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베르겐벨젠, 다하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악명 높은 나치 강제수용소들의 이름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끔찍한 실체의 빙산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연구진들은 나치가 운영한 모든 수용 시설을 지도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그 결과 확인된 곳은 무려 4만2500곳이 넘는다. 다만 '나치 수용소'라는 개념이 매우 넓게 정의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2000년,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Holocaust Memorial Museum) 연구진은 워싱턴 D.C.에서 방대하면서도 어두운 성격의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제3제국 시기(1933~1945) 사람들이 수감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된 모든 장소를 지도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프로젝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중간 발표를 통해 이미 4만2500곳이 넘는 장소가 확인된 것으로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게토와 포로수용소까지
이처럼 충격적으로 높은 숫자가 나온 데에는 '수용소'를 폭넓게 정의한 배경이 있다. 나치 독일에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소비보르, 트레블린카, 마이다네크, 벨제츠, 헤움노 등 6개의 대형 절멸수용소가 있었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안네 프랑크가 사망한 곳), 마우트하우젠 같은 이름을 가진 대형 강제수용소와 노동수용소도 다수 존재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시설이 있었다. 공장 안의 대규모 강제노동수용소에서부터, 나치 고위 관리의 저택을 관리하며 지내던 소수의 유대인 수감자들까지 그 규모와 형태는 매우 다양했다. 수감자는 유대인뿐 아니라 여러 소수민족도 포함되었다. 여기에 동유럽 곳곳에 산재해 있던 과밀한 유대인 게토, 즉 출입이 통제된 도시 구역들도 연구 범위에 들어갔다.
연구진이 2000년 작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전체 7,000곳 정도를 확인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제보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묘사된 수용소가 학계에 알려지지 않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증언들이 하나둘 사실로 확인되면서 숫자는 계속 불어났다.
중간 발표에서 연구진은 약 3만 곳의 강제노동수용소, 1,150개의 게토, 980개의 강제수용소, 그리고 독일군 병사를 위한 성노예를 두었던 국방군 창관 최소 500곳을 소개했다. 이 밖에 강제 낙태나 의학 실험이 이루어진 수천 곳의 장소도 존재했다. 또한 1,000곳이 넘는 포로수용소의 존재도 확인했다. 어떤 곳은 철조망으로 두른 공간에 불과했으며, 포로들은 그 안에서 굶어 죽도록 방치되었다.
지도 위에 새겨진 점들
미국의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은 이번 수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전쟁·홀로코스트·집단살해 연구소(NIOD)의 연구원 겸 언론 담당자인 다비드 바르나우(David Barnouw)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확히 무엇이 집계됐는지 분명하지 않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지도에서 네덜란드에는 열 개 남짓의 점이 보인다. 그런데 네덜란드 북부와 동부에도 유대인 강제노동수용소가 있었다. 그것은 지도에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도 국방군 창관이 있었지만 영업 부진으로 몇 주 만에 문을 닫았는데, 이런 곳까지 포함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에 강제노동이 이루어지는 공장이 있었고, 그 노동자들을 수용하는 막사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 모든 곳을 '강제노동수용소'로 세어야 하는가는 분명하지 않다”면서도, “이런 정보들은 지금까지 각종 책과 논문에 흩어져 있었다. 한곳에 모아 정리된 것은 전체를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게토가 곳곳에서 발견되겠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이번 연구가 그것을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역사학자 제프리 메거지(Geoffrey Megargee)는 수용소의 방대한 숫자 자체가 나치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 일간지 디차이트(Die Zeit)와의 인터뷰에서 “나치는 거의 모든 목적에 맞춰 수용소를 지었다. 공습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곳,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독일 노동자에게 숙소를 제공하기 위한 곳 등 용도가 제각각인 수천 곳도 발견했으나, 이런 시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한 도시에만 약 3,000개의 수용소가 있었다. 이렇게 큰 숫자는 대다수 독일인이 강제노동수용소와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 이면의 체계나 수용소 안의 참혹한 현실까지 항상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흩어져 있던 기록을 하나로 모으면서, 홀로코스트가 특정 몇몇 장소에서 벌어진 비극이 아니라 유럽 전역을 뒤덮은 광범위한 체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