화를 확보하는 수단으로서의 힘은 죄가 아닙니다. 안보 수단으로서의 고립주의는 미덕이 아닙니다."
세계는 이러한 신념이 구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최근에는 리비아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직접 보았다. 그러나 부시의 웅대한 계획이 정말 '평화의 승리'를 가져왔는지, 아니면 오히려 현대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출처
세르히 플로키(Serhii Plokhy), 『마지막 제국: 소련 붕괴의 역사』(The Last Empire), Znak Horyzont, 크라쿠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