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이혼 스캔들에 휩싸인 재무장관, 1916년 네덜란드를 뒤흔든 사임 파문

1916년 2월 초, 유럽이 전례 없는 격전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시절, 중립국 네덜란드에서는 재무장관의 사임이 커다란 화제를 모았습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 원인은 장관의 사생활에 있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신문을 특집으로 선보이는 히스토리스 뉴스블라트(Historisch Nieuwsblad)는 한 세기 전의 정치 공방과 통념·가치관, 그리고 진영별 언론의 주관적인 보도 태도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을 열어줍니다.

'트뢰브 재무장관, 여왕에게 사임 의사 전달'

헤이그 특파원 발(더 흐라프스하프(De Graafschap), 1916년 1월 28일자)

"재무장관 빌럼 트뢰브(Willem Treub, 자유민주연합 소속, 1946년 노동당(PvdA)으로 통합)이 여왕 알현을 요청하며 사임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하원과의 갈등입니다. 트뢰브 장관은 조세 제도 개편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노령연금법 초안(1956년 도입된 국민연금(AOW)의 전신)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 관련 세금 법안도 함께 제출했습니다. 그는 이 두 법안을 하원에서 하나로 묶어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하원 심의 과정에서 사회민주노동자당(SDAP, 역시 1946년 노동당에 통합) 소속 얀 슈하페르(Jan Schaper) 의원은 이러한 법안 연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동의안을 제출했습니다. 슈하페르에 따르면 노령연금은 '가장 나쁜 형태의 보험'이라고 합니다. 트뢰브 장관이 이 동의안을 자신의 정책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동의안은 45 대 42로 가결되었습니다. 트뢰브가 소속된 당의 일부 자유주의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고, 내각에 타격을 입힐 기회를 노리던 일부 우파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저열한 정치 공작으로 인해 트뢰브 같은 인물이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는 총리 피터르 코르트 판 데르 린던(Pieter Cort van der Linden)과 외무장관 존 라우던(John Loudon)과 함께 삼두 체제를 이루며, 현재 유럽 전역을 집어삼킨 격랑 속에서 눈에 보이는 암초와 보이지 않는 암초 사이로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배를 지금까지 안전하게 이끌어 왔습니다. 동의안이 가결된 후 각료들은 하원에서 추가 협의를 거쳤고, 트뢰브는 여왕을 알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빌럼 트뢰브의 이혼설'

데 테이트(De Tijd, 1845~1974년 발행된 가톨릭 일간지)

"정치인의 사생활을 다루지 않는 것이 언론의 관례이지만, 빌럼 트뢰브 장관의 사임 의사가 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스케베닝언에 있던 장관의 가정은 이미 깨진 상태입니다. 그는 헷 파터를란트(Het Vaderland)에 광고를 내고 헤이그의 하숙집으로 이주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재혼 계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좌파 의원들 모두가 이를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트뢰브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다른 여성과 재혼한 전력이 있습니다."

헷 뉴스 판 덴 다흐(Het Nieuws van den Dag)는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자유민주당 소속 재무장관 트뢰브 씨가 사적인 사유로 사임할 것은 확실하다. 그가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는 재혼을 원한다. 이번 상대는 무대 배우 위델스(Judels)의 딸로, 트뢰브는 한동안 호텔 센트랄에서 그녀와 동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아내는 현재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

언론사별 후속 보도

NRC(자유주의 성향): "트뢰브는 강력한 인물이었고, 재능 있으며 성실한 일꾼이었다. 우리 재정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추진력을 겸비한 인물의 지도가 필요했다. 트뢰브는 그 둘을 모두 갖췄다. 평화가 도래하기 전에 재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정책과 새로운 기반 위에서 조세 제도를 개혁하려는 구상은 찬사를 받았다. 정부와 하원 사이에는 협의의 여지도 충분했고, 의회 스스로도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트뢰브 역시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장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헷 폴크(Het Volk, 사회민주주의 성향): "트뢰브가 노동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얀 슈하페르가 이끄는 사회민주 교섭단체가 그를 계속 지지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로부터 결별하는 것은 좌파 전체의 의무였다. 토론 과정에서 트뢰브의 세 가지 면모가 드러났다. 오랜 사회주의 혐오자의 면모, 국가 연금 제도의 원칙적 반대자의 면모,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정책에 맞서 강하게 반발할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면모였다."

데 테이트(로마 가톨릭 성향), 다시 한번: "트뢰브 장관을 무너뜨린 것은 가장 천박한 종류의 정치다. 좌파는 장관의 타협적인 태도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하원에서 노령연금법이 공개 심의되기 전에 세금 법안 초안의 예비 보고서를 먼저 검토하겠다는 요구를 철회했다. 그러나 의회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트뢰브의 자폭'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그가 어떤 비난을 받든,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방어하지 않았거나 하원과 고의로 충돌을 추구했다고 비난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이 기사들은 히스토리스 뉴스블라트가 2015년 1월호로 발행한 격월 특별판 '제1차 세계대전 신문'에 실린 것으로, 당시 신문에 게재된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보도를 엄선해 모은 것입니다.

특별판은 총 8호로 발간됩니다. 이전에 발행된 호를 재주문하는 방법 등 자세한 정보는 제1차 세계대전 신문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