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특수작전집행부(SOE)에서의 복무에는 인품과 고결한 대의를 추구하려는 의지, 그리고 해적 같은 배짱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SOE 요원들이 프랑스와 다른 점령국들에게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나치 점령군에 맞선 봉기를 준비하도록 하기를 원했습니다.
1940년 8월 말의 무더운 어느 날, 영국 비밀 요원 조지 벨로스는 스페인 국경의 먼지투성이 마을 이룬에서 기차역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인파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또 다른 파쇼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통치 아래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이었지만 나치 밀정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매일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프랑스에서 국경을 넘어 몰려들었고, 그중 일부는 제3제국의 억압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히틀러의 침공과 됭케르크 철수 이후, 영국 정보기관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프랑스와의 연락망을 거의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한때 프랑스 전역을 뒤덮던 광대한 첩보망의 요원 대부분은 도주했거나, 목숨을 잃었거나, 신분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런던은 나치가 영국 해협을 건너 침공해오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중 정찰과 중립국 외교관이나 기자들이 대충 적어 보낸 보고에 의존해 히틀러와 그 동맹들의 동향을 파악하려 애써야 했습니다. 영국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었지만, 거의 눈을 가린 채로 싸워야만 했습니다.
분단된 프랑스
벨로스의 시선은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의 초상이 담긴 커다란 깃발 아래, 위협적인 시선을 받으며 매표소에서 무언가를 처리하는 우아한 미국인 여성에게 꽂혔습니다. 호기심을 느낀 요원은 다가가, 방금 프랑스에서 도착해 기차로 포르투갈에 간 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갈 계획인 젊은 여성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벨로스는 험난한 전시 여행 경험이 많은 세일즈맨이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여행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버지니아는 정중한 동행자에게 자신의 놀라운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물론 그녀답게 정보를 골라서요). 벨로스는 그녀가 포격 속에서 구급차를 몰았고, 혼자서 프랑스 전역을 누비며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의 굴욕을 견뎌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가 대체로 루아르 강을 따라 그어져 나라를 두 지역으로 가른, 삼엄한 순찰이 이어지는 분계선을 넘어야 했다는 것도요.
그녀는 남부, 즉 선출되지 않은 국가원수 페탱 원수가 비시에서 통치하는 이른바 '자유 지역(비점령 지역)'의 생활 여건이 얼마나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점령 지역(프랑스 북부와 서부)은 이미 파리에 주둔한 독일군의 직접 통제 아래 놓여 있었고, 버지니아는 분노를 담아 통행금지령, 식량 부족, 대규모 검거, 그리고 노동 조건에 항의하던 르노 공장 노동자들이 벽에 세워진 채 총살당한 사건들을 언급했습니다.
특수작전집행부(SOE)
구체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이 이야기를 들으며, 벨로스는 버지니아의 전장에서의 용기,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랑스인들의 싸움을 돕고자 하는 끓어오르는 열망에 점점 더 놀라고 있었습니다. 직관을 믿은 요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프랑스에서 연합군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버지니아와 작별할 때, 그는 그녀에게 런던의 '친구'의 전화번호를 슬쩍 건네며 도움이 될 만한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줄 것이라 했고, 영국에 도착하는 즉시 그 연락처를 활용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그녀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더라도, 벨로스는 방금 비범한 강인함을 지닌 인물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벨로스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고, 비자 신청서를 볼 때 버지니아는 영국에 도착하면 다시 구급차를 운전하게 되리라 짐작했습니다. 한편 그 전화번호의 주인은 새롭고 논란이 많은 영국 비밀 정보기관의 독립 F(프랑스) 섹션의 고위 장교 니콜라스 보딩턴이었습니다.
특수작전집행부(SOE)는 1940년 7월 19일, 히틀러가 베를린 제국의회에서 승리를 자랑하며 개선 연설을 했던 바로 그날 창설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윈스턴 처칠은 SOE에게 전례 없는 규모의 파괴 공작, 선동, 첩보 활동으로 "유럽에 불을 지르라"고 직접 명령했습니다. 그는 SOE 요원들(사실상 첩보 부대라기보다 특수 부대에 가까웠습니다)이 저항의 불씨를 지피는 방법을 찾아, 프랑스와 다른 정복당한 나라들에게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나치 점령군에 맞선 봉기를 준비하도록 하기를 원했습니다.
아직 정의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전으로서, 그들은 영국이 다시 대륙에 군대를 상륙시킬 수 있는 먼 날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 새로운 게릴라판 '제5열'이 국제 군사 분쟁의 퀸즈베리 규칙(작전 방식, 계급, 군복)에 어긋나더라도, 그것은 나치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OE에서의 복무에는 인품과 고결한 대의를 추구하려는 의지, 그리고 해적 같은 배짱이 필요하다고 처칠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SOE가 긴급 지원 없이 프랑스에서 은밀히 활동할 만큼 용감한 요원을 찾지 못한 것은 당연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이 자살이나 다름없는 임무에 나서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벨로스는 이룬 역에서 만난 그 미국인이야말로 SOE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출처
이 글은 소니아 퍼넬의 저서 『무명의 여인: 버지니아 홀의 이야기(A Woman of No Importance: The Story of Virginia Hall)』에서 발췌한 것으로, 아고라 출판사에서 방금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