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그리스 고대사의 재발견: 선형문자 B가 밝힌 미케네 궁전 노동자들의 운명

1870년 무렵까지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호메로스가 그려낸 세계는 순수한 허구라며 코웃음을 치곤 했습니다. 조지 그로트(George Grote)조차 그리스 역사의 출발점을 최초 올림픽 경기가 열린 기원전 776년으로 잡았고, 고대에서 전해 내려오는 모든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에 불과하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노아·미케네 문명의 재발견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의 재발견은 그리스 세계 원사(原史) 시대, 즉 대략 기원전 1900년~900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소급적으로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의 발굴 이후로는, 기원전 2천 년대 에게 해의 세련된 문명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장면들 속에 강하게 울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슐리만이 처음 미케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오랐을 때, 그는 자신이 아가멤논의 궁전을 찾아냈다고 확신했습니다. 얼굴에 금박 가면을 쓴 채 안장된 남성들의 무덤 일곱을 발견하면서 그의 확신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리스 고대사의 재발견: 선형문자 B가 밝힌 미케네 궁전 노동자들의 운명

물론 슐리만의 추정은 틀렸습니다. 그 무덤들은 트로이 전쟁의 추정 연대보다 훨씬 앞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케네 성채는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미케네 기념물입니다. 전통에 따르면 아트레우스의 후손인 아트리데스 가문이 이곳에서 통치했고, 트로이를 정복하러 떠난 군대 역시 바로 이곳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스 고대사의 재발견: 선형문자 B가 밝힌 미케네 궁전 노동자들의 운명

에게 세계의 다섯 가지 문자

호메로스를 진정한 역사적 증거로 회복한 것 못지않게, 역사학 패러다임 전환의 또 다른 핵심 열쇠는 다양한 문자 체계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본격적인 문자 이전인 기원전 3천 년에는 도기나 석재에 인장과 여러 종류의 기호가 사용되었는데, 이를 각각 도공 기호(potter's marks), 석공 기호(mason's marks)라 부릅니다. 이 기호들의 의미는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기원전 2천 년에 이르러서야 크레타에서 일련의 기호들이 조합되어 의미를 이루는 방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비로소 사람들이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에게 세계에서 확인된 문자는 동방의 문자들과는 독립적이면서 서로 연관된 계열을 이루며,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피에르 카르리에 Pierre Carlier의 분류, 2014):

  • 미노아 상형문자 : 아서 에번스(Arthur Evans)가 기호의 추상성 때문에 명명한 체계로, 이집트 상형문자와는 별개입니다.
  • 크레타 선형문자 A(Linear A) :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미노아 문자입니다.
  • 선형문자 B(Linear B) : 마이클 벤트리스(Michael Ventris)의 연구 덕분에 고대 그리스어의 한 형태와 연결됨이 밝혀졌으며, 미케네 문화에 관한 지식의 대부분이 이 문자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 키프로스-미노아 문자 : 기원전 1500년~1200년 사이 키프로스에서 사용되었으며, 선형문자 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 고전 키프로스 음절문자(기원전 8~3세기) : 그리스어와 함께 아마툰테 인근에서 사용된 이질적인 키프로스어에도 쓰였습니다.
그리스 고대사의 재발견: 선형문자 B가 밝힌 미케네 궁전 노동자들의 운명

여기에 유명한 파이스토스 원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문자는 위 다섯 가지 체계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일종의 '단독 사례(hapax)'로 남아 있습니다. "원반이에게에서 제작되었다는 증거도 없고, 청동기 시대 유물이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 역사적 좌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1908년 어느 저녁, 파이스토스 발굴을 담당한 이탈리아 고고학자에게 미노아 유물… 그리고 헬레니즘 유물들과 함께 전달되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제안된 모든 해독은 지극히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피에르 카르리에, 『호메로스와 역사』, Carocci, 2014, 43쪽)

선형문자 B 점토판이 들려주는 일상의 목소리

에게 문자 연구가 그리스 역사학에 가져온 거대한 변화는 분명하지만, 과거를 조망하는 데만 만족하고 디테일을 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세부 중 하나는 궁전에서 살던 여성들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미케네 학자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화재 직전의 원래 상태대로 문서 보관함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화재 덕분에 점토판이 구워져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같은 서기관이 작성한 문서 묶음을 재구성해 목록화하고, 어떤 정보가 저장되어 있었는지 밝히려 노력합니다.

필로스(Pylos)에서 출토된 선형문자 B 점토판 분석은 당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창을 열어 줍니다. Aa 계열 문서에는 자녀를 둔 여성 약 800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의 직무 배치는 특히 직조 분야에서 뚜렷한 분업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Ab 계열 문서에는 이 여성들이 노동의 대가로 무화과와 밀의 월간 배급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그들이 궁전 경제에 깊이 의존하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스 고대사의 재발견: 선형문자 B가 밝힌 미케네 궁전 노동자들의 운명

고도의 중앙집권 사회, 그리고 이름 없는 노동자들

이 노동자들이 일했던 경제적 맥락은 적어도 골격 수준에서 윤곽을 그릴 수 있습니다. 미케네인의 사회 조직은 고도로 중앙집권적이었습니다. 그 정점에는 왕인 와낙스(wanax)가 있었고, 그 뒤를 군대를 지휘하는 라와게타스(lawaghetas)가 따랐습니다. 그 아래 귀족과 사제 계층이 있었습니다. 왕은 군 통수권자와 마찬가지로 테메노스(temenos)라 불리는 토지를 소유할 자격이 있었으며, 이 토지의 관리와 운영은 궁전 건축물이 관장했습니다. 촘촘한 관료제를 통해 궁전은 목축(특히 양), 양모·올리브유·향료 생산, 금속 공예, 농업에 이르기까지 생산 활동 전반을 통제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습니다. 필로스 점토판에 따르면 남성과 청소년은 노동자와의 친족 관계, 즉 '~의 아들', '~의 딸'이라는 형식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직업 자격이 자녀가 속한 신분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였음을 시사합니다. 게다가 이 여성들 상당수가 밀레티아(Milesie), 렘니아(Lemnie), 크니디아(Cnidie)처럼 민족명으로 지칭되었기 때문에, 아나톨리아 해안에서 포획되어 노동력으로 사용된 노예 혹은 전쟁 포로였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연구가 닿은 지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궁전 노동자들의 최후의 운명에 대해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