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군 '용맹함'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제3제국 당국자들, 여러 독일인 일기 작가들, 그리고 훗날의 네오나치 성향 역사학자들까지 모두 국방군(Wehrmacht) 병사들의 비범한 용기와 인내심을 찬양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독일군은 끝까지 맹렬하게 싸웠고, 탈영은 미군보다 오히려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극도로 가혹한 군사 사법 제도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교훈, 그리고 히틀러의 선택
흥미롭게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야전 군법회의는 병사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대했습니다. 4년간의 전쟁 동안 집행된 사형은 단 48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는 이러한 관용적인 태도 속에서 패배의 씨앗을 읽었습니다. 20년 후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는 과거의 '실수'를 결코 반복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호한 죄목, 즉각적인 결과
이미 1935년, 나치는 군형법에 새로운 사형 범죄를 추가했습니다. 바로 Zersetzung der Wehrkraft(직역: 전투력 약화 행위)였습니다.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면 누구든 쉽게 유죄로 몰 수 있는 완벽한 죄명이었습니다. 그 효과는 놀랄 만큼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전쟁 중 독일 군법회의는 매달 500~1,000명의 자국 병사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사형 통계
사형은 거대한 억압 기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관료주의의 촉수는 군대 전체를 치밀하게 휘감았습니다. 예컨대 1940년 1월부터 1941년 6월까지만 해도 무려 106,546명의 국방군 구성원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재판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으며, 무려 89.4%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장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종종 가볍게 빠져나갔기 때문에(병사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처벌됨), 그 비율은 실제로 더 높았을 것입니다.
총살형대 앞에 서지 않으려면
다시 사형 제도로 시선을 돌려 보겠습니다. 이것야말로 국방군의 진짜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독일군에서 생존하려면 총살형대 앞에 서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했습니다.
저서 『국방군 대 미군』의 저자 마틴 반 크레펠트(Martin van Creveld)의 계산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국방군에서 집행된 사형은 총 약 11,700건에 달합니다. 물론 선고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충격적인 미군과의 비교
비교를 위해 미군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군은 전쟁 내내 군사 범죄로 처형된 병사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미국이 살인·강간 등 일반 형사 범죄로 병사에게 사형을 집행한 사례도 총 69건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독일은 자국 병사를 총살하거나 교수형에 처한 횟수가 미국보다 무려 167배나 많았던 것입니다!
이제 독일 병사들의 비범한 '용기'라는 신비의 실체가 어느 정도 풀린 셈입니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용감했을 것입니다…
출처
- Martin van Creveld, Wehrmacht versus the US Army 1939-1945. Combat Strength Comparison, Erica Publishing Institute, 2011, pp. 168-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