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조국의 아버지, 오라녜 공 빌럼 — 스페인에 맞선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모두가 환영받는 나라, 그의 이상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모두 차별 없이 환영받는 독립된 네덜란드 국가. 그것이 오라녜 공 빌럼(Willem van Oranje)이 그린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전, 한 발의 치명적인 총탄이 그의 가슴에 꽂히고 말았다.

스페인 왕과의 인연, 그리고 균열

"나는 언제나 히스파니아의 왕을 존경해 왔다." 네덜란드 국가인 빌헬무스(Wilhelmus)에서 오라녜 공 빌럼은 이렇게 노래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사실대로였다. 펠리페 2세 국왕이 스페인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는 판오라녜를 홀란트·젤란트·위트레흐트 지역의 총독(stadhouder)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빌럼은 펠리페의 통치 방식에 점차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는 고위 귀족들과 함께 스페인의 지배에 맞섰는데, 핵심은 자신들이 지방 정치에서 더 큰 발언권을 원했기 때문이다.

개신교 박해와 마음의 변화

빌럼의 눈에는 또 다른 가시가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펠리페 2세가 개신교도들을 잔혹하게 박해한 일이었다. 판오라녜 본인도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의 가족과 가까운 이들 중 상당수는 개신교 신자였다. 그는 1573년 스스로 칼뱅주의로 개종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1566년의 성상 파괴 운동(Beeldenstorm)이었다. 이 사태에 펠리페 2세와 알바 공작이 얼마나 가혹하게 대응하는지 직접 목격한 빌럼은, 스페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위트레흐트 동맹과 독립 선언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하지 않았고, 무기를 들어 맞서 싸웠다. 그는 홀란트와 젤란트를 장악했으며, 다른 주들과 손잡고 스페인에 대항하는 연합을 추진했다. 동시에 그는 종교의 자유 확립에도 힘썼다. 1579년 위트레흐트 동맹(Unie van Utrecht)이 체결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이듬해가 아닌 1581년에는 각 주가 펠리페 2세를 네덜란드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배반 포고문'(Plakkaat van Verlatinghe)을 선포했다.

비극적인 최후

스페인과의 인연은 끊겼지만, 새로운 문제가 남았다. 그렇다면 누가 이 땅의 새로운 군주가 되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판오라녜는 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1584년 7월 10일, 업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던 공작은 광신적인 가톨릭 신자 발타자르 헤라르츠(Balthasar Gerards)의 총격을 받아 무참히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