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폴레옹 곁의 폴란드 군단, 이탈리아에서 저지른 잔혹한 진압의 기록

반란을 일으킨 주민들에 대한 징벌 원정. 여성과 아이들의 학살. 마을 전체를 불태워 없애버림. 독일군이나 러시아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묘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자유를 위해 싸우던 아펜니노 반도 주민들을 진압한 폴란드 군단병들이 남긴 '결과물'이다.

이탈리아에서 나폴레옹 곁에 섰던 돔브로프스키 군단을 떠올리면, 우리는 아마도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과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끈기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 슬라보미르 레시니에프스키는 저서 『폴란드인의 나폴레옹적 광기』에서 이들의 역사 속 덜 영광스러운 장면들에도 주목한다.

여성과 아이들을 죽인 자들

프랑스군은 나폴레옹이 갓 정복한 지역의 반란 세력을 피로 억누르는 데 동포들을 이용했다. 로마 근교 치르체오 현에서 벌어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레시니에프스키의 책은 이렇게 전한다.

1798년 7월 24일에 시작된 봉기는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만에 넓은 지역으로 번졌고, 반군은 처음부터 맹렬하고 잔혹하게 싸웠으며 점령 세력에 협조하는 관료들을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달 말, 폴란드군은 페렌티노를 강공해 함락했고, 이로써 프랑스군의 찬사와 반군의 증오를 동시에 얻었다. 반군들은 군단병들이 여성과 아이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무자비하게 약탈했다고 비난했다.

며칠 뒤 프로시노네 함락전에 참여한 군단병들의 용맹함에 대해 프랑스군은 두 말 할 것 없이 극찬했다. 에티엔 맥도널드 장군은 "폴란드인은 누구보다 용감하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 도시의 불행한 시민들은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 병사들이 불을 지른 건물 안에서 산 채로 타 죽은 사람이 허다했다.

공격자들의 잔혹함은 페렌티노 인근에서 피난 온 사람들마저 경악시켰다. 그들은 "거기서 목격한 광경은 프로시노네에서 벌어진 참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군단병들 스스로도 최후까지 저항하는 적에게는 자비가 없음을 숨기지 않았다. 한 폴란드 병사는 "병사의 총검이 그들을 빠르게 지면에서 청소했다"고 적었다.

프로시노네에서 반군에게 가해진 참극 이후 몇 주 만에 봉기는 완전히 붕괴했다. 레시니에프스키에 따르면, "1천3백 명의 폴란드 병사가 마지막 반군 거점 소탕과 지도자 체포 작전에 참여했다".

반군에 대한 무자비한 섬멸

그러나 동포들을 반란 진압에 동원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799년 프랑스가 정복한 나폴리 왕국에서도 군단병들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현지 주민들은 프랑스의 존재를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고, 침략자에 대한 피투성이의 항쟁을 시작했다.

폴란드인들 스스로도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몇몇 병사는 반군의 손에 넘어가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훗날 11월 봉기의 독재자가 되는 유제프 흐워피츠키가 이끄는 군단병들은 부활절 일요일에 실질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잔혹함은 결코 반군에 뒤지지 않았다. 야습 당시 제1군단 제2대대 병사들은 프랑스 소총병과 50명의 창기병과 함께 트라에타를 공략해 수비 중이던 반군을 죽였고, 마을 주민들은 '누구 하나 살려두지 않고' 베어 죽임당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폴란드인들은 학살에 만족하지 않고 화약과 불을 이용해 마을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폐허 위에는 "트라에타는 여기 있었다 — 반란을 일으켰다 — 이제는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바위만 남았다.

레시니에프스키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탈리아 마을이 먼저 목격하고 그다음 직접 겪은 야만성은 몽골 침입 시대, 국왕과 가톨릭 신앙에 충성하던 방데 지역을 혁명 프랑스가 잔혹하게 진압한 사건, 혹은 지난 세계대전의 만행들과 비교될 만하다.
유사한 사건들이 양측 모두의 잔혹함을 부추겼다. 반군의 야수성에 대해 군단병들은 징벌 원정과 무자비한 섬멸로 응답했다. 그 형태에서 끔찍했던 전쟁은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악마들을 깨워내기 시작했다.

이후 몇 주 동안 증오의 나선은 더욱 강해졌고, 양측의 희생자 수도 늘어갔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반군 상대에서 폴란드인들이 보여준 효율성을 오래 기억했다. 몇 년 후 그는 산토도밍고의 반란 진압에 그들을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슬라보미르 레시니에프스키, 폴란드인의 나폴레옹적 광기(Napoleoński amok Polaków), Wydawnictwo Literacki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