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니콘 아르쿠데아스: 아나키스트들의 구호가 된 그리스 경찰의 전설적 지도자

2005년 9월 4일, 그리스 경찰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인 니콘 아르쿠데아스(Nikon Arkoudeas)가 세상을 떠났다. 1928년 11월 26일에 태어난 그는 그리스 경찰에서 중장 계급까지 오른 고위 장교였다. 1980년대에는 시위 진압 부대인 MAT와 MEA의 사령관을 거쳐 '아티카르키스(Attikarchis)'로 불리는 아티카 경찰 총괄 지휘관이 되었고, 마침내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그리스 경찰청(ELAS) 청장을 지냈다.

마니 출신, 현장에서 시작된 경찰 인생

아르쿠데아스는 마니(Mani) 지방 출신으로, 1928년 라코니아 폴리아나(현재 메시니아 아기오스 니코스)에서 태어나 라코니아 아레오폴리스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후 도시경찰관 학교를 졸업했으며, 정치학의 명문인 판테이온 정치과학대학(현 판테이온 대학교) 역시 졸업했다.

그는 도시경찰에서 줄곧 최전선의 실전 부서에서 근무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아테네 제1경찰서, 피레우스 제2경찰서, 당시 아테네 경찰국 치안 부서에서 복무했고, 제3경찰분국 국장도 역임했다.

파소크의 집권과 '아티카르키스'의 탄생

아르쿠데아스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1981년 파소크(PASOK)가 집권하면서 그는 MAT와 MEA를 포괄하는 아티카 경찰국장 자리에 올랐다. 1984년 헌병대와 도시경찰이 통합되어 현재의 그리스 경찰청이 출범하자, 그는 아티카 지역 경찰 총감으로 임명되었고 언론은 그를 "아티카르키스"라 불렀다. 이 별칭은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직위의 후임자들에게도 이어지는 통칭으로 굳어졌다.

이후 그는 1986년 12월부터 1988년 4월까지 그리스 경찰청의 수장을 맡았으나,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경찰을 벗어난 정치와 은퇴 이후의 삶

경찰에서 물러난 뒤 그는 파소크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89~1990년 선거에서 아테네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몇 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이오니아 은행의 보안총괄 매니저를 지냈으며, 한때 칼로그레자 올림픽 경기장 총괄 매니저로도 임명되었다.

1994년에는 테오도로스 파갈로스 진영으로 아테네 시의회 의원에 선출되었고, 1998년에는 마리아 다마나키 진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말년에는 마니 폴리아니테스 협회 회장과 파소크 팔레오 팔리로 지역 조직 간부를 맡으며 고향 마니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 활동에 기여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니콘 아르쿠데아스는 탈독재 시대 그리스에서 가장 알아볼 수 있는 경찰관이었다. 그는 직접 거리로 내려가 작전을 지휘하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이러한 태도는 시민들에게 큰 호감을 샀으며 그 어떤 경찰관도 누려본 적 없는 대중적 인기를 안겨주었다. 흥미롭게도 엑사르히아 지역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르쿠데아스 없이는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다!"라는 구호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실제로 1986년 12월 그가 경찰청장에 취임했을 때, 당시 공공질서부 장관 안토니스 드로소기안니스는 "새 청장은 소개할 필요가 없다. 모든 그리스인이 그를 알고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판과 반박

물론 비판도 존재했다. 일부는 그가 특히 엑사르히아 지역에서 벌인 소위 '덕성 작전'에서 과도한 경찰 폭력과 잔혹함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르쿠데아스는 이를 단호히 부인하며,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절제된 경찰 작전을 펼쳤다고 강조했다. 또한 MAT가 투입되기 전에는 항상 먼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니콘 아르쿠데아스는 2005년 9월 4일,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