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거리처럼 보입니다. 소변을 들여다보는 의사의 모습으로 그려진 예수. 우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풍자화 속 돌팔이 의사는 익숙하지만, 예수의 형상으로 그려진 의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수백 년 동안 회화에서 진지하게 다뤄진 적법한 소재였습니다.
중세 후기부터 오줌병(요검 용기)은 의사의 상징이었고, 진료소 간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소변 검사는 매우 진지한 일이었습니다. 의사는 환자 소변의 색과 냄새만으로 많은 것을 판단할 수 있었고, 여성의 임신 여부조차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17세기에는 이 주제의 우스꽝스러운 변형들이 회화에서 특히 유행했습니다. 예컨대 의사가 임산부의 소변을 진지하게 검사하는데, 누가 보더라도 배가 나온 것만 봐도 임신한 것이 분명한 장면입니다.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어리석은 꼴을 당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풍자화에서는 관람자가 항상 주인공, 즉 의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코믹한 효과가 만들어집니다.
신성모독일까?
돌팔이 의사를 다룬 연극에서 파생된 '소변 검사하는 의사'라는 주제는 큰 수요를 얻었습니다. 화가들은 언제나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 시장을 겨냥해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런 풍자 버전과 동시에 덜 알려진 진지한 버전도 탄생했는데, 가장 오래된 작품은 16세기 초의 것으로 손에 오줌병을 든 예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RKD – 네덜란드 미술사연구소의 학술지 <올드 홀랜드>에 발표한 글에서 미술사학자 로베르트 E. 게르하르트(Robert E. Gerhardt)는 의사가 예수의 형상으로 그려진 전체 시기를 처음으로 조명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돌팔이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던 만큼, 이런 표현이 신성모독이 되지 않았을까 의문을 품었습니다. 과연 예술가들이 예수를 돌팔이로 그렸던 걸까요? 그의 결론은 '아니오'였습니다. 치유자로서의 예수는 경건한 의도로 그려졌으며, 그 근거는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가 사람들을 고치는 구절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게르하르트에 따르면 예수와 의사의 상징인 오줌병을 연결한 것은 이미 13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 프랑스 문헌에서는 예수가 환자의 소변을 검사하고 사혈을 집행하는 의사로 언급됩니다. 예수가 검사용 오줌병을 든 모습을 담은 가장 오래된 작품은 1510년의 목판화로, 브뤼셀의 출판업자 토마스 반 데르 노트(Thomas van der Noot)가 인쇄했습니다. 원문은 '요(尿)를 검사하시는 대의사(大醫師) 예수'라는 뜻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목판화를 악마가 가져다준 악에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예수의 모습으로 해석합니다.
많은 후계자들
'의사로서의 예수'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헨드릭 골치우스(Hendrick Goltzius, 1558–1617)를 통해서입니다. 그 자신이 폐질환 환자였던 하를렘의 유명 판화가는 경력 내내 이 주제의 여러 버전을 제작했습니다. 그가 사망한 뒤에는 판목이 빌럼 얀스 블라우(Willem Jansz. Blaeu, 1571–1638)와 클라스 얀스 피셰르 2세(Claes Jansz. Visscher II, c. 1578–1652) 같은 저명한 판각 출판업자들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글씨체만 약간 바꾼 채 같은 판화를 다시 출판했습니다.
골치우스의 판화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작품은 <의료 직업의 우의>라 불리는 4부작 중 하나로, 예술가는 이 상징적인 연작에서 의사를 네 가지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신으로서의 의사>에서 환자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신처럼 의사를 우러러보며 치유를 구합니다. 나머지 세 그림에서 의사는 차례로 희망을 안겨 주는 천사, 환자가 완쾌되었을 때의 인간, 그리고 거액의 청구서를 쓰는 악마로 묘사됩니다.
계몽주의의 등장
반 데르 노트의 예수상과 골치우스의 '신으로서의 의사'(후광으로 식별 가능)는 점점 인기를 얻던 풍자적 돌팔이 의사 그림들과 분리해서 볼 수 없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진지한 판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회화에는 깊은 경건함이 담겨 있습니다. 늦은 변형 작품으로는 1752년 얀 요제프 호레만스(Jan Jozef Horemans)의 그림이 있으며, 이는 골치우스의 판화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중앙에 예수가 서 있고 환자들이 배경에 있었다면, 이 그림에서는 예수가 소변을 검사하며 환자의 침상 곁에 앉아 있습니다. (기사 상단의 큰 이미지 참조. 이 그림은 보르하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후 '의사로서의 예수'라는 주제는 막을 내립니다. 그 배경에는 계몽주의의 부상이 있습니다. 이미 17세기 초부터 치유 행위가 곧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과 함께 과학과 신앙 사이의 긴장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와 경험적 연구를 지향하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신앙과 과학이 더 이상 하나로 결합될 수 없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의사를 예수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의학은 문자 그대로 종교적 후광을 잃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