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를 장군으로 임명하기 전, 오왕 합려(闔閭)는 그의 실력을 직접 시험해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천재 전략가에게 왕실 후궁 180명을 병사처럼 훈련시켜 보라고 명했습니다.
이 일화를 기록한 인물은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에 걸쳐 활동한 사마천(司馬遷)입니다. 그는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으로부터 태사령(太史令), 즉 궁정 천문관의 자리를 물려받은 문필가이자 역사가였습니다. 한(漢)나라 시대였던 당시 사마천은 궁정에서 나름 대우받으며 지내던 사람이었지만, 기원전 99년경 국가를 위협하던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리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면서 운명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에 걸쳐 살았던 문필가이자 역사가 사마천
결국 형벌은 '완화'되어 거세(宮刑)로 대체되었지만, 이 형벌은 죄인에게 치욕을 안겨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권유'에 굴복하지 않고, 아버지가 시작한 저술인 『사기(史記)』를 마침내 완성해냈습니다. 바로 이 책 속에 유명한 손자(孫子)가 장군으로 임명되었던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자병법』과 후궁 훈련
손자가 자신의 걸작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오왕 합려에게 헌상했던 날, 왕은 그 병법의 원리를 여인들에게도 적용해 보일 수 있는지 묻고는 했습니다. 손자는 가능하다고 답하며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바로 왕이 '훈련' 과정에 간섭하지 말 것이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이후 왕실 후궁 중 약 180명(다른 기록에서는 360명이라고도 함)이 소환되었고, 유명한 전략가는 그중 왕이 가장 아끼던 두 명을 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손자는 여인들에게 심장과 오른손, 왼손, 등이 어느 방향인지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모두가 알겠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라는 훈련 규칙을 설명했습니다.

『손자병법』
그러나 첫 명령이 떨어졌을 때 여인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손자는 명령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면 그것은 장군의 잘못이라며 자신을 탓하고, 앞서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뒤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두 명의 대장, 즉 왕의 총희였던 두 여인에게 책임이 있다며 손자는 그들을 베어 죽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왕은 간신히 만류하며 "저들이 없으면 음식도 맛없을 것이다"라고 호소했지만, 손자는 "장군이 군을 이끌고 있을 때에는 늘 군주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받아쳤습니다.
결국 두 여인은 참수당했고, 새로운 '대장'이 임명된 뒤에는 훈련이 매끄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오왕 합려는 손자를 정식으로 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비록 왕은 그에게 "말은 잘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하나, 결과로 그의 능력을 인정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는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다행히도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의 '장군 오디션'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