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4월, 체르노빌 사고의 수석 조사관이 모스크바 근교 자택에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원전 폭발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세기를 바꾼 비극,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 될 이름
HBO의 화제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을 계기로, 우리는 20세기 역사를 바꾼 핵 참사에서 인류를 더 큰 재앙으로부터 구해낸 과학자 발레리 레가소프(Valery Legasov)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는 소련 정부를 설득해 프리피야티 주민 대피를 결정하게 만든 인물이자, 사고 원인 조사의 총괄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의 삶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Валерий Алексеевич Легасов)는 무기화학 분야의 저명한 소련 과학자이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었다. 그는 모스크바 화학공과대학에서 공산청년단(콤소몰) 서기로 활동하기도 했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전에도 그는 이미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새로운 안전 대책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BBC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체는 일정량 이상의 방사능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정신 또한 일정 수준을 넘는 공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충격적인 BBC 다큐멘터리로 다시 보는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사고 당시 그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의 수석 부소장이었다. 사고 직후 그는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구성된 정부 위원회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그의 강력한 주장으로 프리피야티 지역은 대피했으며, 정부가 정보 통제를 원했음에도 그는 더 큰 파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서방 언론이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하는 동안 소련은 국내외에 안도감을 퍼뜨리는 데 급급했다.
HBO 드라마에도 그려진 그의 집요한 요구 덕분에 정부 관료들은 핵 참사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에 동의했고, 사고 초기 단계부터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추가 측정을 실시할 수 있었다. 만약 레가소프가 대책위원회에 없었다면, 체르노빌의 나머지 3개 원자로에서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나 유럽 전역에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회고록에서 주민들이 프리피야티 대피가 며칠만 지속될 것이라고 안내받았다고 적었다. 이는 주민들을 더 쉽게 설득하고 혼란을 막기 위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고, 도시는 오늘날까지 ‘유령 도시’로 남아 있다.
2008년 딸 잉가 레가소바(Inga Legasova)가 RT 뉴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정부 관료들이 노동자의 도시 프리피야티 대피를 승인하기까지 36시간이 걸렸다. 딸의 증언에 따르면 발레리 본인도 방사선에 노출되어 폭발 직후 며칠간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교수가 1986년 노동절 축하 행사 연기를 요청했을 때만큼은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1986년 8월, 레가소프는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 회의에서 소련 대표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의 보고서는 참사의 여파에 관해 제출된 어떤 보고서보다도 정직한 것이었다.
“나는 빈에서 모든 이들 앞에 서서 제어실의 젊은 운전원들을 탓했습니다. 그들의 무지에 내가 기여한 부분은 끝내 언급하지 않았죠. 그 후로 내가 만든 신화를 불식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려 노력해 왔지만, 내가 쓴 글도, 내가 한 인터뷰도 게재되지 않습니다. 나는 내 경력과 평판을 스스로 망쳤습니다. 사고가 지난 지 2년,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르게이 자볼로트니 감독의 우크라이나 다큐멘터리 ‘체르노빌.3828’
1988년 4월 27일, 체르노빌 핵사고 2주기 하루 뒤, 그리고 참사 원인 조사 결과 발표 하루 전날, 교수는 목을 매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HBO 시리즈 역시 이 자살 장면으로 문을 연다.

레가소프는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실 그는 4호기 사고 직후에도 이미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자살 전 그는 자신의 고백을 녹음으로 남겼으며, 딸이 확인했듯이 방사선 노출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위에서 시청할 수 있는 BBC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핵 참사’에서 레가소프는 IAEA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소련의 핵 기밀주의 관련 내용이 정치적 압력으로 삭제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기밀주의 때문에 원전 운영자조차 과거 사고 사례와 원자로 설계상의 결함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어난 일에 대해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현장 작업자들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딸은 RT 뉴스 채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체르노빌은 수십 년간 국가 경제 운영 과정에서 저질러 온 우리의 모든 잘못이 집약된 상징입니다.” 교수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참사를 소재로 연극을 만든 그의 친구 블라디미르 구바레프는 프라우다를 통해, 당시 동료들이 레가소프의 위기 대응을 비웃었고 참사의 규모를 과소평가했다고 증언했다.
1996년 9월 20일,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사고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용기와 영웅심”을 기려 레가소프에게 사후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추서했다.
2019년 Sky/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에서 레가소프 역은 배우 재러드 해리스(Jared Harris)가 연기했다.
1986년 핵 참사 이후 총 4,000명 가량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해당 지역은 앞으로 2만 년간 거주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레가소프가 남긴 음성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외면당하고 있다. 재러드 해리스는 역할 준비 과정에 대해 The Cheat Sheet와의 인터뷰에서 “녹음 테이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들이 그의 문서까지 그 사람과 함께 지워버리려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는 일어난 일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싶어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배우는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작진은 그 시대의 잊힌 영웅들과 사건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마땅한 명예와 가치를 돌려주고자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