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진주만 기습 80주년: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인 운명의 아침

제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진주만 공습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항공기들이 하와이에 위치한 미국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진주만 해군기지를 폭격했다. 1812년 이후 미국 본토에 가해진 첫 번째 공격이었던 이 사건은 미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기습의 배경: 미일 갈등과 석유 금수 조치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미 1930년대 초반부터 크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 일본의 팽창주의 정책에 맞선 미국은 경제 제재로 대응했고, 1941년 여름에는 대일 석유 수출 금수 조치를 단행하며 경제전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일본 입장에서 석유 금수는 적대 행위나 다름없었다. 일본은 미국에게 뼈아픈 교훈을 주고 싶었지만, 동시에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결과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영토는 공격 대상에서 제외했다.

작전의 목표: 함대 괴멸과 자원 확보

일본 군부는 진주만에 대한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 태평양 함대의 전력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태평양의 풍부한 자원, 특히 네덜란드령 동인도(오늘날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접근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 유럽 전선에서는 소련군이 독일군의 모스크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에 나선 상황이었다. 독일 점령하의 그리스는 악몽 같은 겨울을 보내며 식량 부족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롬멜 장군이 여전히 연합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공격 명령과 양측의 전력

산시메라(Sansimera)의 보도에 따르면, 진주만 공격 명령은 1941년 12월 1일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작전 총지휘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에게 하달되었다. 하와이 오아후섬에 위치한 진주만에는 군함과 호위함 등 104척이 정박해 있었고, 항공기 390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해군은 허즈번드 키멜 제독이, 육군은 월터 쇼트 중장이 지휘했다.

한편 항공모함 6척이 이끄는 일본 기동부대는 미군의 감시를 피해 서진했고, 하와이 제도 북쪽 275해리 지점까지 도달했다. 일본군은 이 지점에서 여러 차례의 공중 파동으로 나눠 진주만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12월 7일, 재앙의 시작

12월 7일 새벽 3시 42분, 미군 소해정 '콘도르'호가 진주만 입구 바깥에서 일본의 소형 잠수함을 발견했다. 이 잠수함은 오전 6시 37분 구축함 '워드'호에 의해 추격당해 격침되었는데,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쏜 첫 포탄이었다. 이 잠수함은 공습 당시 미군 함선을 공격할 계획이었던 5척의 소형 잠수함 중 하나였다.

일본군의 본격적인 공격은 오전 7시 48분, 후치다 미쓰오 소좌가 지휘하는 첫 번째 공격 편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공격 당일은 일요일로 진주만 곳곳은 평화로운 휴일 분위기였다. 미군 레이더는 일본기를 탐지했지만, 담당 장교들은 B-17 폭격기 편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이들을 아군으로 착각했다.

미군은 말 그대로 잠든 사이에 기습을 당했다. 사보타지(파괴 공작)를 우려해 비행기들을 나란히 주기시켰던 탓에 일본군의 공격에 지상에서 속수무책으로 파괴되었다. 일본기들이 투하한 폭탄과 어뢰는 수많은 군함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시마자키 시게카즈 제독이 이끄는 두 번째 공격 편대가 이어졌지만, 이때는 미군도 어느 정도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피해 규모: 90분간의 참화

약 90분간 이어진 일본군의 공습으로 미군 장병과 민간인 2,386명이 목숨을 잃었고 1,139명이 부상당했다. 항공기 188대가 파괴되고 155대가 손상되었으며, 함선 5척이 침몰하고 13척이 작전 불능 상태에 빠졌다. 반면 미군은 조선소와 유류 저장고 등 물자 보급 시설은 온전히 지켜냈다. 일본군의 손실은 항공병 55명과 선원 9명 등 총 64명, 항공기 29대, 소형 잠수함 5척이었다.

'잠자는 거인'의 각성

예상치 못한 기습은 미국 여론을 하나로 묶었고, 중립 노선에 대한 어떤 고민도 일거에 지워버렸다. 다음 날인 12월 8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12월 7일은 미국 역사상 치욕의 날로 남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의회는 평화주의 공화당 의원 재닛 랭킨 단 한 명의 반대표를 제외하고 만장일치로 추축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통과시켰다. '잠자는 거인'은 마침내 깨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의 균형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군사적으로 보면 이번 공습은 미국에 치명적이지 않았다. 일본군이 미군의 보급 시설 파괴라는 핵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 번째 공격 파동의 목표였으나, 야마모토 제독의 망설임으로 끝내 실행되지 않았다.

또한 항공모함과 잠수함도 무사히 남았다. 이들은 이후 태평양 전쟁의 주역이 되며 초기 일본의 우위를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중립 성향의 미국인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처칠이 바라던 대로 국가를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습을 방관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희생양이 된 지휘관들

진주만 참패의 책임을 가장 먼저 물은 것은 현지 지휘관들이었다. 키멜 제독과 쇼트 중장은 직위에서 해임된 뒤 곧바로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워싱턴 상층부의 잘못된 판단과 일본군의 움직임을 놓쳐버린 정보기관의 무능을 뒤집어쓴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많다.

영화 속 진주만

  • 《토라! 토라! 토라!》(1970) – 미일 합작. 리처드 플레이셔, 후카사키 긴지, 마스다 도시오 감독. 출연: 마틴 발샴, 조지프 코튼, 제이슨 로버즈. 상영 시간 144분.
  • 《진주만》(2001) – 미국. 마이클 베이 감독. 출연: 벤 애플렉, 조시 하트넷, 케이트 베킨세일. 상영 시간 183분.
  • 《여기서 영원까지》(1953) – 미국. 프레드 지네먼 감독. 출연: 버트 랭커스터, 데보라 카, 몽고메리 클리프트. 상영 시간 1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