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네덜란드판 노벨상'이라 불리는 스피노자상(Spinoza Prize)을 수상한 요프 레르센(Joep Leerssen)은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근대 유럽 문학 교수이다. 그는 유럽 연구, 문화적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 고정관념을 연구하는 '이매졸로지(imagology)' 분야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남긴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수상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상금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어떤 새로운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는지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국민성 고정관념과 민족주의
"네덜란드인은 소박하고, 독일인은 깊이 있지만 유머가 없으며, 프랑스인은 긍지가 강하지만 경박하다." 이런 국민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 특히 그것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이매졸로지다.
여기서 나아가 이런 고정관념적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내세우는 사람, 예컨대 '네덜란드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민족주의자라고 부른다.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레르센(1954~) 교수가 관심을 기울이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국가적 고정관념이 문화적·정치적 민족주의의 표현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의 연구는 유럽 민족주의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유럽 각 민족이 서로를 규정해 온 오랜 전통이 있기에, 19세기에 독특하게 유럽적인 형태의 정치적 민족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플람스, 핀란드, 바스크 민족주의 어디를 보더라도 남미나 아시아의 민족주의에는 없는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그는 발견했다.
레르센은 이 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유럽 문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초기 유럽의 민족주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더 깊이 파고들고자 했다. 연구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250만 유로의 스피노자상 상금이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4년 전 저에게 신기한 현상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손쉽게 설명됩니다." 그가 암스테르담의 유럽 연구 학부 사무실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럽 전역의 학자들을 하나로 묶다
Q. 스피노자상을 받은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연구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요?
"꽤 많이 진전됐습니다. 상금으로 유럽 전역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서로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개별 국가의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는 이미 꽤 많습니다. 슬로바키아, 바스크, 에스토니아 연구자들이 그 예죠. 하지만 그들은 대개 자국어로 논문을 발표하기 때문에 비교 연구에는 큰 걸림돌이 됩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학자들의 교류 장소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저는 그 모든 사람들을 이곳으로 모으기로 했습니다.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고, 서로의 연구를 오가며 각국 민족주의가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지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했는데, 이제는 그들 스스로 서로를 초청하고 워크숍을 열 정도라 아주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백과사전이라는 다음 목표
Q.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이 전문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일종의 디지털 백과사전을 만들려고 합니다. 19세기의 다양한 현상들을, 흔히 사회 생활의 '문화적 배경 소음'으로 치부되며 각국에서 정치사·문화사로 따로따로 연구되던 것들을, 하나의 유럽적 현상으로 통합해서 조명하겠다는 겁니다. 그 프로젝트는 이미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민족주의, 그 비밀은?
Q. 4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유럽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19세기에 서로 매우 다른 나라들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스코틀랜드나 왈론처럼 고도로 근대화된 지역에서도 나타났고, 농노제가 여전히 남아 있던 불가리아나 러시아 같은 낙후된 지역에서도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핵심 질문은 이 '동시성'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겠죠. 저는 늘 민족주의를 사회적·정치적 현상이 아니라, 유통되는 문학과 문화적 소통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것으로 보아왔습니다. '종이의 흔적(paper trail)', 즉 유럽 전역으로 퍼진 인쇄물과 관련 인물들 간의 교류를 추적하면서 이를 입증하려 합니다."
"해당 인물들은 물론 수천 명에 이르지만, 저는 이들을 약 500~700명 규모의 핵심 네트워크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런 네트워크 안에서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됩니다. 태동기 민족주의도 바로 그런 것이었죠. 일종의 비공식 싱크탱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지도처럼 그려냈습니다."
혁명가가 아니라 서재의 학자들
Q. 그 싱크탱크의 사람들은 서로의 활동을 알고 있었을 텐데, 실제로 민족주의 혁명을 일으키려 했던 건가요?
"서로의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천천히 커져간 네트워크였습니다. 아주 점진적으로 '우리가 적지 않구나' 하는 자각이 생겼고, 그러면서 잡지, 회의 같은 각종 계획들이 자발적으로 솟아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 언어들이 히브리어보다 산스크리트어와 훨씬 가깝다는 발견, 나폴레옹 시대 도서관 재정비 과정에서 수많은 미지의 중세 필사본이 발견된 일 같은 성과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결과 이 네트워크 안에서 '새로운 학문'을 세워야 한다는 의식이 자라났습니다. 회원들은 물론 혁명가가 아니라 오히려 서재의 학자들이었지만, 학문적 관심이 가져올 정치적 결과물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누가 있었나
Q. 그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요?
"중심 축은 겨우 열 명 정도입니다. 때로는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역사소설 작가 월터 스콧(Walter Scott)처럼 유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경에서 훨씬 큰 역할을 한 이름들도 있습니다. 빈에서 활동하던 저명한 슬로베니아 출신 사서 예르네이 코피타르(Jernej Kopitar)는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시킨 인물이었죠."
"바로 이 비교적 작은 사람들의 네트워크에서, 예컨대 왜 알바니아는 지금 독립국가가 되었고 프리슬란트나 프로방스는 그러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국가를 어떻게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경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와 플란데른이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 큰 규모를 그렸고, 어떤 이들은 플람스어에 네덜란드어와 다른 별도의 언어 규범을 두자는 식으로 훨씬 작은 규모를 원했습니다. 결국 일부 구상은 국가 형성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구상들은 지역주의로 남았습니다."
루빅스 큐브를 맞추듯 푸는 19세기 유럽
"19세기 유럽의 문화와 국민국가 형성 연구는 매우 복잡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루빅스 큐브로 봅니다. 문화와 정치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그리고 문화 매체들 사이, 여러 차원이 얽힌 퍼즐이거든요."
"특정 사상이 나라에서 나라로, 소설에서 오페라로, 회화에서 조각으로 어떻게 건너가는지 알게 되면, 그 큐브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그 아주 복잡한 시스템을 조금씩 지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와 문화, 곧 민족의 DNA
Q. 그렇다면 유럽의 모든 민족주의 형태에 공통된 것은 무엇인가요?
"언어와 문화를 곧 민족의 DNA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민족이 푸들과 셰퍼드가 다르듯 자연스럽게 서로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진짜 언어'를 쓰느냐, 아니면 '농부의 방언'을 쓰느냐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리투아니아어는 19세기 학문이 중요한 언어로 평가해 엄청난 위상을 얻었지만, 같은 학문의 눈에 라프족의 언어는 기이한 농민 방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권의 관점으로 사고하기 시작했고, 국경이 언어 경계와 일치하길 원했습니다. 이것이 국경 지대에 문제를 낳았습니다. 네덜란드어와 플람스어의 경계는 어디인가, 아니면 둘 다 독일어의 방언인가? 독일어와 덴마크어의 경계는 정확히 어디까지인가? 마케도니아어와 불가리아어, 크로아티아어와 세르비아어는 하나의 언어인가, 두 언어인가? 그 전쟁조차 벌어졌습니다."
'전쟁 없는 유럽'이라는 이상과 그 그림자
Q. 그 포괄적인 유럽적 민족주의 개념은 결국 차이와 갈등을 낳았네요. 유럽인이 서로의 유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해줄 만한 것이 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전쟁을 억제할 가능성은 유럽에서 늘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국가 간 전쟁을 피하는 대신, 모든 민족이 자신만의 작은 나라를 가져야 한다는 이상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쟁할 이유가 사라지고, 유럽은 저마다 둥지에 만족해하는 새들의 하나된 가족이 되겠죠. 그리고 일종의 '유럽합중국'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 생각은 1840년대에 등장했고, 많은 이들이 1차 세계대전이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 되리라 바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전쟁이 거대한 다민족 제국들을 찢어놓고, 그 후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조화를 기반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1918년 국제연맹의 창설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유럽에 대한 구상은 생겨났지만, 그것은 개별 국가의 민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이 민족국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제 생각에 옳은 일입니다. 오늘날 들리는 '하나의 문화적 유럽', 즉 이슬람권과 구별되는 유럽이라는 발상은 지극히 인위적인 것입니다."
"히틀러는 '유럽을 위해, 유대-볼셰비즘의 위협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외부의 야만인 세계로부터 지켜야 할 '요새 유럽'이라는 역사적 발상이 정치 스펙트럼의 다소 탁한 구석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상 프로젝트의 성과와 다음 여정
Q. 핵심 인물 네트워크의 지도화와 이러한 결론들로 스피노자상 프로젝트의 목표는 달성됐나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진 유럽 민족국가들의 기원에 대해 정말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요. 이제는 결과를 널리 알리고, 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의 옛 유럽 식민지 등 전 세계에서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민족주의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런던정경대학교(LSE)는 그 문화적 뿌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화적 과정은 정치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