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마이클 비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전차 에이스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련에도 독일의 영웅에 필적할 만한 기갑 영웅이 있었습니다!

1941년 8월 19일, 독일 북부집단군의 기갑 선봉부대가 레닌그라드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현 가치나) 인근에 도달했습니다. 이 방면에서는 주로 경전차 2호 전차와 체코산 38(t) 전차로 무장한 독일 제8기갑사단이 구 러시아 제국의 수도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중위의 명령, "독일 전차가 온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중위가 지휘하는 제3중전차중대는 탈린에서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로 이어지는 접근로 근처에 매복해 있었습니다. 프룬제 군사아카데미를 졸업한 28세의 이 장교는 이미 베테랑 전차병이었습니다. 대위 계급으로 소련-핀란드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동안 불타는 전차에서 세 번이나 탈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승무원들과 함께한 콜로바노프. 배경에는 믿음직하고, 결과적으로 치명적으로 효과적인 KV-1 전차가 보입니다.

휴전 협정 체결 후 그는 일등병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적과 지나치게 친분을 나눴다는 이유로 모든 훈장과 포상을 박탈당하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소련 침공 이후, 풍부한 실전 경험을 인정받아 소위 계급으로 원래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레닌그라드 근교에서 독일군과 싸우러 출격하는 KV-1 전차. 승무원들은 명중탄을 기록했을까요? (출처: RIA Novosti 아카이브, CC BY-SA 3.0 라이선스)

이제 콜로바노프 중위에게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날 그는 제1기갑사단 사령관 블라디미르 바라노프 장군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았습니다. "도시로 통하는 진입로를 차단하고 끝까지 싸워라!" 소련 장교에게는 76.2mm 주포를 장착한 KV-1 전차 5대가 배속되었습니다. 모든 전차는 정성껏 참호에 숨기고 위장되었으며, 각 차량에는 포탄 두 세트가 할당되었고 그중 3분의 2가 대전차포탄이었습니다.

중위의 전차는 '보이스코비차' 국영농장 인근 도로변에 진지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습지 저지대를 따라 흐르다 지평선의 숲 속으로 사라지는 도로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나머지 중대 전차들은 각각 두 대씩 인접 도로들을 엄호했습니다.

혼자서 압도하는 화력

오후 2시경, 숲에서 도로로 나온 독일 오토바이 정찰대가 나타났습니다. 정찰병들은 몇백 미터마다 멈춰 서서 기관총으로 길가 수풀을 쓸어대며 적의 위치를 찾으려 했습니다. 콜로바노프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오토바이들을 그냥 통과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는 본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장갑 종대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2대, 중위는 머릿속으로 헤아렸습니다. 독일군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열려 있는 포탑 해치 너머로 단추를 풀어헤친 제복 차림의 웃음기 어린 전차병들이 보였습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사진 속 38(t) 전차는 콜로바노프의 KV-1이 장착한 76mm 포에게 쉬운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1941년 가을 레닌그라드 지역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출처: Bundesarchiv, CC BY-SA 3.0 라이선스)

가장 가까운 독일 전차가 은폐된 KV와 불과 150미터 거리에 다가섰을 때, 콜로바노프 중위는 마침내 초조함과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승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발사!" 포수 우소프 상사는 그야말로 전문가였습니다. 첫 발이 선두 독일 전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두 번째 발이 종대의 다음 전차에 불을 붙였습니다. 도로가 막혔습니다. 우소프는 곧바로 독일 종대의 꼬리 부분으로 사격을 옮겼습니다. 단 네 발이면 적 전차 두 대를 더 파괴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벽에 머리 박기

독일군은 아직 소련 전차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근처 짚더미에 사격을 퍼부었고, 짚더미들은 즉시 불타올랐습니다. 일대가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결국 KV는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나치 전차들의 포화가 소련 전차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련 기갑차량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독일 경포의 포탄은 위장물을 끊어내고 포탑의 추가 방어판을 뜯어낼 뿐이었고, 매 피탄 때마다 불꽃이 튀었습니다. 우소프는 훈련 때처럼 침착하고 집중된 자세로 이번에는 적 종대의 중앙을 향해 포탄을 하나씩 명중시켰습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2호 전차(출처: Bundesarchiv, CC BY-SA 3.0 라이선스)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독일 전차들은 죽음의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격렬히 기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도로를 벗어나 들판으로 달려갔지만,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진창에 빠졌습니다. 이 전차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보병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전차 포문의 엄호 아래 보병이 소련 전차의 진지에 접근하려 했습니다. 콜로바노프는 이를 간파했습니다. 이번에는 고폭탄 장전을 명령했고, 전차의 기관총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피격당했지만 침몰하지 않다

그럼에도 결국 소련 전차는 여러 차례 피탄되었습니다. 포탑 회전 장치가 고장 나면서 포를 목표물에 조준하려면 차량 전체를 움직여야 했습니다. 차장용 파노라마 잠망경도 파괴되어 중위가 전방을 관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운전병 니콜라이 니키포로프 상급상사는 목숨을 걸고 포화 아래에서 차량 밖으로 뛰어나가 손상된 잠망경 부품을 교체했습니다.

주포 탄약도 부족해졌습니다. 대전차포탄 98발을 발사한 후, 콜로바노프 중위는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전투는 단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전장에는 불타는 적 전차 22대가 집계되었습니다. 또한 여러 대의 독일 전차가 국영농장 건물 인근으로 돌파한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중기병이 다가온다

철수하는 동안 소련 지휘관은 무전으로 대대장에게 연락하여 자신의 위치를 보고했습니다. 슈필러 대위는 모범적인 임무 수행에 감사를 표하며 이미 지원 병력을 보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의 KV가 콜로바노프 중위의 전차에 합류했습니다. 이 전차들의 지휘관들로부터 중위는 중대의 나머지 전차들도 독일군과 교전하여 독일 장갑차량 13대를 추가로 파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KV-1 전차는 상당한 피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156발의 피탄을 받은 콜로바노프의 전차도 분명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출처: Bundesarchiv, CC BY-SA 3.0 라이선스)

새로 도착한 소련 전차들은 즉시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두 전차는 적 전차 8대를 추가로 파괴했습니다. 독일군의 공격은 완전히 격퇴되었습니다. 제3전차중대의 전과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8월 19일 하루 동안 소련 전차들은 총 43대의 독일 전차를 파괴했습니다. 콜로바노프 중위의 전차 장갑에는 적 포탄의 흔적이 무려 156개나 새겨져 있었습니다.

훈장을 받은 에이스

지노비 콜로바노프 — 스탈린의 기갑  에이스

중령이 된 콜로바노프. 훈장 중에는 8월 19일 전투 공로로 수여된 적기훈장도 보입니다.

지노비 콜로바노프 중위는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 전투에서의 공로로 적기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소련 영웅 칭호를 받지 못했는데, 유사한 전과를 세운 군인들에게 이 칭호가 수여되는 것이 관례였음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1941년 9월 21일, 콜로바노프는 푸시킨 마을 근교에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1944년 하반기에야 SU-76 자주포 대대 지휘관으로 전선에 복귀했습니다. 마구누셰프 근교 전투 참전으로 적성훈장을, 베를린 작전 참전으로 두 번째 적기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199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편집: 크시슈토프 하바 / 사진 편집: 라파우 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