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2세는 연인을 폴란드 왕좌에 앉혀 놓고, 정작 폴란드로부터 독립을 빼앗아 간 통치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여인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러시아와 거의 아무런 인연도 없었죠. 그녀는 1729년 5월 2일, 발트해에 접한 프로이센의 지방 도시 슈체친(Shczecin)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폰 안할트-처르프스트 공작은 서열도 낮고 몰락한 가문 출신의 독일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비상식적으로 무뚝뚝하고, 규율적이며, 밋밋한 사람이라는 점 외에는 다른 귀족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아내로 맞이한 여인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모험심이 강하고 사치를 즐기는 수다스러운 여인이었죠.
요안나 폰 홀슈타인-고토르프 공녀,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녀는 진정한 궁정 생활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정작 처해진 곳은 변두리의 시골이었고, 부모의 뜻에 따라 평생 지루하고 매력 없는 남편 곁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궁전이 아닌 자갈길에 놓인 작은 석조 주택에 사는 가난하고 무미건조한 남자였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는 상상할 수 있는 한 최악의 결혼 생활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이 차이까지 더해지면서 가족의 문제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요안나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는 마흔에 가까웠습니다.
요안나 폰 홀슈타인-고토르프. 자신이 멸시하던 '신데렐라'가 훗날 러시아 황후가 될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악몽 같은 유년기
젊은 요안나는 은퇴 군인 남편과의 관계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을 아들이라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런데 태어난 것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최근 전기를 집필한 로버트 K. 머시(Robert K. Massie)에 따르면, 그녀의 실망은 이만저만하지 않았습니다.
"요안나는 처음부터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딸을 돌보거나 안아 주지 않았고, 요람 곁에 앉아 있는 일도 없었다. 아무런 미련 없이 아기를 하녀와 유모들에게 맡겨 버렸다."
요안나는 출산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이후 19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이 시간은 아이를 영원히 미워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기에게는 조피아(캐서린이 아니라!)라는 이름이 붙었고, 부모의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훗날 황후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어머니는 나를 거의 존재감 없이 여겼다. 1년 반 후 그녀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를 우상처럼 아껴 주었다. 나는 그저 겨우 용인될 뿐이었고, 아무 이유도 없이 심하게 꾸중을 듣곤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어린 조피아의 양육을 주로 맡은 사람은 프랑스인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카르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했고, 조피아가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사랑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에 이름이 거의 남지 않은 이 여성 덕분에 훗날 황후는 볼테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철학자들과 문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카르델에게 흠이 있다면 딱 하나, 조피아에게 암기를 강요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내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걸 일찍 알아차린 그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암기하라고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오늘날까지도 내가 외워야 했던 구절마다 붉은 줄이 그어져 있는 독일어 성경 번역본이 남아 있다."
못생기고 건방진 말썽꾸러기!
조피아는 교리 담당 목사였던 딱딱하고 완고한 바그너 목사에 대해서는 훨씬 나쁜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그냥 평범한 '눈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유는 그가 자신의 단순한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교리 교사는 회초리로 위협했습니다. 어린 조피아가 '할례'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더욱 격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피아가 가장 힘든 경험을 한 상대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습니다. 요안나는 건방지고 반항적인 아이를 훨씬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결심했습니다. 로버트 K. 머시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요안나는 '이 악마 같은 교만함을 딸에게서 쫓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딸에게 못생겼고 뻔뻔하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조피아는 어른들과 대화할 때 먼저 입을 열거나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집을 방문하는 신분 높은 여인들에게는 무릎을 꿇고 옷자락에 입맞춰야 했다."
소녀 시절의 예카테리나 대제. 얼마 지나지 않아 친숙이 그녀에게 구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이 모든 것은 어린 조피아를 '최고의 아내감'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요안나에게 딸의 하루빨리 결혼하는 일은 절대적인 우선순위였죠. 흥미롭게도 이 한 가지 문제에서 모녀는 완전히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어머니는 원치 않는 아이를 하루속히 내보내고 싶어했고, 딸은 폭군적인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꿨으니까요.
그러나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듯했습니다. 조피아는 별로 예쁘지 않은 편이었던 모양입니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어린 시절 내가 정말로 못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는 말을 참으로 자주 들었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피어나기 시작한 조카
솔직히 그녀는 모든 총각이 홀린듯이 바라볼 만한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변화는 사춘기에 찾아왔습니다. 열세 살 무렵부터 그녀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전기 작가는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조피아 안에서 관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 침대에 앉아 다리 사이에 단단한 베개를 끼우고는 마치 상상 속의 말에 올라탄 듯 '완전히 지칠 때까지 달렸다'."
바로 그 무렵, 조피아의 첫 번째 구혼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그녀의 친숙부 예르기 루트비히였습니다. 나이는 명백히 훨씬 많았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불쾌할 정도로 늙어 보이며 좋은 배필감은 아니었죠. 바로 그 숙부가 "피어나는 조카의 신선하고 순수한 매력에 반해 구혼에 나섰다"고 합니다.
러시아 궁정에서 온 뜻밖의 편지 한 통이 없었다면, 이 결혼은 아마 실제로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요안나는 딸을 내보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짧은 교훈 하나 남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한 결혼은 피하십시오. 독재자와 폭군, 전제 군주는 바로 그런 곳에서 태어나니까요.
출처:
이 웹사이트는 흥미로운 일화와 과거의 놀라운 세부 사항, 옛 신문의 기이한 소식을 다루는 짧은 글을 핵심으로 합니다. 단일 출처를 바탕으로 하며, 읽는 데 3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이번 글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Robert K. Massie, Catherine the Great: Portrait of a Woman, Społeczny Instytut Wydawniczy Znak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