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미래주의, 110년의 역사를 지닌 예술 운동이 막을 내리다

피사에서 열리는 110주년 기념 전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예술·사회 운동인 미래주의(Futurism)가 탄생 110주년을 맞아 피사에서 기념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미래주의를 형성해 온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한자리에 소개됩니다.

마리네티와 1909년 선언문

미래주의의 핵심 인물은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 1876~1944)입니다. 운동의 공식적인 출발점은 1909년, 즉 마리네티가 프랑스 유력 신문 피가로(Le Figaro)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한 해로 꼽힙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이탈리아 가문 출신인 그는 파리에서 수학한 뒤 밀라노에 정착하여 활동했습니다.

전시 큐레이터 아다 마소에로(Ada Masoero)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마리네티는 밀라노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회 전반, 심지어 이탈리아 사회에서도 거대한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미학적 혁명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속도와 산업 문명의 찬미

유로뉴스(Euronews)의 보도에 따르면, 미래주의자들은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예술 표현에 도입했으며, 당시 등장한 첨단 기술을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승리'로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낭만주의와 낡은 관습, 전통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한편, 속도와 산업 도시를 예찬했습니다.

이들의 정신은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상보다 더 아름답다"라는 상징적 구호로 잘 드러납니다. 고대 그리스의 걸작 조각조차 현대 기계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뒤처진다는 과감한 선언입니다. 이러한 열정 덕분에 미래주의는 회화와 연극은 물론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 분야로 확산되었습니다.

소수가 아닌 대중을 향한 운동

팔라초 블루 재단(Palazzo Blu Foundation) 회장 코시모 바치 토르시(Cosimo Bacci Torsi)는 "선언문이 소수 엘리트가 아닌 대중과 군중에게 직접 호소했다는 점이 이 운동의 독특한 특징"이라며, "그 덕분에 미래주의는 20세기 전위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운동의 종언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가 1916년에 세상을 떠난 것은 종종 미래주의의 종말과 동일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미래주의 예술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운동이 점차 파시즘과 결부되면서 대중은 스스로 미래주의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운동은 110년의 긴 역사를 남긴 채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