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은 왜 미라를 만들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이 왜 미라 제작(뮤미피케이션)을 했는지, 그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비교적 정확한 기록을 남긴 인물은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입니다. 그는 신분과 재산 수준에 따라 미라 제작 방식이 달랐다고 전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시신을 해부하고 내장을 적출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소금에 건조하는 간소한 방식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고고학의 발전 덕분에 이러한 통념은 상당 부분 수정되었습니다. 실제로 미라 제작은 생각보다 계급에 따른 차등이 적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장과 뇌가 시신 안에 그대로 남겨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복부 절개를 통한 내장 적출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정교한 작업에는 숙련된 장의사들의 손길이 필요했으며, 덕분에 유해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의외로 명확합니다. 몸은 영혼의 집이며, 저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행을 위해 반드시 온전하게 보존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류 계층에게 미라 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시신이 조금이라도 부패하면 불멸의 힘이 여정을 완수하지 못하고 저편에서 영혼과 재회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카, 바, 아흐 — 세 가지 생명력
고대 이집트인들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 안에는 세 가지 생명력이 공존했습니다. 바로 카(Ka), 바(Ba), 그리고 아흐(Akh)입니다. 핵심인 카는 인간 존재의 축으로서 영혼과 정신의 중심이며, 바는 힘과 개체성을 상징합니다. 아흐는 세 번째 요소로, 사후에 비로소 최대치로 발현된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자의 심판 — 42명의 판사 앞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만이 아니었습니다. 영혼 역시 순수하고 온전한 상태로 내세에 도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고인은 저승에 도착하면 사자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먼저 힘과 용기의 시험을 통과한 뒤, 신 아누비스의 인도를 받아 오시리스와 42명의 판사 앞에 서게 됩니다.
숫자 42는 우주 질서와 정의, 진실의 여신 마아트(Maat)의 42가지 규율과 연결됩니다. 이 규율은 살아가면서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일종의 '계명'이었죠. 42명의 판사는 동시에 42가지 죄를 상징했습니다. 긴 줄로 나란히 앉은 판사들 앞에서 고인은 각 판사가 관장하는 죄를 하나하나 부인해야 했습니다.

프시코스타시아 — 심장을 다는 최후의 시험
그다음은 가장 어려운 시험, 프시코스타시아(psychostasia), 즉 심장 계량입니다. 고인은 무죄를 선언한 뒤 자신의 심장을 저울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렇다면 저울 반대편에는 무엇이 놓일까요? 바로 마아트 여신의 깃털입니다.
신 토트(Thoth)가 판결을 기록하는데, 저울이 잘못된 쪽으로 기울어 유죄 판정을 받으면 영혼은 '포식자' 아므트(Ammit)의 먹이가 됩니다. 악어, 사자, 하마 — 이집트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들의 모습이 뒤섞인 괴물이었죠. 반면 무죄 판정을 받으면 영혼은 빛나는 오시리스의 왕국으로 나아갑니다. 지상의 삶이 그대로 이어지는, 곧 영혼의 구원이었던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동물들도 한 명의 군주다운 '영혼 구원' 장례를 받았습니다. 세라페움(Serapeum), 부바스테이온(Bubasteion), 아니비온(Anubieion) 같은 유적이 그 증거입니다. 1850년 이집트학의 선구자이자 카이로 박물관과 이집트 고대 유물국의 창립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가 발굴한 세라페움에는 아피스 황소들이 안장되어 있었는데, 이 황소들은 실제로 파라오처럼 매장되었습니다. 내장을 적출하고 미라를 만들었으며, 황소 형상의 카노포스 단지와 우샵티(ushebti)까지 함께 붙였습니다. 부바스테이온은 고양이의, 아니비온은 자칼의 안식처였습니다.
동물들이 이런 대접을 받은 이유는 신들과 동일하게 숭배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들이 종종 특정 동물과 결부되어 그 살아 있는 화신으로 여겨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에는 무게가 있을까?
1901년 4월,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기묘한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던컨 맥두걸(Duncan McDougall) 박사는 임종을 앞둔 환자 여섯 명의 시신을 임종 전, 임종 중, 임종 후에 걸어 무게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망 후 몇 초 만에 몇 그램 가량 무게가 감소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험은 반복되었고, 1907년 《뉴욕 타임스》는 환자가 숨을 거두는 순간 저울이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던 순간을 보도했습니다. 물론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 무게 감소를 일으켰을까요? 체액, 폐 속의 공기 등 온갖 가설이 검토되었지만 아무것도 결과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실험 결과를 비교 분석한 끝에 맥두걸 박사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21그램이다." 이 연구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바로 2003년 작 《21그램》입니다.
한편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는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지닌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 실험은 과학적 방법론 면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혼의 무게'라는 주제가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관부터 현대의 대중문화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참고 자료
밀라노 대학교 이집트학 강좌
밀라노 대학교 '파라오 시대 이집트 문서 및 기록 보관소' 연구실
헤로도토스, 『역사』 제2권 (미라 제작)
영화 《21그램》(2003년, 맥두걸 박사의 연구를 소재로 함)
프시코스타시아, 『사자의 서』 제12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