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인터넷 검열, 블로거에 대한 검거.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특정 정보를 차단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을 '자신들이 원하는 진실'을 퍼뜨리는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벌이는 항일 전쟁
중국 게임 항일전쟁 온라인(War of the Resistance Online)에서 플레이어는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을 점령했던 일본군과 가상 공간에서 맞설 수 있다. 게이머는 자신만의 아바타를 만들어 중국 군인, 첩보원 혹은 의사가 되어 다른 이들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것이다.
2007년 게임이 출시되자 몇 시간 만에 10만 명의 게이머가 동시 접속했고, 서버가 멈추지 않도록 추가 용량을 투입해야 할 정도였다. 항일전쟁 온라인은 다른 민족주의 성향의 인터넷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중국에서 큰 인기를 유지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중국 연구자 홍핑 애니 니(Hongping Annie Nie)는 이번 달 『Journal of Contemporary China』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 정부가 어떻게 온라인 게임 분야에 진출했는지 조명한다. 중국 정부는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인터넷 게임의 세계를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 헤로인
20세기 말만 해도 중국 정부는 컴퓨터 게임에 별다른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게임의 중독성, 그리고 어린 게이머들이 극단적인 폭력과 음란물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들만큼이나 깊은 우려를 품고 있었다. 당시 온라인 게임은 '현대판 전자 아편'으로 불릴 정도였다.
1990년대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인터넷 카페와 오락실을 폐쇄하는 일련의 조치가 시행되었다. 그럼에도 젊은 층 사이에서 인터넷 게임의 인기는 계속 높아졌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게임이 해외에서 들어온 것이었지만, 점차 중국 기업들도 게임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반일 게임의 등장
중국 게임 업계의 여러 회사들은 시민들 사이에서 커져가는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해 반일 전쟁 게임을 내놓으며 수익을 올리려 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내 반일 감정은 갈수록 고조되었다. 감정을 악화시킨 사건 중 하나가 1995년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다. 이 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전범들도 함께 합사되어 있어 오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공식 참배를 통해 일본 총리는 중국인들의 눈에 난징 대학살 등 중국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거나 심지어 묵인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니는 1996년 출시된 일본 전쟁 게임 제독의 명령(The Admiral's Decree) 역시 좋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고 지적한다. 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환호 속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을 점령했던 일본군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기업 킹소프트(Kingsoft)는 항일지뢰전이라는 게임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중국이 1937~1945년 일본과의 전쟁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항일전쟁'이다. 출시 행사는 1937년 일본군이 난징에서 자행한 학살을 추모하는 박물관에서 의도적으로 열렸으며, 이를 통해 게임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한층 부각되었다.
정당성 확보의 기회
니는 중국 전쟁 게임의 역사가 중국의 민족주의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강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 지도자들은 온라인 게임 속 민족주의 감정에 재빨리 기름을 부었다. 컴퓨터 게임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얻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니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공산당이 국가를 이끄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국민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통치를 수용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정치적·이념적·문화적 전장'으로 간주한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수입되는 수많은 게임의 내용을 몹시 우려했다. 일본 게임은 역사를 반중적으로 왜곡하고, 서구 게임은 청년들에게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온라인 게임은 공식적으로 '문화 상품'으로 분류되었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유통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법적 규정들로 인해 외국 기업들은 더 이상 중국 게임 시장에 마음대로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수익성 좋은 스승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산 게임 개발을 국정 과제의 최우선 순위로 밀어붙였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역사 서술에 충실하기만 하면 컴퓨터 게임 개발을 위해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았다. 이후 온라인 게임은 공식적인 '역사와 문화의 스승'이 되었다.
니가 주목하는 점 중 하나는 온라인 게임 속에 국민당 무장 세력에게도 자리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27년부터 1950년까지 이어진 중국 내전의 짧은 중단에 불과했다. 공산 승자들은 이후 국민당을 비난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민당의 항일 기여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온라인 게임에서도 보여주려 하는 이미지는 바로 외적(外敵)에 맞선 중국의 단결이다.
니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이 거대한 이익을 실현할 기회를 준다면 이런 정부 방침에 기꺼이 협조한다.
참고로 온라인 게임은 새로운 선전 수단으로서만 정부의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게임 산업을 경제 성장 동력으로도 아낀다. 2009년 국내 판매액만 250억 위안(약 30억 유로)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자신의 권력이 성장하는 경제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번영이 계속 이어지는 한, 사람들은 정치 체제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너무 비싼 전쟁?
그렇다면 온라인 전쟁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게이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강화할까? 니에 따르면 선전 수단으로서의 컴퓨터 게임이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영리 동기는 '중국의 단결'이라는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게임 자체는 무료로 즐길 수 있지만, 가상 전투 장비의 구입과 유지에는 돈이 들어간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게이머들은 무기, 탄약 등 아이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한다. “부자 게이머들은 개의치 않지만, 가난한 게이머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라고 한 중국 게이머는 토로했다.
결국 온라인 게임은 중국에서 커지는 빈부 격차를 그대로 드러내는 셈이다.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조화로운 사회'와는 정반대의 광경이다.
게다가 중국 게이머들이 늘 하나가 되어 가상의 일본군에 맞서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전쟁 게임에서 중국 청년들은 여러 '패거리'를 조직해 서로 대립하고 다투는데, 이는 2차 대전 중에도 공산당과 국민당이 끝내 서로 싸웠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게이머들은 정부가 그리는 이상적인 '중국의 단결'보다 역사적 현실에 오히려 더 가깝다. 따라서 온라인 게임 속 중국의 선전이 반드시 비옥한 땅에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