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치 이데올로기의 설계자 로젠베르크, 잃어버렸던 일기장이 미국서 발견되다

나치 독일의 핵심 이데올로그였던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의 일기장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약 400페이지 분량의 이 일기장은 1936년부터 1944년 겨울까지의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자료가 제3제국 내부의 권력 다툼과 홀로코스트 관련 의사결정 과정 등 나치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재판 뒤 70년간 행방불명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아돌프 히틀러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나치당(NSDAP)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한 핵심 인물이었다.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그는 전쟁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홀로코스트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데 대한 공동 책임을 인정받았다. 로젠베르크는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가 생전에 남긴 방대한 일기장은 재판의 증거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일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검찰 측 인물이었던 로버트 켐프너(Robert Kempner)가 미국으로 반출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리고 약 70년 만에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연구진이 일기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대부분은 로젠베르크의 친필로 작성되어 있으며, 상당 부분은 나치당 공식 서식지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독일 현대사 전문가 빌렘 멜칭(Willem Melching) 교수는 "일기장이 진품이라면 역사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며 "제3제국의 이데올로기, 수뇌부 간 권력 다툼, 유대인 박해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일기류는 집필 이후의 사건을 알고 나중에 수정·보완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덧붙였다.

발견 소식에 대한 공식 기자회견이 곧 열릴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은 이미 공개됐다. 일기장에는 로젠베르크가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 헤르만 괴링 등 나치 수뇌부와 나눈 정상급 회동에 관한 미공개 기록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제3제국 정점에서 벌어진 권력 갈등, 그리고 로젠베르크가 직접 조율했던 나치의 대규모 미술품 약탈 작전에 대한 생생한 정보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적 세계 혁명'을 꿈꾸던 사상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1893~1946)는 역사학계에서 제3제국을 지탱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나치당 창당 초기부터 활동한 원로 멤버로, 히틀러가 정치 무대에 등장한 초창기부터 그와 긴밀히 협력했다. 1923년 뮌헨 폭동이 실패해 히틀러가 수감되었을 때, 히틀러는 로젠베르크에게 나치 운동의 임시 지도자 자리를 맡기기도 했다.

1930년 로젠베르크는 저서 『20세기의 신화(Der Mythus des zwanzigsten Jahrhunderts)』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한때 지배적이었던 아리아 문화가 외래 인종, 특히 유대인의 '침투'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리아인 같은 우월 인종이 슬라브족과 유대인 같은 열등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규정했으며, 20세기에 '하켄크로이츠(만자) 깃발 아래' 세계 인종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했다.

물론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는 극소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로젠베르크의 산문은 지루하고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저명한 역사가 리처드 에번스(Richard Evans)에 따르면, 심지어 히틀러 본인도 책의 일부만 읽었을 뿐이며 그 유사종교적인 문체를 몹시 싫어했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담긴 일부 사상이 훗날 나치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동부 점령지 장관,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그림자

1941년 7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로젠베르크는 점령 동부 영토 제국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요직에서 그는 점령지 동유럽의 게르만화와 행정 재편 업무를 총괄했으며, 나치 지도부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동유럽을 '유태인 없는 땅'으로 만든다는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흥미롭게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로젠베르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 몇 안 되는 나치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 가능성이 극히 낮다. 그의 최측근 참모 두 명이 그를 대신해 1942년 1월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제 회의(Wannsee Conference)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회의에서 유대인 대량학살의 물류와 실행 세부 사항이 최종 조율되었다.

잃어버렸던 일기장의 반환은 나치 연구 분야에 새로운 1차 사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이 자료에 대한 감정과 해석이 진행되면서, 제3제국의 의사결정 구조와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한층 더 정교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