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유럽 왕실의 '첫날밤' – 모두가 지켜보던 군주들의 결혼 첫밤

유럽 군주들에게 '첫날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며, 결혼 생활이 행복하고 오래 지속될지를 가늠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곤 했습니다.

군주의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국가의 대사였기에, 혼인이 완성되는 첫날밤 역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습니다. 18세기까지 잉글랜드를 포함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신혼 부부가 성행위와 출산을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객들이 결혼 첫날밤에 동석했습니다. 참고로 왕실 출산마저 정부 관료들이 입회하는 등 사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 이야기는 또 따로 있습니다.

열쇠구멍 너머로

첫날밤에 낯선 이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군주 중에는 폴란드 귀족 여인 마리나 므니셰흐(Marina Mniszech)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1605년 5월 18일, '괴뢰 드미트리'로 더 잘 알려진 차르 드미트리와 결혼했습니다.

유럽 왕실의  첫날밤  – 모두가 지켜보던 군주들의 결혼 첫밤

왕실의 결혼 첫날밤은 부부만의 사적인 시간이 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마리나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끝난 뒤에는 '침상 배치' 의식, 즉 아내를 남편의 침대에 엄숙히 눕히는 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젊은 차르의 신부는 보야르(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실에 들어섰고, 시녀들이 그녀를 혼인 침대에 눕혔습니다. 이후 드미트리가 방에 들어와 아내 곁에 누웠지만, 보야르들은 결혼의 완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야만적인 풍습이 유럽 전역에서 흔했던 만큼, 폴란드 출신 아내도 남편도 보야르들이 침대 곁에 늘어서 있는 것을 사생활 침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친밀감의 착각을 위해 침대 주위에는 보랏빛 휘장이 내려졌습니다. 사랑의 행위가 끝나자 신랑은 큰 소리로 "결혼이 완성되었다"고 외쳤고, 하객들은 마리나와 드미트리의 침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결혼

18세기에는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교통수단이 원시적이어서 장거리 이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자와 공주의 배우자를 고를 때는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의 초상화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이 후보자의 매력 여부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직접 마주하는 순간, 예비 부부는 대개 처참한 환멸을 맛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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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므니셰흐의 결혼. 결혼식 후 그녀는 보야르들과 함께 첫날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훗날 예카테리나 2세(1729~1796)가 된 슈체친 출신의 조피 폰 안할트체르프스트 공주도 이런 방식의 혼담을 경험했습니다. 1740년대 초, 러시아 여황제 엘리자베타는 조카이자 후계자인 페트르를 위한 신부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조피의 초상화를 본 그녀는 적임이라 판단했고, 1744년 독일 공주는 어머니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습니다. 정교회로 개종한 뒤 조피는 카타리나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젊은 여인은 미래의 남편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그는 몸이 마르고 허약했으며, 체형은 균형을 잃었고, 얼굴에는 천연두 자국이 온통 얼룩덜룩했습니다. 게다가 지적·정서적 발달도 더뎠습니다. 예절 또한 형편없었다는 사실은 대공의 식탁 예절에 관한 지침에서 잘 드러납니다. 페트르가 "고귀한 인사들 앞에서 식탁에서 저속하고 무례한 농담을 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자신을 시중드는 사람들의 얼굴과 옷에 음료를 끼얹지 않도록 일일이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1745년 8월 21일, 대공비 카타리나와 페트르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이윽고 첫날밤이 다가왔습니다. 여황제 엘리자베타와 궁중 귀부인들은 카타리나를 침실까지 데려가 옷을 벗겨주고 잠옷과 로브를 입혀준 뒤 방을 나섰습니다. 한편 페트르는 이웃방에서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유럽 왕실의  첫날밤  – 모두가 지켜보던 군주들의 결혼 첫밤

카타리나 2세는 다가오는 첫날밤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모친에게 결혼의 의무에 대해 들은 16세의 신부는 사시나무처럼 떨었습니다. 그녀는 새남편이 나타날 문을 불안하게 바라봤습니다. 한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공비의 당혹감은 그녀의 일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일어나야 하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나? 모르겠다." 마침내 시녀가 문을 두드리고, 남편이 명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페트르가 마침내 침실에 나타났을 때는 만취 상태였고, 하인이 자신이 아내와 함께 침대에 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며 킥킥거린 뒤 그대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17년의 결혼 생활을 실제로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페트르가 1754년 태어난 아들 파벨의 아버지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카타리나의 연인 세르게이 살티코프의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부부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1837~1898), 흔히 '시시'로 불리는 그녀는 겨우 16세에 결혼했습니다. 남편 프란츠 요제프는 24살로 그녀의 사촌이었습니다(두 사람의 어머니는 친자매였습니다). 시시는 그를 사랑했지만 너무 어리고 겁이 많아 친밀한 부부의 삶을 시작하기 어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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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왕과 왕비로 대관하는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결혼 피로연 후 부부는 침실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자베트의 어머니는 딸에게 전날 밤의 일을 물었고, 시시가 단순히 겁이 났기 때문에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어머니도 아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내 황궁 전체에 황제와 엘리자베트가 아직 부부가 되지 못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은 세 번째 밤이 되어서였고, 궁정의 모든 신하들 역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후 부부의 육체적 관계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트의 리비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애초에 육체적인 사랑을 좋아하지 않았고 플러팅 쪽을 더 선호했습니다. 황후의 전기 작가 브리기테 하만(Brigitte Hamann)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자녀 사이 9년의 간격이 시시와 프란츠 요제프 사이의 성관계 부재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랑과 열정

가장 성공적인 첫 경험은 빅토리아 여왕과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의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군주는 흔히 고지식한 인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열정적인 인물로, 육체적 즐거움을 사랑하는 만족을 모르는 연인이었습니다. 다만 여왕의 확고한 신념에 따르면 침대에서의 애무는 결혼 이후에,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배우자와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왕실의  첫날밤  – 모두가 지켜보던 군주들의 결혼 첫밤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 첫날밤에 흐뭇하게 만족했습니다.

부부를 하나로 묶은 사랑 역시 행복한 사생활에 큰 몫을 했습니다. 빅토리아는 잘생기고 슬림한 사촌 앨버트(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의 소유자)에게 깊이 반해 있었습니다. 여왕은 일기에서 남편과의 첫날밤을 상세히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불행히도 이 기록은… 빅토리아의 막내딸 베아트리체 덕분에 남아있지 못합니다. 고인이 된 어머니의 일기를 편집하라는 명을 받은 베아트리체는 어머니의 노골적인 표현에 충격을 받아 해당 페이지들을 찢어버린 뒤, 어머니의 기록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옮겨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첫날밤 이후 빅토리아의 행복에 대한 증언은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아침에 그녀를 본 모든 이에게 드러났다(…) 그 얼굴은 행복으로 빛났다"라고 부부의 전기 작가 데이비드 더프(David Duff)는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여왕은 사랑하는 앨버트와 함께하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 결혼 초기 몇 년간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1. Duff D., Victoria and Albert. London: Tandem, 1973
  2. Hamann B., Empress Elizabeth. Warsaw: PIW, 2015
  3. Troyat H., Katarzyna the Great. Insatiable lust for life and power. Warsaw: Amber, 2016
  4. Wiernicka W., Polish women who ruled the Kremlin. Warsaw: Bellona, 2018
  5. Woodham-Smith C., Queen Victoria: Her Life and Times. London: Hamilton,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