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가 대중 언어로 된 성경의 번역과 보급을 금지했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속어(민중 언어)로 쓰인 성경이 사회 전 계층에 걸쳐 널리 유통되었고, 구두장이나 재단사처럼 평범한 장인들조차 자신의 모국어 성경을 집에 두고 읽는 경우가 흔했다.
이는 네덜란드 그로닝언 대학교가 유럽 규모로 진행한 '종교개혁 이전 성경 낭독·해석 문화' 대형 연구의 첫 성과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연구를 이끄는 사브리나 코르벨리니(Sabrina Corbellini) 박사는 "속어 성경은 개신교의 발명품이 아니라 후기 중세 시대를 특징지던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오직 라틴어' 신화는 루터의 선전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사제와 목회자만이 읽어야 하며, 일반 신도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소리에 만족해야 했다"는 널리 퍼진 인식에 대해 코르벨리니 박사는 "개신교 개혁 운동이 성공적으로 퍼뜨린 선전"이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루터 자신이 자택에서 진행한 수많은 '탁상 담론(Table Talk)'을 통해 이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1525년 이전의 수십 권 성경 분석
연구 프로젝트 'Holy Write and Lay Readers — 후기 중세 속어 성경 번역의 사회사'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수십 권의 속어 성경이 면밀하게 분석되었다. 분석 대상 자료는 모두 1525년 이전의 것이다. 연구진은 무엇이, 누구에 의해 번역되었는지를 넘어, 실제 독자가 누구였으며 그들이 본문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핵심 질문으로 삼았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성경 번역과 배포에 대한 전면적 금지 조치 때문에 중세에 속어 성경 소유가 매우 드물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주로 교회 측 기록에만 근거한 것으로, 그로닝언 연구팀은 이것이 역사적 실상과 다른 잘못된 그림이라고 지적한다.
성경을 읽던 구두장이, 재단사, 상인들
코르벨리니 박사와 동료들은 후기 중세에 라틴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속어 성경의 소유자는 국왕이나 학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하층 부르주아지에 속한 직업 집단, 즉 구두장이, 재단사, 상인들도 속어 성경을 소유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성경을 함께 읽고 묵상했으며, 암송하기도 했다. 또한 필사본을 사고팔고 서로 베껴 가는 활발한 상업적 거래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전면 금지령'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야 등장
결국 중세에 성경의 번역과 보급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조치는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읽어야 한다는 규칙은 종교개혁이 이미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뒤인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야 공식화되었다. 그 이전의 금지 조치는 지역적 현상에 불과했으며, 특히 이단 운동이 활발하던 지역에서 주로 나타났다.
즉, 통념과 달리 유럽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논제를 게시하기 훨씬 전부터 속어 성경이 만들어지고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별 편차: 도시화된 지역에서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속어 성경의 보급 정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일부 지역, 독일 남서부처럼 도시화가 진전된 지역에서 속어 성경이 가장 널리 읽혔다.
루터의 성공은 '성경 해방' 덕분이 아니었다
코르벨리니 박사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이 성공한 이유가 그가 '성경의 해방자'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정반대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루터의 기독교 개혁 노력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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