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까지? 크라쿠프 주교를 둘러싼 '흑색 전설'은 조작이었을까

여성이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고 전해진다. 궁정에 하렘을 갖추었고,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으려던 수녀는 그야말로 납치해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살인도 망설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제 폴란드 성직자를 둘러싼 '흑색 전설'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다.

1266년부터 1292년까지 크라쿠프 주교를 지냈고 '정결왕' 보레스와프 5세의 재상이기도 했던 프셰만쿠프의 파베우(Paweł z Przemankowa). 그에 대한 나쁜 평판은 15세기부터 이어져 왔다. 『크라쿠프 주교 목록(Katalog biskupów krakowskich)』에서는 여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읽을 수 있는데, 문제가 되는 구절은 13세기 기록에 훗날 덧붙여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또 다른 사료는 얀 드우고시(Jan Długosz)가 집필한 『크라쿠프 주교 열전』으로, 여기에는 더욱 자극적인 디테일이 담겨 있다.

주교… 그리고 그의 여인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역사학자들이 드우고시가 제공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에도 언론에서는 똑같은 혐의들이 회자된다. 간통을 저질렀고, 하렘을 유지했다는 것… 이들에 따르면 파베우는 늘 여인들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알렉산데르 프셰즈지에츠키(Aleksander Przeździecki)나 얀 프타시니크(Jan Ptaśnik) 같은 학자들은 주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고, 파베우 야시엔니차(Paweł Jasienica) 역시 이를 반복했다.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까지? 크라쿠프 주교를 둘러싼  흑색 전설 은 조작이었을까

프셰만쿠프의 파베우 주교의 방탕함과 범죄에 대한 소문은 15세기 얀 드우고시의 연대기를 통해 널리 퍼졌다. 사진은 안토니 그라마티크가 그린 드우고시의 초상(출처: 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더 이른 시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파베우가 특별히 방탕한 삶을 살았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흑색 전설은 이미 그의 주교 선출 과정에서부터 의심스럽다. 주교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브와디스와프 카라시에비치(Władysław Karasiewicz) 신부가 강조했듯, 선출은 교구 참사회 의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들 대부분은 덕망과 성덕으로 이름난 파베우의 전임자 얀 프란도타(Jan Prandota) 주교가 임명한 인물들이었다. 즉 확실히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철저히 타락한 인물이 과연 그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적어도 그만큼 수상한 점은, 참사회의 결정에 대해 그네즈노 대주교 야누슈(Janusz)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곧바로 선출을 승인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주교 당선자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크라쿠프 참사회 연보』에서도 확인된다. 거기에는 1267년 2월에 열린 브로츠와프 시노드에서 파베우가 교황 특사 구비돈(Gwidon)에게 특별한 예우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타데우시 실니츠키(Tadeusz Silnicki)처럼 중세 폴란드 교회 조직 전문가 중 일부는 이 일이 몇 달 뒤 구비돈이 크라쿠프를 방문했을 때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파베우가 특사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이다.

한편 부르고뉴 출신 고위 성직자였던 구비돈은 실니츠키의 표현을 빌리면 '타협과 양보보다는 원칙과 투쟁의 사람'이었으며, '정치보다 교회의 방향을 보여주었고', '이상과 개혁, 영적 영역을 지향했다'. 또한 '깊은 학식과 책임 수행에 대한 열정이라는 미덕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방탕자이자 호색한, 간통죄인에게 호의적일 리 없다…

수도복 차림의 연인?

파베우에게 지어진 성적 문란 혐의와 직접 관련된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스카와(Skała)의 가난한 클라라 수도회(Poor Clares) 수녀원에 있던 한 수녀에 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수녀가 주교의 마음에 너무나 깊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납치해 침대로 끌고 가 겁탈했다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드우고시 본인도 확신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레시크 검은공(Leszek Czarny)과 가난한 클라라 수도회 및 킹가 공작부인 사이에 벌어진 노비손츠-비에츠-코르친스키 영지 분쟁에서 주교 파베우는 후자의 편에 섰다는 점을 상기하면 충분하다. 성직자의 끝까지 굽히지 않는 태도는 그가 감옥에 갇힌 뒤에야 꺾였다. 가난한 클라라 수도회를 그토록 확고하게 옹호한 사람이, 동시에 자신이 보호해야 할 수녀들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 수 있겠는가?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까지? 크라쿠프 주교를 둘러싼  흑색 전설 은 조작이었을까

얀 프란도타가 임명한 참사회 의원들(왼쪽 인장)은 파베우의(오른쪽 인장) 크라쿠프 주교 임명에 반대하지 않았다. 방탕한 생활로 악명 높은 인물을 지지했겠는가?(출처: 퍼블릭 도메인)

14세기에 쓰인 킹가 공작부인 전기 『Vita et miracula sanctae Kyngae ducissae Cracoviensis』(『크라쿠프 공작부인 성녀 킹가의 생애와 기적』)에서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바르바라 코발스카(Barbara Kowalska)의 추측에 따르면 이 소책자의 저자는 아마도 가난한 클라라 수도회의 고해 신부였을 것이다. 즉 수녀들의 직접적인 증언에서 정보를 얻은 셈이다. 그가 그려낸 주교의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킹가의 전기에서 파베우는 '레시크 검은공에게 피해를 입은 공작부인과 그녀의 신앙 동료들을 지지한 착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파베우는 심지어 킹가의 전구를 통한 기적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처음에는 중병에서 치유되었다. 두 번째 기적은 성녀 가타리나가 주교 앞에 나타나 그를 감옥에서 풀어주면서, 자신의 석방이 특별한 축복을 받은 공작부인의 덕분임을 밝혔을 때 일어났다.

이런 이야기들이 단순한 성인전 문학적 허구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파베우 사후 수십 년 동안 종교계에서 그에 대한 감사한 기억이 소중히 간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녀 하나를 납치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면, 상황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성직자 지팡이를 쥔 살인자

문란한 성생활만이 프셰만쿠프의 파베우에 대한 유일한 혐의는 아니다. 그의 소위 '범죄 목록'은 훨씬 길었다. 육계(제6계율) 위반과 관련된 죄목에 살인이라는 치명죄까지 추가되었다. 드우고시에 따르면 사냥을 즐기던 주교의 희생자는 사냥 중 사냥감을 놓치게 만든 남자였다. 격분한 파베우는 그를 창으로 꿰뚫었다고 한다.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까지? 크라쿠프 주교를 둘러싼  흑색 전설 은 조작이었을까

성녀 킹가의 기적적인 전구(페르디난트 올레신스키의 초상화 속 인물)는 두 번이나 파베우 주교가 곤경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가 실제로 자신의 수도회 수녀 하나를 납치했다면, 그녀가 그를 위해 기도했겠는가?(출처: 퍼블릭 도메인)

카라시에비치 신부에 따르면 이 정보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우선 유명한 연대기 작가 이전에 이에 대해 기록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은 기록이라 믿기 어렵다. 드우고시가 어디선가 들은 전설의 주인공을 단순히 파베우로 바꿔치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15세기 역사가가 남의 행실을 주교에게 돌린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는 '파베우의 생활 방식을 비판한 크라쿠프 참사회 의원들이 키엘체의 연회에서 탁자 밑에 숨어 있던 난쟁이들에게 찔렸다'는 이야기를 묘사할 때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흑색 전설의 근원

프셰만쿠프의 파베우의 '특별한' 문란함과 악행은 결국 신화로 보인다. 15세기에 크게 확대되었지만, 그 뿌리는 주교가 살았던 당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에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게 된 것은, 아마도 모든 정치가가 그렇듯 적들 덕분이다.

파베우의 가장 강력한 적들은 레시크 검은공이 킹가 및 파베우와의 갈등에서 편을 든 스타자(Starża) 가문의 오톤(Otton)과 제고타(Żegota)였다. 스카와 수도원의 수녀 납치 이야기를 지어내고 후대 전승에 남긴 것도 바로 이들이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그들은 그 수녀이 자신들의 친동생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크라쿠프 교구장의 적대자들이 지어낸 또 다른 허구가 그의 절제 없는 정욕이었다. 파베우의 전기 작가 예지 비로줌스키(Jerzy Wyrozumski)는 그의 '장난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 시간이 지나며 과장되어, 거의 하렘을 갖췄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소문, 헛소문, 비방… 우리는 오늘날의 정치 지옥에서 이를 잘 알고 있다. 적을 파괴하는 방법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