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WO(네덜란드 과학연구기구)가 지원한 프로젝트 '컬처스 오브 컬렉팅(Cultures of Collecting): 맥락 속의 라이덴 해부학 표본'은 18세기 해부학 표본들이 만들어지고 수집된 문화적 배경을, 표본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 표본들은 당시 사람들의 미에 대한 관념, 과학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방대한 정보의 보고였던 것입니다.
라이덴 대학교는 17세기부터 해부학 표본 컬렉션을 구축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해부극장(anatomical theater)에, 이후에는 실험실, 대학 병원, 해부학 박물관에 소장되었습니다. 표본의 대부분은 라이덴의 해부학 교수들이 직접 제작했으며, 사후에 대학에 기증되거나 매입되었습니다.
역사적 컬렉션의 남은 유물은 총 약 8천 점에 달하며, 대부분 18세기와 19세기의 작품입니다. 일부는 라이덴 박물관 보르하베(Museum Boerhaave)에서 대여 중이며, 나머지는 LUMC(라이덴대학교의료센터) 해부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의대생과 의료 전문가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컬렉션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표본의 대다수는 현재 창고에 저장된 상태입니다.
잃어버린 기능
이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는, 방대한 역사적 표본 컬렉션이 많은 공간과 관리 비용을 요구하면서도 소유주인 LUMC의 핵심 업무에는 더 이상 크게 기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오래된 표본은 여전히 현대 의학 교육과 연구에서 유용합니다. 이 표본들은 질병의 말기 단계를 보여주는데, 해당 질병들은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거나 조기에 성공적으로 치료됩니다. 따라서 이런 질병이 여전히 만연한 개발도상국에 파견되는 의사들에게 귀중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역사적 표본의 압도적 다수는 현대 의학 교육과 연구에서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UMC는 이 표본들을 함부로 폐기하거나 일반 대중에게 전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인체 유해이며, 표본들은 온갖 질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레이스 소매를 낀 어린이의 팔, 수은을 주입한 장기 같은 것들입니다. 연구자는 표본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18세기 해부학자들의 사고방식과 작업 방식에 대해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덜 무섭게 보이도록
라이덴의 해부학자들은 표본을 만들 때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 이끌려 있었고, 그 미의식은 18세기를 거치며 유행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절단된 사지의 단면과 어린이 머리에 남은 해부 흔적은 소매와 모자로 가려져, 표본이 더 생동감 있고 덜 무섭게 보이도록 꾸며졌습니다.
18세기 초, 큰 레이스 칼라와 커프스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표본의 소매와 모자에도 레이스 장식이 달렸습니다. 그러나 세기가 진행되며 레이스가 유행에서 밀려나자, 표본의 레이스 장식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라이덴 해부학자 베르나르트 지크프리트 알비누스(Bernard Siegfried Albinus, 1697~1770)의 표본은 레이스로 장식된 마지막 사례 중 하나입니다. 레이스가 이미 유행에서 물러나고 있었음에도 알비누스가 이 표본에 레이스를 사용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스승이자 선배인 프레데릭 라위시(Frederik Ruysch)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끈에는 적색 왁스를 주입한 눈막이 매달려 있는데, 라위시가 이전에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는 부분입니다. 라위시는 자신이 새로운 막, 이른바 '튜니카 루이시아나(tunica ruyschiana)'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알비누스가 그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라위시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알비누스는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라위시는 놀랄 만큼 정교하고 훌륭한 연구를 수없이 해냈으니, 때때로 실수를 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그러나 이 표본은 단순한 검증의 결과물이자 라위시에 대한 헌사 그 이상입니다. 알비누스는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 비밀은 직접 해부해야만 밝힐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표본을 만들면서 그가 실제로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눈을 해부했고, 팔에서는 피부와 손톱을 조심스럽게 분리해냈습니다. 피부로는 또 다른 표본을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표본은 후세에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알비누스는 두 표본을 강의에 활용해 학생들에게 피부와 눈의 구조를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비누스는 이 표본들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한 해부학자인지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두 표본 모두 제작이 극도로 까다로우며, 눈막이 달린 팔은 훌륭한 해부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감각, 즉 촉각과 시각을 상징하는 우화이기도 합니다.
알비누스는 팔 피부 표본에서도 우아함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관례대로 말총(horsehair)에 표본을 걸지 않고, 센네치오 엘레간스(Senecio Elegans)라는 식물의 잔가지에 매달았습니다. 이런 표본들은 이처럼 여러 층위를 지닌 객체입니다. 연구 결과이자 증거물, 교육 도구이자 우화, 그리고 해부학자의 능력을 시험하는 산물이 한 몸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