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황금시대 네덜란드, 부와 자선이 만나던 시절 —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

Kennislink에서는 격주로 게스트 칼럼이 실립니다. 칼럼니스트는 매번 새로운 연구자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사회적 사건이나 우리 일상 뒤에 숨은 과학과 학문을 조명합니다. '역사의 달'을 맞아 이번 주에는 역사학자 헨크 로이예스테인(Henk Looijesteijn)이 황금시대 네덜란드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늘 부유했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늘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17세기 황금시대 이전부터 이미 그러했습니다. 물론 불운하게 살아간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형편이 한결 나았습니다. 특히 황금시대에는 더욱 그러했는데, 그 이유는 네덜란드에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돌았고 따라서 부자 집단도 크고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황금시대 네덜란드에서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웅장한 저택, 값비싼 의상, 화려한 소장품에 쓰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도 사용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모두의 의무였던 자선

자선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목사와 설교자들은 네덜란드인 모두에게 자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도울 것을 권했습니다. 실제로 자선 활동에 흘러들어간 돈이 너무 많았던 탓에, 네덜란드를 찾은 외국 방문객들은 네덜란드인이 가난한 이들에게 유독 관대하다고 기록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이 의무는 사랑으로 실천된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들, 때로는 작은 마을들까지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큰 건물들을 지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남녀 노인을 위한 요양원, 병든 이들을 위한 숙박 시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교회의 헌금과 공개 모금을 통해 마련되었습니다.

의무로서의 자선

정부는 대체로 그런 시설을 직접 짓기에는 재정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중산층 시민들도 자선 단체에 기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금융 위기는 존재했고, 누구도 자신이 늘 번영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언젠가 자신이 그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더 부유한 네덜란드인들은 후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현재 국제사회사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History)에서 진행 중인 역사 연구에 따르면,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기회는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컨대 부자들은 종종 '호프예(hofje)'라 불리는 안뜰 주택 단지를 지어 노인들이 평화로운 노년을 보낼 수 있게 했습니다. 동시에 나이 들고 병든 하인들과 가난한 친척들까지 돌보는 것이 사회적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하인과 가족을 챙기지 않는 이들은 좋은 평판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젊은 친척을 돕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했는데, 설립자는 자신의 가족 구성원이 남에게 항상 우선권을 갖도록 규정해 두곤 했습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재능 있는 소년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서 부유한 네덜란드인이 차지한 비중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황금시대 네덜란드의 가난한 이들이 다른 나라의 이들보다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영위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