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린 네덜란드의 노예제·식민지 과거

노예제의 과거는 여전히 많은 네덜란드인의 일상생활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는 지난달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에서 최우수 성적(cum laude)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마르쿠스 발켄홀(Markus Balkenhol)의 연구에서 도출된 결론 중 하나다. 그는 암스테르담 빌머(Bijlmer) 지역의 아프로 수리남계 가구 두 곳에서 약 1년간 함께 거주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수십 년간 노예제 역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단체와 기념물이 이 과거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역사의 이 시기는 오늘날 노예였던 사람들의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발켄홀은 메르턴스 연구소(Meertens Instituut)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민족지학적 현지조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발켄홀은 말한다. "처음에는 기념물과 그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러다 수리남 광장(Surinameplein)에 세워진 '의식의 기념비' 설립자 중 한 명인 로이 리스티를 만나게 되었죠.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동기를 정말 이해하고 싶다면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의 인연으로 저는 암스테르담 남동부, 자위도스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앙기사와 윈티

발켄홀은 빌머의 아프로 수리남계 가구 두 곳에서 거의 1년을 보냈다. 함께 장을 보고, 길거리에서도 집 소파에서도 대화를 나눴다. "노예제의 과거가 일상 대화 속에 여전히 화두로 등장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과거는 주로 암묵적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특히 의복에서 그렇습니다. 앙기사(angisa), 즉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는 접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은 자위도스트 사람들 많은 이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부입니다."

첫 번째 하숙집 주인이 카스카위나(Kaskawina)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발켄홀은 아프로 수리남 문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하게 되었다. 카스카위나는 노예제 시절에 탄생한 수리남 전통 음악 스타일을 가리키는 현대적 용어다. "밴드 덕분에 생일잔치, 결혼식, 축제 등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분명 오락이지만, 그 밑에는 수많은 층위가 있습니다. 예컨대 생일 파티에서 음악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트랜스 상태에 빠져 윈티(winti), 즉 영혼이 나타납니다. 음악에는 이처럼 영적인 차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숨겨진 비밀

"가사는 수리남 역사의 여러 단면, 특히 노예제의 과거를 반영합니다. 동시에 윈티 문화에 관한 숨겨진 메시지도 담고 있는데, 이 역시 노예제 과거와 간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실제로 두 남성과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윈티 이야기가 나오자 그 여성이 불안해하는 것이 보였고, 마침내 그녀는 남성들에게 '그 사람한테 다 말하지 마. 저 사람이 우리한테 그걸 써먹으려 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경계는 백인, 즉 플렌테이션 주인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 장치였습니다."

문화 코드로 남은 절제

"가사를 더욱 주의 깊게 들으면서 저는 '혀의 뒷면을 보이지 마라', '속마음을 함부로 길거리에 내놓지 마라' 같은 격언들, 즉 오도(odos)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비슷한 표현은 다른 문화권에도 있지만, 여기서는 특히 지배적입니다. 저는 박사논문에서 이를 '삼가는 미학(aesthetics of reticenc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노래나 속담 같은 문화 형식을 통해 절제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노예제 시대에 삼감은 곧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윈티 종교를 실천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고(수리남에서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따라서 플렌테이션 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제 분석에 따르면 당시 형성된 구조는 하나의 문화 코드로서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으며, 이 코드는 지금도 네덜란드와 수리남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돌봄의 국가'라는 신화

노예제 역사는 오늘날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때 이 시기는 이미 종결된 과거로 여겨졌음을 생각하면 대조적인 일이다. 발켄홀은 이것이 네덜란드를 선량하고 자비로운 나라로 보는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노예제 폐지를 계기로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네덜란드를 타인을 아끼는 돌봄의 국가(caring nation)로 묘사했고, 노예제를 폐지한 빌럼 3세 국왕은 그 서사 속에서 자상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저는 박사논문에서 노예제 폐지가 부분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데 활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노예제의 잔혹함이 은폐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오히려 네덜란드가 노예제를 폐지한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보여주기 위해 잔혹함이 드러나게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예제의 침묵'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침묵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만 이야기했던 침묵입니다."

배상과 즈바르테 피트, 그리고 미래

이러한 통찰은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발켄홀은 논의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 노예제 추모뿐 아니라 즈바르테 피트(Zwarte Piet) 논란도 다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배상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시작될 것입니다. 카리콤(CARICOM)은 이미 네덜란드 등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그 논의는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식민지 과거가 네덜란드 사회에 너무나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그 실체가 드러날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