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대량생산이 낳은 이스라엘의 국민 음식, 후무스의 역사

균일한 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식품 산업과 수작업으로 지역 특산물을 만드는 방식은 언뜻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딥(dip)인 '후무스'가 이스라엘의 장인정신이 담긴 국민 요리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산업적 대량생산 덕분입니다.

후무스는 이스라엘의 축하 자리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음식이자, 해외에 나간 이스라엘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네덜란드 마트 진열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공장제 후무스는 편리하지만, 이스라엘 곳곳의 '후무시옷(hummusiyot)', 즉 후무스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정통 수제 후무스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학자 다프나 히르쉬(Dafna Hirsch)와 오프라 테네(Ofra Tene)는 '획일적인 산업 패스트푸드 대 정통 수제 슬로우푸드'라는 통념이 잘못됐다고 주장합니다. 두 사람이 학술지 <저널 오브 컨슈머 컬처>(Journal of Consumer Cultur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후무스를 정통 이스라엘 특산물로 자리매김시킨 주역은 바로 식품 산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후무스

연구진은 국립 기록보관소 자료를 조사하고, 후무스 관련 신문 기사 1,000여 편을 분석했으며, 후무스 공장과 후무시옷을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여기에 업계 경영진, 후무스 애호가, 미식 평론가들까지 인터뷰하며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후무스가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을 밝혀냈습니다.

연구 결과, 이스라엘 국민 요리로서의 후무스 사랑은 이스라엘 국가 자체만큼 역사가 짧은 것이었습니다. 1948년 이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거주민들은 후무스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 요리는 오로지 아랍 요리에 속한 음식이었죠. 그런데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에는 아랍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리가 거의 없었고, 많은 이들이 도피하거나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반대로 당시 아랍권 여러 나라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피난 왔습니다. 바로 이들이 후무스 레시피를 가져와 새로 생긴 이스라엘 식당들에 널리 알리게 됩니다.

광고 캠페인이 만든 '국민 요리'

1950년대 말 이미 후무스는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아직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58년 텔마(Telma) 브랜드가 후무스 캔 제품을 출시하면서부터입니다. 텔마의 광고는 처음으로 후무스를 “이스라엘의 국민 요리”로 내세웠습니다. 1958년 텔마의 광고문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크니시나 베레니케스 같은 동유럽 음식을 모르는 손님도 있겠지만, 누구나 후무스를 즐겁게 먹습니다. 후무스, 이스라엘의 국민 요리.”

'텔마 후무스'는 큰 성공을 거두며 10년 만에 1,500만 개의 캔을 판매했습니다. 1968년 당시 이스라엘 인구가 고작 300만 명 남짓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같은 시기 이스라엘 정부 정책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산업화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 요리의 대표 격으로는 식품 산업 제품이 우선적으로 선정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새로운 국가로서 자신을 알린 여러 나라의 문화전시회에서도 후무스 캔이 이스라엘 음식을 대표하는 품목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

텔마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기업들도 이스라엘 후무스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 역시 광고 캠페인에서 캔 후무스의 '전형적인 이스라엘'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전통 방식으로 만든 후무스를 파는 후무시옷의 수도 함께 늘어갔습니다.

히르쉬와 테네는 대형 식품 제조업체들이 소규모 장인들을 시장에서 몰아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합니다. 식품 산업이 국민적인 후무스 소비와 사랑을 일으키면서, 후무시옷의 갓 만든 후무스에 대한 평가도 함께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식품 제조업체들이 현지 후무스 장인의 정통 이미지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애호가들은 공장제 후무스를 식당 주방에서 '정성껏 만든' 후무스의 부적절하고 인공적인 버전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최근 후무스 업계의 광고 캠페인은 자사 레시피의 정통성을 부각하거나, 현지의 아랍계 셰프들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속의 로컬

국제 시장에서도 업계 경영진들은 후무스의 정통 이미지를 지키는 데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후무스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수출 상품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 생산자들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무스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지역 정체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나라의 '특별한 무언가'를 샌드위치에 올릴 수 있다니, 그래서 후무스 같은 제품이 네덜란드에서도 팔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는 더 많은 상품과 정보를 지구 곳곳에서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이 우리를 어디서나 똑같은 존재로 만들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인식해 왔습니다. 예컨대 인류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의 유명한 연구 '골든 아치스 이스트(Golden Arches East)'는 똑같은 맥도날드 매장이라도 지역마다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히르쉬와 테네는 후무스 사례 역시 세계화 과정 안에서 지역적 다양성이 여전히 중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상품에 대한 지역의 반응이 아니라, 지역적 정체성을 지닌 상품의 세계적 유통이라는 점입니다.

함께여야 강하다

후무스를 국가 특산물로 내세우는 데 있어 이스라엘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습니다. 2008년 레바논 실업인들은 자국 정부에 유럽집행위원회를 설득해 레바논 후무스에 원산지 보호 지정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스 페타 치즈처럼 '후무스'라는 이름은 오직 레바논만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유럽 시장에서 '병아리콩 페이스트' 같은 이름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동안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큰 후무스 그릇' 기록을 두고 서로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2009년 10월 레바논 셰프들이 약 907kg(2,000파운드)의 후무스를 만들어 이스라엘의 기록을 깼습니다. 2010년 1월 이스라엘이 4,090kg으로 맞선회했지만, 현재 세계 기록은 다시 레바논의 것입니다. 10,452kg이라는 숫자는 레바논 영토 면적 10,452㎢를 상징합니다.

아부 고시(Abu Gosh)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세계에서 가장 큰 후무스 그릇' 기록 경연의 모습입니다. 사진 속 요리사가 후무스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히르쉬와 테네에 따르면 그릇은 실제로 현지 공장에서 공급받은 후무스로 채워졌습니다.

2010년 이스라엘의 기록 도전은 아랍계 이스라엘 마을 아부 고시의 식당 주인 자와다트 이브라힘(Jawadat Ibrahim)이 주최했습니다. 아부 고시는 유대인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질 좋은 현지 후무스로만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는 '미키 델리카트슨(Miki Delicatessen)' 공장과 협력해 플라스틱 드럼에 담긴 대량의 후무스를 공급받았습니다. 게다가 레바논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이스라엘 국기가 행사장을 장식했습니다. 산업 식품 생산자와 장인 식품 생산자의 이해관계, 그리고 이스라엘의 국제적·국내적 정체성이 후무스를 매개로 충돌하고 또 얽히는 모습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