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암살 사건, 숨겨진 진실 5가지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그 암살 사건으로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역사적 순간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을 분명 놀라게 할 다섯 가지 사실을 소개합니다. 물론 음모론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들입니다.

1.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알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발칸 방문이 자신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제국 관리들은 물론 합스부르크 왕족을 겨냥한 암살 시도가 있었고, 당시 상황은 특히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처음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 방문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보스니아 군정 총독 오스카 포티오렉 장군이 강력하게 만류하면서 일정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결국 장군의 뜻대로 되었지만, 대공은 단순한 불길한 직감 이상의 무언가에 이끌린 듯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암살 사건, 숨겨진 진실 5가지

암살의 희생자는 정말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오스트리아를 떠나기 전에도 그는 심복인 얀체크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에게 금색 손목시계를 선물로 건네고(충실한 봉사에 대한 보답이었을까요?), 만약을 대비해 빈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자신의 책상 열쇠까지 쥐여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최악의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2. 세르비아 정부는 암살 계획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공 부부가 보스니아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세르비아 당국은 임박한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총리 니콜라 파시치의 책상에는 음모자들의 진행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공모자들의 이름은 물론, 어떤 무기를 소지했는지까지 파악되어 있었고, 폭탄 투척자들이 세르비아 정보기관의 훈련과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파시치는 대공 암살 사건이 훨씬 약소국인 세르비아를 공격할 완벽한 전쟁 명분(casus belli)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빈 쪽에 우회적으로 경고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중개인을 통해 연락받은 사람은 이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암살 사건, 숨겨진 진실 5가지

니콜라 파시치. 도미노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전쟁의 불꽃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한 세르비아 총리입니다.

3.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대공을 한 번 이상 죽이려 했다

1914년 6월 25일,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아내 조피가 사라예보를 짧게 둘러볼 당시 시민들은 꽃과 흔드는 깃발로 두 사람을 맞이했습니다. 대공 부부가 자신들의 도시를 방문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부부가 유명한 현지 시장(바자르)을 찾았을 때조차 현지 경찰의 호위는 없었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는 느긋하게 거닐며 쇼핑을 즐겼습니다. 그런 한편, 열광하는 인파 속에는 집중된 표정의 청년이 숨어 있었습니다. 세르비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손가락이 차가운 권총을 움켜쥐었지만, 그는 증오하던 합스부르크의 대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아마 열광적으로 맞이받던 조피 공녀에게 피해를 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흘 뒤에는 그런 거리낌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4. 실제로 두 차례의 공격이 있었다

운명의 날, 대공 부부는 오픈카를 타고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예보 거리를 두 번째로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검은손' 소속 암살자 일곱 명이 경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쏠 기회가 없었고, 일부는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움직인 사람은 네델코 차브리노비치였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가로등에 뇌관을 부딪혀 점화한 뒤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향해 던졌습니다. 운전기사는 연기를 내뿜는 물체가 차량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가속해 피했습니다. 수류탄은 차체에 튕겨 나가 거리 한가운데서 폭발했고, 구경꾼 20여 명과 수행원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번에는 대공이 무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차브리노비치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는 청산가리 캡슐을 삼키며 "나는 세르비아의 영웅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청산가리는 소용이 없었고, 폭탄 투척범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5. 대공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고집 센 관료였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이제 비엔나로 돌아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포티오렉 장군은 몹시 분개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방문을 중단하고 자신의 관저에서 만찬을 함께하지 않으면, 시민들 눈에 자신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며 대공이 평화를 위해 굴복할 때까지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대공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암살 사건, 숨겨진 진실 5가지

오스카 포티오렉. 바로 이 사람 때문에 대공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첫 암살 시도가 있었던 다음 날,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장군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일정의 남은 항목들을 마친 뒤, 대공은 폭발로 부상당한 장교를 병원에서 문병하고자 했습니다.

황태자의 생명을 노린 공격이 있었음에도 포티오렉은 병력으로 도시를 경비하는 것을 거부하고 합스부르크가 안전하다고 장담했습니다. 게다가 병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대공 일행이 왔던 바로 그 경로와 같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결국 행렬은 붐비는 거리를 지나 되돌아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대공을 알아본 순간, 그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출처

역사의 흥미로운 일화와 놀라운 디테일, 옛 신문에 실린 기이한 소식을 짧고 알차게 전해드리는 자료입니다. 이 글은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Greg King, Sue Woolmans, 『Kill the Archduke』, Literanova,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