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정복자의 신화를 폭로한다: 코르테스 군대는 실제로 어떻게 무장했나?

1519년 4월 21일, 스페인인들이 아즈텍의 영토에 상륙했습니다. 단 2년 뒤, 아즈텍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600명이 채 되지 않는 병사들이 어떻게 수백만 인구의 강대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정말 모든 것이 말과 머스킷, 강철 갑옷 덕분이었을까요?

스페인 보병의 무장

무기 면에서 정복자들이 원주민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멕시코를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의 약 500명 병력 대부분은 보병이었고, 이들의 기본 무장은 레이피어(세검), 로델라라 불리는 원형 방패, 그리고 특징적인 모리온 투구였습니다. 일부 병사들은 창이나 할버드도 함께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반 보병 외에도 스페인군에는 석궁병 32명, 화승총 사수 13명, 기병 16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정복이 진행되면서 쿠바에서 새로운 병력과 무기가 도착해 구성은 조금씩 변했지만, 대체로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의 우위는 전형적인 아즈텍 전사의 무장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아즈텍 전사는 보통 투석구, 창 또는 투창을 사용했고, 때로는 활도 사용했습니다. 방어구로는 갈대와 나무로 만든 방패, 그리고 누비질한 면 갑옷에 의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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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스페인 정복자의 투구.

흥미롭게도 이 면 갑옷은 더운 기후에서 너무나 실용적이어서, 정복 당시 일부 스페인인들은 강철 갑옷 대신 면 갑옷을 선호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아즈텍의 무기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마쿠아우이트(macuahuitl)라 불리는, 나무와 흑요석으로 만든 일종의 검이자 곤봉 역시 매우 독특한 무기였습니다.

언뜻 보면 이 무기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돌 조각을 붙인 평범한 나무 곤봉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결은 사용된 돌의 종류에 있었습니다. 화산 유리의 일종인 흑요석은 현대 수술용 기구보다도 예리한 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마쿠아우이트는, 특히 양손으로 휘두르는 형태는, 정말로 살상력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익명의 정복자는 그 치명적인 위력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어느 날, 기병과 싸우던 원주민 한 명이 말의 가슴을 내려쳐 배를 가르고 그 자리에서 말을 죽였습니다. 같은 날, 또 다른 원주민이 말의 목을 찔러 말이 발밑에 쓰러져 죽는 것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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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영리한 무기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유럽의 강철과 비교하면 석기 시대의 유물처럼 보인다고요. 그러나 모든 것은 숫자에 달려 있습니다. 아즈텍은 수만 명의 전사로 이루어진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레이피어가 곤봉보다 낫고, 강철 방패가 갈대 방패보다 낫다 해도, 한 명의 스페인인에게 열 명, 아니 스무 명의 원주민이 맞선다면 무장의 열세는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말과 기병대의 역할

그렇다면 말과 화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코르테스 군대의 기병은 처음에 겨우 16명이었습니다. 정복 과정에서 쿠바에서 더 많은 말이 들여왔지만, 그 수가 인상적인 규모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병 돌격이 화려할 수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놀랐던 아즈텍인들도 말을 탄 적을 상대하는 법을 금세 익혀 나갔습니다. 노획한 스페인식 레이피어를 활용해 만든 창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인정해야 할 것은, 정복자들의 무기고에서 기병은 귀중한 전력이었다는 점입니다. 여러 차례 기병대는 그들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520년 7월의 오툼바 전투입니다. 아즈텍 지휘관들을 향한 기병 돌격은 원주민 진영에 공포를 일으켰고, 그들이 승기를 잡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정복자의 신화를 폭로한다: 코르테스 군대는 실제로 어떻게 무장했나?

아즈텍 전사들은 마쿠아우이트라 불리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발포! 그리고 대포!

화기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스페인인들이 보유한 화기의 양은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6세기 전반의 아르케부스(화승총)는 여러 가지 단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명중률이 낮았고, 발사 속도도 느려 1분에 한 번 발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게다가 비 오는 날에는 사용할 수 없었고, 화약을 쿠바에서 멀리 수입해 와야 한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석궁이 오히려 더 실용적이었는데, 구리 촉 화살을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르케부스에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숙련된 궁수를 양성하는 데는 수년이 필요하지만, 총 사수는 몇 개월이면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화기는 설령 원시적인 형태라 해도 관통력 면에서 활이나 석궁을 능가합니다. 불행히도 이 장점은 대량으로 운용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코르테스 휘하에는 겨우 13명의 총 사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 정도 숫자로는 심리적 효과만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굉음을 내며 연기를 뿜는 화기는 오늘날에도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원주민들은 적어도 초기에는 총소리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포는 아르케부스보다는 대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대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즈텍 연대기는 이렇게 전합니다.

"거대한 화염방사기가 동시에 발사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절들의 심장이 멎고 아마포처럼 창백해진 채 쓰러져 움츠러들었으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복자의 신화를 폭로한다: 코르테스 군대는 실제로 어떻게 무장했나?

아르케부스는 스페인군이 사용한 대표적인 화승총이었습니다.

인디언 사절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분들을 안심시키자면, 그들은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발포는 어디까지나 시범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럽이 가져온 모든 기술 혁신 가운데 가장 유용했던 것은 단연 포병이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특히 1521년 마침내 함락된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공성전에서, 대포는 좁은 거리에 빽빽이 모여 있던 방어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렇다면 정복자들의 우월한 무기가 아즈텍 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것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짜 결정타는 따로 있었습니다. 첫째,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유입된 질병, 특히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집단으로 시달렸습니다. 둘째, 아즈텍 자신의 국가 조직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제국 주변 지역과 수도의 관계는 매우 느슨했고, 오직 공물 납부에만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스페인인이 더 강하다고 판단하자, 그들은 대거 스페인 편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