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으로 선출된 지 1년 1개월, 제27차 당대회가 열린 지 두 달 만에 인적 과실로 인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IMDB 역사상 최고 시청자 평점인 9.6/10을 기록하며 TV 시리즈 전례를 갈아치운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사고

체르노빌 사고는 역사상 가장 큰 원자력 사고입니다.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ES)에서 7등급, 즉 최고 등급으로 분류된 사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와 함께 단 두 곳뿐입니다.

아래 영상에서 1986년 4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방사성 물질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고 직후의 혼란, 그리고 늦어진 대응

발레리 레가소프가 이끄는 정부 조사위원회는 4월 26일 오후 체르노빌에 도착했습니다. 그 시점에 이미 2명이 사망했고 52명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폭발 후 24시간이 넘은 4월 26일 밤에서 27일 새벽 사이, 위원회는 극도로 높은 방사능 수치와 다수의 방사선 피폭 사례라는 압도적인 증거 앞에서 원자로 파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인근 도시 프리피야티의 주민 대피를 명령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국영 통신사 타스(TASS)의 전보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고를 인정했습니다.

대피는 4월 27일 오후 2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짐을 최소화하도록 하기 위해 대피가 약 3일간 지속되는 '임시 조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프리피야티에는 개인 소지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1986년 5월 3일, 당시 모스크바 당조직 서기였던 보리스 옐친은 사고의 원인이 된 인적 과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원전 사고 직후 며칠 사이 28명의 소방관과 원전 작업자가 방사능 피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그리스 공산당(KKE) 기관지 『리조스파스티스』의 1면은 당이 소련과 함께 위험을 축소했거나, 달리 표현하면 '서방' 언론의 1면에 맞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리조스파스티스』의 관련 보도는 소련 소식통에만 의존했습니다. 물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당시 KKE의 전반적 태도에 대해 이루어진 이후의 자기비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흥미로운 점은 당시 파소크(PASOK) 정부 역시 같은 안일한 노선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니코스 사란다코스 블로그에서 확인한 『비마(Vima)』지의 1면입니다.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소련 측 최초의 상세 보도는 사고 발생 열흘 후 『프라우다』지에 게재되었는데, 패닉을 막기 위해서인지 신문은 안심시키는 어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미국 언론은 폭발 직후 사망자가 처음 보도된 두 자릿수가 아니라 한 자릿수임을 점차 인정해 갔습니다. 다만 암 발생률 증가 등 방사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아래는 AP 통신 사진입니다. 『데일리메일』은 2,000명 사망이라고 보도했으며, 다른 영국 신문들도 비슷한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그리스에 미친 영향

방사성 구름은 그리스 상공도 통과했습니다. 과학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도 희귀 소아 백혈병 발생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같은 시기 태아에 대한 영향을 우려한 낙태 건수도 급증했습니다.

아테네 국립 공과대학(NTUA) 교수 시모스 시모풀로스는 2006년 4월 1일 『네아』지에 게재한 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카르페니시에서 카르디차, 카테리니, 킬키스까지, 테살로니키에서 할키디키와 플로리나에 이르기까지 방사성 세슘 농도는 여전히 제곱미터당 65킬로베크렐에 달합니다.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위험 한계치는 '5킬로베크렐을 초과하지 않는' 수준인데도 말입니다."

ERT가 폭발 소식을 전한 방식

파소크와 신민주주의당(ND) 사이의 당시 정치적 공방은 1986년 5월 10일자 『볼로스 포스트맨(The Postman of Volos)』 1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시청과 학교에서 진행한 강연에 대한 보도도 이어졌지만, 당시 제기된 의견들은 서로 모순되었습니다.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같은 신문 5월 11일자 1면에는 세계를 안심시키던 그리스 에너지 위원회의 발표가 실려 있으며, 좌파와 아나키스트들이 핵 관련 행진에서 벌인 충돌 사건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체르노빌 참사의 이면: 방사능 확산의 실체와 CIA 음모론

러시아, 자체 드라마로 맞대응

HBO 시리즈는 러시아 내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러시아 국영방송은 자체 제작 시리즈 촬영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NTV를 통해 방영될 새 시리즈는 사실상 HBO 작품에 대한 대응작이 될 전망입니다.

러시아판 『체르노빌』의 연출은 알렉세이 무라도프 감독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 측은 기록으로 확인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 외에도, 폭발 당일 CIA 요원이 체르노빌 원전 내부에 있었다는 자체 설정을 추가할 계획입니다.

"미국인들이 원자력 발전소에 침투했다는 설이 있고, 많은 역사학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적성국 원전이 폭발한 그날, 적의 요원이 현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라도프는 모스크바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고 교차 검증조차 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와 논란이 될 만한 정보만 존재합니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러시아 문화부는 시리즈 제작에 약 46만 3천 달러를 지원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