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서양과 일본, 시선의 차이를 말하다

서양과 일본이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방식은 '시프팅 퍼스펙티브스(Shifting Perspectives)'의 핵심 주제다. 동아시아 미술사 및 물질문화 교수인 빌럼 반 휄릭(Willem van Gulik)이 오는 11월 23일 월요일, 은퇴의 인사를 전한다.

호기심

일본인은 외래 문화를 자주 모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의 있는 입들은 그 '외래'라는 말이 곧 '서양'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긍정적으로 보면, 일본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늘 호기심으로, 대개는 열정적으로 맞이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해당 문화를 받아들이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곧 받아들여진 것들은 지우기 어려운 일본 고유의 색채를 띠게 된다.

자발적 고립

외래 문화의 수용은 서기 초기, 한반도를 거쳐 들어온 중국 문화와 그로부터 조금 뒤 중국을 통해 전해진 불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두 가지는 일본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온 수용 사례들이다. 비슷한 충격은 200년 넘는 쇄국 이후 19세기 중반 개국과 함께 찾아왔다. 서양 문물은 폭넓게 흡수되었고, 일본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봉건 국가에서 기술 중심 국가로 탈바꿈했다.

경제 기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현상이 되풀이되었고, 앞서 언급한 악의적인 입들은 일본의 '경제 기적(Wirtschaftswunder)'이 오로지 이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격변의 사건들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반 휄릭이 오랫동안 마음에 두어온 주제, 즉 서양 회화와 원근법 기법이 일본 판화와 회화로 전수된 과정도 포함된다.

유행 트렌드

1540년대 포르투갈 상인들이 최초의 서양인으로 일본에 도착했고, 1549년에는 예수회 선교단이 뒤따랐다. 기독교는 호기심 많은 일본인들에게 큰 매력을 발휘했다. 반 휄릭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통통한 바지와 모자, 가능하면 코에 안경까지 걸친 서양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의 정점은 한 손에는 손수건을, 다른 손에는 묵주를 들고 걸으면서 라틴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복제

1500년대 후반까지 수십만 명의 일본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종교화와 구리판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유럽에서의 수입만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일본 화가들이 이러한 작품들을 복제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다. 반 휄릭은 "복제 과정에서 원근법의 적용과 명암법(키아로스쿠로) 같은 서양 기법들이 이론적 인식 없이도 충실하게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

혼합 양식

동시에 비종교적 이미지들도 복제되었고,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혼합 양식이 탄생했다. 반 휄릭은 "반면 서양 회화 기법의 수용과 동화는 실제로 결코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으며, 어쨌든 서양 회화 양식이 일본에 뿌리내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데지마

17세기 초, 포르투갈인과 스페인인의 역할은 일본에서 대체로 끝났고, 그와 함께 기독교 전반, 특히 로마 가톨릭 신앙의 역할도 막을 내렸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 성립과 함께 시작된 정치적 과정은 결국 1641년 모든 유럽인의 추방과 기독교의 완전한 근절로 이어졌다. 네덜란드인과 중국인만이 엄격한 조건 아래 무역을 할 수 있는 작은 거점을 설치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상관이 자리한 인공섬 데지마는 200년 넘게 일본이 서양 세계를 향해 열어둔 유일한 창구였다.

생활 수준

특히 18세기에 일본 당국과 학자들 사이에서 서양 학문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네덜란드 상인들과 긴밀히 접촉하던 공식 통역관들은 '난학자(蘭學者)'로 발전했다. 그들은 요청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네덜란드어 학술 저작들을 번역했는데, 그중에는 회화에 관한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쇄국 기간의 오랜 평화 덕분에 도시 인구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여유와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중국 판화

시각 예술 분야에서의 번영은 주로 판화, 이른바 우키요에('떠다니는 세계의 그림')의 부흥으로 나타났다. 반 휄릭은 "18세기 후반에는 과장된 중앙 원근법 구도를 사용한 판화들도 등장했다. 이 판화들은 억지스럽고 때로는 서툴러 보이지만, 서양 원근법 구성의 원리가 이미 익숙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일본의 원근법 판화와 요하네스 프레데만 데 프리스(Johannes Vredeman de Vries)의 1604년 교재 『원근법(Perspective)』의 삽화 사이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원근법이 적용된 중국 목판화가 일본에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