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전 그리스 대통령,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인들은 동서양의 경계를 그렸다”

그리스 공화국 전 대통령이자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안 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인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Prokopis Pavlopoulos) 전 대통령이 살라미스시와 그리스 거주 키프로스인 연합이 공동 주최한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 1821년 그리스 – 투쟁하는 키프로스’ 행사에서 “그리스와 유럽 문명 수호를 위한 살라미스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연설했습니다. 연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라미스시와 그리스 키프로스인 연합의 상징적인 행사에 참여하게 된 만큼, 먼저 우리를 2,500년 전으로 이끄는 역사적 순간의 출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당시 고대 그리스, 엄밀히 말해 그리스를 구성하던 일부 도시국가(폴리스)와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는 ‘서사시적인’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을 불러온 정세의 규모 면에서 진정 ‘서사시적’이었던 것입니다. 마라톤 전투에 참전했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묘비명을 떠올려 보면, 이는 자유로운 그리스인과 전제주의에 뿌리내린 ‘심원한 메도스인’이 ‘마라톤의 숲’에서 정면으로 맞선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모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소위 메도스 전쟁, 즉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은 살라미스 해전이 전쟁의 종결을 결정적으로 확정지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평가의 저울추가 실린 전쟁이며, 오늘날까지도 의심의 여지 없이 역사의 일종의 ‘모태’입니다. 그 결과가 이후 역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역사를 ‘낳은’ 태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명한 명제를 역사학으로 입증하는 일은 무의미하므로, 대표성 하나만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단 한 가지 증언을 소개하겠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마라톤 전투는 군사적 사건으로서 잉글랜드 역사와 관련된 한에서조차 헤이스팅스 전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경구를 남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헤이스팅스 전투는 1066년 10월 14일,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군이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의 앵글로색슨군을 격파하고 노르만 지배를 확립한 전투입니다. 밀이 이 발언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분명합니다. 만약 페르시아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그 여파가 유럽 전역에 미쳐, 애초에 헤이스팅스 전투 자체가 일어났을지조차 극히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

세계사 최초의 동서양 경계

“역사 일반, 그리고 특히 문명사가 보여주듯, 그리스인들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통해 자신들이 창조한 문명, 곧 오늘날까지 우리 공동의 유럽 문화 제1의 기둥으로 서 있는 그 문명을 방어했으며,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이후 고정된 동서양 간의 경계를 설정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이 승리를 통해 자유롭고 창조적인 고대 그리스 정신이,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전제주의를 핵심 요소로 하는 어떠한 비자유적 국가 형태의 정신과도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을 만큼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곧, 자유로운 정신적 창조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토양인 ‘열린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세력에 대한 철저한 반대였던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를 꽃피운 자유의 정신

“자유롭고 구애받지 않으며 창조적인 고대 그리스 정신의 이러한 힘은, 그 다면적이고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헌법적 구조가 어떠한 역사적·정치적 형태로도 완전히 비자유적인 국가 조직, 즉 전제적 전제주의를 본질로 하는 국가 조직과 결코 타협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고대 그리스 정신은 직접민주주의의 ‘부상’을 촉진했고, 특히 고대 아테네의 국가 조직이 직접민주주의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그 창조물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 주장은 당시 동방의 위대한 왕국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페르시아 왕국의 조직과 발전 방식을 살펴보면 역사적·정치적으로 더욱 뒷받침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안타깝게도 전제적 생존의 필요라는 본질적 한계를 부과하는 전제정 아래에서는 진화할 수도, 자유롭게 창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열린 사회’와 ‘닫힌 신분 질서’

“당대의 기준과 동방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가 마라톤과 살라미스의 승리 이후에 이룩한 ‘열린 사회’와, 각 군주에게 제도적·정치적으로 ‘종속된’ 형태로 발전한 동방 왕국들의 사회 구조라는 ‘닫힌 원’ 사이의 대비는, 서방과 동방 사이의 다음과 같은 차이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동방의 전제주의는 앞서 언급한 특성, 특히 자유의 부재로 인해 진정한 ‘사회(society)’의 창조가 아니라 폐쇄적인 ‘신분 카스트’ 위에 세워진 ‘공동체(community)’의 조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적 공존의 조직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원칙들(principles)’에 대한 ‘원리(principle)’로서 관철되도록 허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문명에 남긴 자유의 유산

고대 그리스 정신이 창조의 정점을 향해 열어 놓고 이끈 ‘자유의 길’은, 유럽 문명의 미래를 위해 남긴 값을 매길 수 없는 유산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바와 거의 같은 자유의 본질에 대한 종합적 정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즉, 오늘날 인간의 기본권이 구속 없이 행사될 수 있음을 가장 신뢰할 수 있게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수단인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제도적·정치적 지주가 된 바로 그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