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대 왕조는 이미 '유전자 슈퍼쌀'로 번영했다

자연을 손질하는 기술, 생명공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

생명공학은 자연을 다루는 예술로서 그 뿌리가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쌀을 식량으로 재배한 아시아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최초의 아시아 벼농사 농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정 유전자를 지닌 식물을 주로 골라 재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벼의 가장 중요한 변화가 지난 세기의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에서 비롯됐다는 기존 통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역사는 단순히 옛날 우리 나라가 어떤 모습이었고 누가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아는 일만이 아니다. 조상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하루가 어땠는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왕국이나 제국, 나아가 왕조를 세울 수 있었는지를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

일본의 생물학자 마코토 마츠오카(Makoto Matsuoka)는 바로 이 물음에 답하고자 했다. 1만 년 전 아시아의 조상들은 벼를 재배해 생산량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마츠오카는 종이로 된 역사책이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답을 찾지 않았다. 대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 즉 DNA의 일부를 해독했다.

작은 키, 굵은 낟알

1만 년 전 사람들이 DNA에 대해 알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마츠오카의 먼 조상뻘인 중국 대륙의 선주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 SD1이라 불리는 특정 유전자를 선택해 왔다. 벼 품종을 교배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벼농사꾼들은 SD1 유전자를 변화시켰고, 그 결과 쌀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것. 마츠오카는 학술지 PNAS에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SD1 유전자의 변화는 벼 줄기를 짧게 유지해, 식물이 먹을 수 있는 쌀알 같은 다른 부위를 키우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일반 아시아벼, 일본벼, 야생벼 사이의 광범위한 DNA 비교 분석을 통해 이 결론에 도달했다.

1만 년 전부터 쌀 생산이 이미 SD1에 의존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현대 생명공학자들은 SD1의 변화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믿어왔다. 실제로 이 유전자는 약 50년 전 녹색 혁명기에 크게 변형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당시 과학자들은 새로운 교배 방식이나 방사선 조사 등을 통해 식물의 DNA를 빠르게 바꾸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인가, 오래된 변화인가

처음에 마츠오카 자신도 SD1이 수천 년 전에 변했는지, 아니면 최근에 변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변화가 녹색 혁명 이전인지 이후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연구 대상으로 오늘날 '구식'으로 여겨지는 품종, 즉 녹색 혁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품종들을 일부러 선택했다. 이들은 1만 년 전의 벼 품종과 가장 흡사하다.

그가 마주한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원시 품종에서도 SD1이 야생벼와 달랐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원시 품종들 사이에서도 SD1의 변화 양상이 서로 달랐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시아의 초기 벼농사꾼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멀리 떨어진 과거에 각자 벼를 작게 만들면서 낟알은 크게 키웠음을 시사한다.

최초의 재배자들이 집중한 것

사실 마츠오카의 조상들은 SD1 유전자에 특별히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시 품종의 DNA는 여러 면에서 야생벼와 매우 비슷하지만, SD1 유전자가 들어 있는 부분만은 예외다. 이는 사람들이 처음 벼를 재배하기 시작할 때, 의식적이든 아니든 야생벼와의 교배를 거듭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인류는 현대 과학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교한 유전자 선택, 즉 일종의 원시적 생명공학을 수행해 온 셈이다. 풍성한 쌀 수확이 쌓여간 곳에서 인구가 늘고 도시가 생겨났으며, 그 위에 왕조가 세워졌다. '유전자 슈퍼쌀'은 이미 1만 년 전부터 문명의 초석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