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시대를 초월한 광기의 이중적 얼굴: 존경과 두려움 사이

광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조현병을 앓는 가족에게서 우리는 치료 가능한 질병을 떠올리고, 길거리의 노숙인에게서는 위협을, 예술가에게서는 창의성의 위험한 부산물 혹은 위대한 업적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느낀다. 네덜란드의 연구자 아우터 쿠스터스(Wouter Kusters)는 이렇게 다양한 시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광기와 정신의학에 관한 한, 우리는 모순으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다. 광기에는 천재성의 낭만적인 안개가 드리워져 있지만, 동시에 정신의학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은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혀를 내민 그 유명한 사진을 떠올려보자. 그가 존경받는 위대한 물리학자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 기묘한 표정을 천재 과학자다운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창의성과 광기

일반적으로 문제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심지어 '병적'이라고까지 평가되는 행동도 '창조적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용인되고 어쩌면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저명한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비트겐슈타인이 제자와 친구들에게 보인 특이한 분노의 폭발과 기이한 대화 방식은 그의 지혜에 속하는 것으로 호의적으로 기록된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어느 정도의 광기를 기대하기까지 한다. ADHD 같은 과잉활동, 작업에 대한 강박적 몰입, 조울증적인 기분 변화는 예술가의 삶에서 전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내면이 완전히 평범한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 역시 그렇게 '깊지' 않으리라 의심하게 된다. 실제로 연구들은 창의성과 광기 사이의 관계를 반복해서 입증해왔다(케이 레드필드 재미슨(Kay Redfield Jamison)의 연구 참조).

약물의 시대

오늘날 천재적 광기에 대한 이러한 찬사는 동시에 광기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대대적인 통제와 병행된다. 이제 아주 어린 나이부터 관찰과 평가가 이루어져 정신장애를 진단하며, 장애를 규정하는 기준은 해마다 넓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연령에서는 ADHD 아동과 자폐 아동이 걸러지고, 그보다 조금 뒤에는 조울증 성향의 청소년이, 더 나중에는 정신병 취약 성인이 선별된다.

심리학과 미디어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상'의 모델이 유통되고 있다. 마음을 교정해준다는 약물은 이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의약품 목록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신의 극단적이고 부적응적인 면모를 크게 존경한다. 이렇게 상반된 시각의 다양성은 그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살펴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샤머니즘

광기에 대한 긍정적 시각에서 광기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장 깊은 동기, 우주의 본질적 패턴, 심지어 생사를 넘어선 지식까지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 이때 광기는 꿈과 다른 의식 상태와 연결된다. 북아시아의 많은 고대 문화권에 등장하는 샤먼들에게서 우리는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의식 상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발견한다. 샤먼들은 스스로 트랜스 상태에 빠져 선악의 영령들이 사는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일상생활에 미칠 악영향을 막았다.

샤머니즘의 수행과 거기에 따른 세계관은 서양 역사에서 트랜스 상태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강한 영향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중증 정신병을 겪는 사람들이 사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일종의 샤먼이라고 주장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

그리스인들 역시 역경 속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좋아했다. 잘 알려진 델포이의 신탁은 헛소리처럼 들리는 말을 했는데, 오늘날에는 정신병과 연관 지어지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해석하면 소중한 가치가 있는 저세상의 메시지로 여겨졌다.

반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삶에 대한 위협으로서의 광기에 관한 최초의 이론도 등장했다. 히포크라테스 전통의 의사들은 광기가 신들의 세계와 관련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들은 광기, 그리고 질병 전반이 네 가지 체액, 즉 혈액, 점액, 황담, 흑담의 균형을 깨뜨린다고 믿었다. 흑담이 너무 많으면 우울(멜랑콜리)이 되고, 혈액이 너무 많으면 조증(마니아)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 2천 년 뒤 '조울증(bipolar disorder)', 즉 병적인 기분 변화라고 불리게 될 개념의 토대가 놓였다.

중세: 궁정 광대

오늘날 광기의 또 다른 선례는 중세의 다채로운 광대들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그들을 한데 모아두는 시설은 거의 없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일했고, 어떤 이들은 장터에 나가거나 구걸로 생계를 이었다.

일부에게는 광대로서의 경력이 가능했다. 그 역할을 통해 그들은 성직자의 집과 중세 궁정 깊숙이 들어갔고, 우스꽝스러운 잔치와 초기 카니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유희를 위해, 때로는 사람들에게 비유적인 거울을 들이밀며 가르침을 위해 봉사했다.

광대의 어리석음(folly)은 과잉 규제된 사회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에서 어리석음을 이성에 필요한 대균형으로 보았다. 어리석음이 없으면 즐거움도, 사랑도, 열정도, 심지어 종교적 황홀경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풍습과 관습에 대한 조롱과 비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광기는 시인, 예술가, 코미디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세: 마녀

그러나 모든 미친 자가 시대를 앞선 코미디언이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 말기부터 서구 사회는 급격히 변했다. 산업이 일어나고, 종교 분쟁이 확산되었으며, 도시 인구가 급증했다. 예전의 여성 광대와 신비주의자들 중 일부는 이제 '마녀'라는 부정적 낙인을 뒤집어썼다. 그들은 악마와 주술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되어 잔혹하게 박해받았다.

새롭게 떠오른 의학과 과학은 그들의 편에 섰다. 이성과 인도를 호소하며 이 희생자들을 무지와 종교적 광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 것이다. 마녀는 악령에 들린 것이 아니라 병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그들을 화형의 불길에서 구해냈다. '대화형(大火刑)'은 끝났지만, 이제는 푸코가 말한 '대수용(大收容)'의 시대가 도래했고, 그 환경은 종종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근대

19세기 초, 광기에 대한 관념은 급격히 바뀌었다. 의료계가 정신병원에 진입했고, 처음으로 정신과 환자라는 범주가 구분되었다. 신경과 의사들의 주도 아래, 광기를 개개인의 신체적 이상으로 보는 이미지의 개선 행진이 정신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치료법은 안정, 온·냉욕 교대 요법, 인슐린 쇼크 요법이었고, 심지어 뇌를 통해 다루기 힘든 정신을 통제하려는 로보토미(전두엽 절제술)와 전기충격 요법까지 등장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광기를 억누르기 위한 정신작용 약물의 사용은 시설 안팎에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 약물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 비록 바라던 효과인 경우는 드물지만, 광기가 무엇보다 신경학적 문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현대 정신의학 속 광기의 이미지는 이렇게 특히 일면적이 되었지만, 동시에 매우 대중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우리는 광기 속에서 여전히 하늘이 주는 영감과 황홀경,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혼자 웃고 있는 미친 자에게 우리는 연민이나 혐오를 느끼지만, 때로는 그가 우리에게는 닿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이렇듯 광기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존경받는 동시에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