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오전 4시 40분, 첫 번째 독일 폭탄이 비엘룬(Wieluń)에 떨어졌습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국경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독일군은 이 도시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물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1939년 9월 1일 금요일은 비엘룬에 장이 서던 날이었습니다. 많은 지역 농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농산물을 팔기 위해 마을로 몰려왔습니다. 첫 번째 항공기가 나타나고 사이렌이 울렸을 때도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과 방문객들은 이전에 공지된 대공 경보 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폐허가 된 도시
첫 번째 독일 폭탄은 오전 4시 40분에 떨어졌습니다. 그 목표는 올세인츠 병원(All Saints Hospital)이었는데, 저명한 폴란드 건축가 헨리크 마르코니(Henryk Marconi)가 설계한 19세기 벽돌 건축물이었습니다. 병원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잔해 속에서 3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원 옥상에는 커다란 적십자 표식이 그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격당한 것입니다.
오후 2시까지 반복된 공습으로 비엘룬은 연기를 내뿜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도시 건물의 약 75%가 파괴되었고,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잔해로 남았으며 귀중한 종교 건축물들도 소실되었습니다. 약 1,200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무력한 표적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전격전(블리츠크리크)은 이 방어력 없는 도시에 대한 범죄적 폭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루프트바페 급강하 폭격기들이 인구 15,000명의 독일 국경 바로 앞 도시 비엘룬을 공격했을 때, 그곳에는 사실상 의미 있는 군사 목표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도시가 공격 대상으로 선정된 것일까요?

수시간에 걸친 비엘룬 폭격의 결과로 도시 건물의 75%가 파괴되었고 약 1,200명이 사망했습니다.
많은 견해에 따르면, 공격 대상은 급강하 폭격 부대 사령관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Wolfram von Richthofen) 장군이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그는 당시 최신형 융커스 Ju-87B 폭격기의 파괴력을 실전에서 직접 시험해 보고 싶어 했습니다. 참고로 그는 2년 전 스페인 게르니카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인물이기도 합니다.
독일 공군 사령부는 비방비 상태의 민간 목표물에 대한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헤이그 협약의 조항을 뻔뻔하게 위반했습니다.
상처받은 범죄적 자존심
아마도 독일 장군의 상처받은 자존심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폴란드 침공 불과 2주 전, 리히트호펜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노이함머(현재의 시비엔토슈프) 훈련장에서 가짜 표적을 폭격하는 과정에서 14대의 융커스 중 13대가 표적을 맞히지 못하고 지면에 추락한 것입니다. 이는 고위 루프트바페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사령관에게 상당한 굴욕이었습니다.

다리우스 칼린스키(Dariusz Kaliński)의 저서 『피해의 균형(Balance of harms)』에서 독일 점령의 공포에 대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폴란드인들에 대한 끔찍한 범죄는 단지 독일 조종사들이 전투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저질러진 것일까요? 아니면 국제법과 전쟁의 기본 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무방비한 희생자들을 학살하고 민간 시설을 파괴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후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나치 범죄 행보의 첫 번째 페이지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는 신간 『피해의 균형: 폴란드에 대한 독일 점령의 실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