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가면 뒤의 운명: 고대 그리스 배우는 어느 날 살인자, 다음 날 피해자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은 거의 항상 가면을 썼습니다. 이 가면들 때문에 그들의 연극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대 연극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가면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믿었듯 사회를 지배하던 잔혹한 자의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현대 연극에서 표정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극장이라면 멀리 앉은 관객도 배우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TV로 방송되는 영화나 연극에서는 클로즈업 촬영 덕분에 표정에 담긴 감정이 한층 확대되어 전해집니다. 떨리는 입술, 눈빛에 어린 두려움과 슬픔, 한 방울 조심스럽게 흐르는 눈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에게 깊이 공감하게 만듭니다.

가면 복원 실험

고전기 그리스 연극에는 이런 감정 표현 수단이 없었습니다. 배우들은 단 하나의 표정만 새겨진 가면을 썼습니다. 가면이 너무 무거워서는 안 됐기 때문에 나무, 아마 포 등 유기 물질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고대 문헌과 그림 자료를 통해 그리스 연극 배우들이 거의 항상 가면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드라마는 정의상 가면극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면이 연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호주 서던퀸즐랜드 대학의 그레고리 맥카트(Gregory McCart)가 이끄는 연구진은 가면을 직접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에게 그리스식 극장에서 가면을 쓴 상태와 쓰지 않은 상태로 각각 고전 희곡을 공연하게 했습니다. 가면을 쓰자 배우들은 희곡에 담긴 감정을 몸짓과 바디랭귀지, 무엇보다 목소리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극장 최상층 좌석의 관객들도 인물을 구별할 수 있어야 했기에 가면은 상당히 컸고, 이 큰 가면은 목소리를 둔하게 만들었으며,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에게는 방향 감각의 혼란까지 일으켰습니다. 가면에 크고 벌어진 입 모양이 새겨진 경우가 많았지만, 소리 감쇠를 만회하기에 항상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배역을 잘 소화하려면 배우는 타고난 큰 목청을 지녀야 했습니다. 배우들은 연기력만큼이나 발성 능력에도 기울였고, 고대 그리스에서 좋은 목소리는 곧 좋은 배우와 동의어였습니다. 이 점 하나만 놓더라도 고대의 연기 행위가 오늘날보다 훨씬 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걸어 다니는 올챙이

그리스인들은 가면 때문에 생기는 목소리 감쇠를 최대한 보완하고자 극장의 음향에 투자했습니다. 아테네 근교의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뛰어난 음향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극장은 또한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배우에게서 가장 멀리 앉은 관객은 무대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큰 가면을 쓴 배우들은 마치 걸어 다니는 올챙이처럼 보였습니다. 몸집에 비해 가면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멀리 앉은 관객은 가면의 표정조차 선명하게 볼 수 없었기에 배우들은 과감하고 풍부한 몸짓에 의존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1455a, 1462a)에서 극작가들이 집필하는 동안 스스로 몸짓을 연습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야 작가가 자기 작품에 깃든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가면을 사용했던 후대 로마의 극작가들은 아예 연극 전용 표준 '몸짓 언어'를 발전시켰습니다. 로마에서 활동한 그리스 출신 학자 율리우스 폴룩스(Julius Pollux)는 저서 『오노마스티콘』(Onomasticon, 서기 2세기)에 그 개요를 남겼습니다. 그리스인들 역시 이런 식의 표준화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목소리와 격렬한 몸짓에 요구되는 육체적 소모가 막대했기 때문에 뛰어난 배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안목 높은 그리스 관중은 최고의 배우만 무대에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가면은 실질적인 강점을 발휘했습니다. 가면 덕분에 여덟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희곡도 단 세 명의 배우로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무대 뒤에서 가면을 갈아쓰는 방식으로 각 배우는 여러 배역을 설득력 있게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 배우가 한 장면에서는 살인자로,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신들

그래서 무대 위 인물들의 전개는 동시에 무대에 설 수 있는 인물이 최대 세 명을 넘지 않도록 대본 차원에서 짜여 있었습니다. 위대한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이러한 구조가 확인되었습니다.

주연 배우들 외에도 무대에는 '침묵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면을 썼지만 맡은 대사가 없었습니다. 무대 위의 침묵하는 구경꾼으로서, 때로는 어린아이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죽으면 애도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환호했습니다.

가면은 좋은 배우가 부족한 문제에 대한 탁월한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가린다는 이 행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던 방식을 그대로 비춥니다. 고대 그리스는 폭력이 일상이었던 사회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누군가 살인자가 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자유의지의 산물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신들이었습니다. 일상에서도 가면을 쓰는 이는 신들이었고, 그 가면이 바로 그 순간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어느 날은 가해자, 다음 날은 피해자가 되는 삶, 그것이 그리스인이 그린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