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Paralympic Games)은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장애인 선수들이 다양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는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입니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하계와 동계 대회로 나뉘며, 각각 4년 주기로 열리지만 두 대회는 서로 2년 간격으로 개최됩니다.
2021년 8월 24일, 제16회 하계 패럴림픽이 도쿄에서 공식 개막했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폐막식으로부터 불과 2주 뒤였습니다. 1948년 단 16명의 선수가 한 가지 종목에 출전하며 시작된 이 대회는 오늘날 4,000명이 넘는 선수가 28개 종목에 출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행사로 성장했습니다.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패럴림픽 선수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패럴림픽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 대회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패럴림픽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올림픽의 역사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패럴림픽의 시작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모든 것은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영국의 스토크 맨더빌(Stoke Mandeville)이라는 도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 전인 1944년, 영국 정부는 독일 출신 신경과 의사 루트비히 구트만(Ludwig Guttmann)에게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 참전 용사를 위한 척수 손상 전문 부서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환자 대부분은 척수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를 겪게 된 영국 왕립공군 파일럿들이었습니다. 끔찍한 전쟁의 후유증은 참전 용사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이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심각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회복 치료법은 무조건적인 안정이었지만, 이는 환자들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구트만 박사는 부상당한 참전 용사들의 건강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고, 마침내 환자들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치료를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건강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자 그는 환자들이 간단한 구기 종목을 할 수 있을 만큼 훈련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던 환자들은 넷볼, 농구, 다트, 심지어 양궁까지 즐기게 되었고, 그들의 건강은 눈부시게 회복되었습니다.
스포츠가 참전 용사들에게 효과적인 재활 수단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스토크 맨더빌 게임
1948년, 그해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영감을 받은 구트만 박사는 자신의 환자들을 위한 스포츠 대회를 직접 개최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스토크 맨더빌 게임에는 남자 선수 14명과 여자 선수 2명, 총 16명이 참가해 유일한 종목인 양궁에서 기량을 겨뤘습니다.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작은 대회가 훗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포츠 행사인 국제 패럴림픽으로 성장하게 될 줄은 말입니다.

구트만 박사의 치료 접근법은 단순히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자들이 사회에서 존엄성을 되찾고 존중받는 개인으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전체적인(holistic) 치료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훗날 패럴림픽 운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국제 스토크 맨더빌 게임
1952년, 네덜란드 참전 용사 그룹이 대회에 참가해 영국 선수단과 경기를 펼치면서 스토크 맨더빌 게임은 국제 대회로 확장됩니다. 이때부터 대회는 '국제 스토크 맨더빌 게임'으로 명명되었고, 매년 개최되었습니다.
참가자 수는 2년 만에 16명에서 60명으로 늘었고, 넷볼과 창던지기 등 여러 종목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나아가 아시아는 물론 호주처럼 멀리 떨어진 국가들까지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패럴림픽이나 스토크 맨더빌 게임이 생기기 전에도 장애인 선수들이 올림픽에 직접 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장애인 선수는 독일계 미국인 체조 선수 조지 루드비히 아이저(George Ludwig Eyser)입니다. 그는 왼쪽 다리에 나무 의족을 낀 채 1904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해 무려 6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첫 국제 스토크 맨더빌 게임 이후, 패럴림픽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중요한 변화들이 4년을 주기로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로마, 제9회 국제 스토크 맨더빌 게임
패럴림픽 발전사의 첫 번째 큰 전환점은 1960년에 찾아왔습니다. 바로 우리가 오늘날 아는 최초의 패럴림픽이 시작된 해입니다. 제9회 국제 스토크 맨더빌 게임은 하계 올림픽 폐막 6일 후, 같은 개최지인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또한 이 대회는 참전 용사가 아닌 장애인 선수들이 처음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대회이기도 합니다. 이 해에는 23개국에서 400명의 선수가 참가해 8개 종목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1960년부터 대회는 매년 개최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4년 주기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동계 패럴림픽의 등장
1960년 로마 대회 이후 패럴림픽 참가 선수 수는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1976년까지는 휠체어 사용 선수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1976년부터는 장애 유형의 범위가 넓어져 절단 장애와 시각 장애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애 부문이 추가되면서 '패럴림픽'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변화했습니다. 원래 '패럴림픽'은 올림픽(Olympic)과 하반신 마비(paraplegia)라는 두 단어를 결합해 만든 용어로, 척수 손상 환자와 관련된 대회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의미로는 더 이상 이들을 포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패럴림픽'의 '파라(Para)'는 그리스어 전치사 '곁에, 나란히(parallel)'를 뜻하는 것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즉, 이 대회는 올림픽과 나란히 함께 열리는 대회라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해인 1976년, 스웨덴 외른셸스비크(Örnsköldsvik)에서 최초의 동계 패럴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하계 패럴림픽과 마찬가지로 이 대회 역시 4년 주기로 열리며 개막식과 폐막식을 갖추었습니다. 첫 대회에는 알파인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 두 종목만 있었지만, 이는 패럴림픽 발전사의 두 번째 큰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
다음 큰 전환점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같은 나라에서 열렸습니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은 같은 도시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직후에 개최되었고, 올림픽에서 사용된 동일한 시설을 활용했습니다. 이 방식은 1992년, 1996년, 2000년 대회까지 이어졌으며, 2001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형식을 공식적으로 따르기로 합의하면서 제도화되었습니다.
또한 1988년 대회에서 '패럴림픽'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1988년 대회는 흔히 오늘날 패럴림픽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패럴림픽 운동
국제패럴림픽위원회(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 IPC)는 198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패럴림픽 대회의 총괄 관리 기구 역할을 합니다.
IPC는 패럴림픽 대회와 선수들을 책임지는 기관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패럴림픽 운동(Paralympic Movement)을 관리하고 그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패럴림픽 운동은 스포츠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더욱 확대하고자 하는 국제 스포츠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스포츠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장애인의 이동성을 개선하고, 노동·교육·스포츠·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며, 전 세계적인 플랫폼을 통해 장애인을 둘러싼 각종 편견과 낙인을 허물어가고 있습니다.
1992년 티뉴-앙베르빌 동계 패럴림픽
1992년 프랑스에서 열린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과 동일한 개최지와 시설이 패럴림픽에 사용되었습니다.
1992년 이후 패럴림픽은 매번 올림픽이 끝난 2주 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설과 트랙, 경기장을 사용해 개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1년 IOC와 IPC는 2012년 올림픽 개최 도시가 패럴림픽도 함께 개최하도록 보장하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오늘날 패럴림픽에는 전 세계에서 4,000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합니다. 패럴림픽 선수 자격이 되는 장애 부문도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현재는 근력 저하, 수동적 관절 운동 범위 제한, 사지 결손, 다리 길이 차이, 단신(키가 작은 경우), 과긴장(근육 긴장 항진), 운동 실조, 무정위 운동, 시각 장애, 지적 장애 등 폭넓은 장애 유형의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종목 목록도 첫 스토크 맨더빌 게임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길어졌습니다. 오늘날 선수들은 하계와 동계를 합쳐 총 28개 종목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하계 22개 종목, 동계 6개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궁, 육상, 배드민턴, 보치아, 카누, 사이클, 마장마술, 블라인드 축구, 골볼, 유도, 파워리프팅, 조정, 사격, 좌식 배구, 수영, 탁구, 태권도, 트라이애슬론, 휠체어 농구, 휠체어 럭비, 휠체어 테니스, 알파인 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스노보드, 휠체어 컬링 등이 포함됩니다.
패럴림픽은 왜 중요한가?
패럴림픽은 인류 전체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에게 말입니다.
무엇보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선수들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뽐낼 수 있는 엘리트 규모의 대형 무대를 제공합니다. 이는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장애인의 잠재력을 의심하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은 전 세계 장애인들, 그리고 삶을 살아가고 사회의 존중을 얻기 위해 온갖 역경과 싸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선수들의 탁월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장애는 누군가의 목표 달성이나 꿈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패럴림픽은 사회 변화의 매개체이며,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에 맞서 육체적·정신적 장벽을 극복하도록 격려합니다.
또한 패럴림픽은 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장애인을 더욱 눈에 띄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장애에 관한 대화가 더 편안해지고, 장애인을 더욱 환영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평등한 대우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과 낙인 철폐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실제로 대회의 TV 중계가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더 개방적으로 이야기하게 된 것 자체가 어떤 변화로든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패럴림픽이 열릴 때마다 선수들은 이전보다 더 발전된 기량으로 더 많은 메달을 획득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과 존중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아기토스(Agitos) 상징

둘째,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패럴림픽 역시 인류 사이의 평화와 화합을 촉진하는 통로입니다. 이는 패럴림픽 운동의 가치와 함께 2003년에 디자인된 패럴림픽 상징에 담겨 있습니다. 상징은 세 개의 아기토스(agito)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기토스는 빨강, 파랑, 초록 세 개의 초승달 모양이 중심점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 색들은 세계 대부분의 국기에 사용되는 색을 상징하며, 하나의 중심점을 중심으로 원을 이루는 형태는 전 세계 선수들이 경쟁의 정신으로 한데 모인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스포츠는 언제나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활동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상징은 선수들이 조화, 우정, 연대를 위해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라틴어로 '아기토(agito)'는 '나는 움직인다(I move)'라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성취하는 선수들의 능력을 기리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패럴림픽에는 앞으로도 발전만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재의 장애 분류에 속하지 않는, 더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스포츠 혁신
패럴림픽은 장애인 선수들이 스포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장비 개발의 필요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선수들은 무거운 전통적인 휠체어로만 스포츠를 즐겨야 했지만, 이제는 기존 무게의 절반에 불과하면서도 유연하고, 선수의 포지션에 맞게 특별히 설계된 휠체어가 사용됩니다. 수영의 경우 시각 장애 선수들은 물속에서 자신의 감각과 코치의 음성 피드백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손목과 팔꿈치에 착용하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이 장치는 소리와 진동을 통해 동작이 올바르게 수행되었을 때 선수에게 알려줌으로써 최적의 훈련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 하나의 인기 있고 유용한 발명품은 '플렉스 풋 치타(Flex-Foot Cheetah)'입니다. 이것은 절단 장애 선수들이 달리고 뛸 수 있도록 돕는 의족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선수 자신입니다. 장비는 단지 이동을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특히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기술과 장비의 혁신은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더욱 다양한 종목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대회에 새로운 종목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배드민턴과 태권도 두 종목이 새롭게 추가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의 디자이너, 혁신가, 엔지니어들의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특히 학생들은 '스포츠 혁신 챌린지(Sports Innovation Challenge)'나 '오픈 혁신 챌린지(Open Innovation Challenge)'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창의력을 연마할 기회를 얻고, 선수들은 적합한 장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희망찬 미래를 향해
스포츠는 서로 다른 배경, 이야기, 문화를 가진 사회를 하나로 묶고, 교육하고, 영감을 줍니다. 우리는 패럴림픽 선수들이 선수 그 이상으로 대우받는 미래를 희망합니다. 사회에서 평등하게 대우받고, 스포츠 외의 분야에서도 동등한 기회를 찾으며,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장애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당당한 시민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장애에 대한 무지를 줄이는 문화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핵심은 더욱 포용적인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