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아폴로 11호 달 착륙 53주년: 우리가 몰랐던 달 정복의 숨은 이야기 5가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를 만들어냈습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지 벌써 53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스러운 순간 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달에서 나는 냄새는 어땠을까요? 발사에 반대하던 시위대는 어떻게 VIP석에 앉게 되었을까요?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유명한 문구처럼, 암스트롱은 적대적인 우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우주복을 입고 낯설고 척박한 땅에 내디뎠고, 준비된 대사를 말했으며, 미국 국기를 달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기록했습니다.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인간".

같은 시각 이탈리아에서는 달에 전혀 관심 없던 수감자 6명이 TV 앞에 몰려든 교도관들의 집중을 틈타 탈옥에 성공했습니다. 교도관들만 그 독특한 광경에 매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지구의 6억 5천만 명(그리고 달에는 발도 딛지 못한 마이클 콜린스까지)이 두 남자가 달을 거니는 모습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됩니다.

1. 달은 꺼진 벽난로 같은 냄새가 났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달에는 냄새가 있었습니다!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했을 때, 어떤 지형에 내릴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화강암처럼 단단한 지형임이 밝혀졌고, 두 우주비행사는 신속하게 암석 샘플을 채집해 분석했습니다. 걸으면서 그들의 우주복에는 특유의 냄새가 배어들었고, 그들은 그 냄새를 우주선 안으로 함께 가져왔습니다.

헬멧을 벗었을 때, 우주비행사들은 달의 냄새가 무척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벽난로에 남은 재와 비슷하거나, 폭죽이 터진 직후의 공기 같은 냄새였습니다. 요컨대 타고 남은 화약 냄새였습니다. 아쉽게도 지구의 과학자들은 달의 냄새를 직접 맡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암석이 실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냄새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2. 케네디는 사실 달에 관심이 없었다

"10년이 끝나기 전에 인간이 달에 갔다가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말이지만, 그는 그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개적으로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모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이 새로운 바다로 항해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웅변 같은 말이었지만...

실제로 케네디는 우주나 지식, 인류의 진보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비밀 녹음 테이프에 따르면 대통령의 진짜 동기는 적, 즉 소련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경쟁은 냉전 시기에 벌어졌고, 따라서 케네디는 달 착륙 자체보다 미국의 세계 패권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소련은 이미 최초로 우주에 도달하며 미국을 앞서 있었고, 대통령은 소련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절실했습니다.

케네디는 우주 프로그램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던 부통령 린든 존슨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존슨은 "우주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한다"고 못박았고, 그래서 그가 JFK에게 제안한 것이 미국인을 달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두 명을 보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케네디는 하늘에서 암스트롱과 올드린을 지켜봤고, 존슨은 집에서 지켜봤으며, 임무 성공의 공은 닉슨이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3. 옆으로 걷는 특이한 훈련법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의 훈련은 며칠에 걸친 여행과 더불어 아무도 방문한 적 없는 장소에 대한 현지 탐사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NASA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훈련 시뮬레이션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이 경험한 가장 효과적인 훈련 중 하나는 휴스턴에서 훈련용 비행체의 이착륙 연습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훈련은 달처럼 낮은 중력 환경에서 걷는 연습이었습니다. NASA가 1966년에 최초의 무중력 시설을 건설하기 전까지 초기 훈련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옆으로 몸을 기울여 걸어야 했습니다. 즉, 수직으로 기울어진 벽면에 발을 딛고 걷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다른 훈련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옆으로 걷기가 무중력 감각을 시뮬레이션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4. 시위대가 VIP석에 앉게 된 사연

미국 시민 대다수는 우주 정복 노력에 박수를 보냈지만, 두세 명, 아니 다섯 명을 달에 보내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는 결정에 열광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활동가 그룹이 케이프 케네디 우주센터 밖에 모여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최첨단 우주선과 먹고살 돈조차 없는 사람들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당나귀 두 마리와 나무 수레를 데리고 왔습니다.

NASA 관계자 토머스 페인은 직접 시위대와 접촉했습니다. 그의 희망은 활동가 지도자 랠프 애버내시가 "NASA의 우주 성공을 비교와 진보의 척도로 삼아, 미국이 다른 분야의 문제 해결에도 나서도록 하는 계기로 우주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애버내시와 몇 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페인은 시위대를 설득해 시위를 중단시켰고, 로켓 발사를 볼 수 있는 VIP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페인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애버내시와 팀원들은 항의의 "목소리"를 멈춘 것뿐만 아니라 우주비행사들을 위해 기도했고, 마지막에는 누구 못지않게 이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선언했습니다!

5. 과학자들이 두려워한 우주 세균

달은 완전히 미지의 목적지였고, 과학자들은 그곳에 어떤 박테리아가 있는지, 우주비행사들이 귀환 후 무엇을 지구로 가져올지 전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치명적인 우주 바이러스가 어떤 종류든 여행자들의 우주복을 통해 지구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주 세균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1969년 7월 24일 재돌입 캡슐이 태평양에 착수했고, 우주비행사들은 즉시 존슨 우주센터의 격리 실험실로 옮겨져 의무 검역을 받았습니다.

세 명의 우주 여행자는 치명적인 우주 세균의 확산을 막기 위해 그곳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암스트롱은 심지어 검역소에서 39번째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1969년 8월 10일, 발사일(7월 16일)로부터 거의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화성 정복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