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서부극이 그려낸 무법자의 이미지는 로맨틱했습니다. 주인공은 산적이었고, 보안관은 철도 회사의 돈으로 고용된 범죄자였으며, 해적은 어떤 주인도 없이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며 원하는 곳으로 가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 너머에서, 무법자(outlaw)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이자, 적어도 두 세기 전부터 사라져버린 세계에만 존재했던 극도로 복잡한 법적 지위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무법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용어의 본래 의미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문명 국가의 법질서를 거스르는 범죄 체제에 살지 않는 한, 한 개인을 법 바깥에 놓아버리는 일은 현대·근대 세계에 확립된 일련의 원칙들 때문에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법자란 누구였고, 왜 사라졌는가?
원래 '무법자'는 단순히 법과 합법성을 어기며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법 바깥에 놓인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무법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일종의 "법적 파문(excommunication)"과 같았습니다. 법 밖에 놓인다는 것은 어떠한 법적 권리도 상실한다는 뜻이었고, 누구든 무법자에게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죽이고, 노예로 삼는 것조차 가능했습니다.
이 고대의 법적 개념은 근세 시대, 특히 해적과 관련해 폭넓게 사용되었지만, 30년 전쟁의 종결을 알린 베스트팔렌 조약(1648)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베스트팔렌 조약과 근대 국제 질서의 탄생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 각국의 법체계, 국가 그리고 국가 간 관계에 중대한 변혁의 과정을 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 조약을 통해 유럽에는 서로 연결된 여러 법적 원칙들이 확립되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민족 국가(nation state)의 정의입니다. 국가는 더 이상 군주가 그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영토의 집합이 아니라, 명확히 획정된 국경으로 구분된 정밀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 경계 안에서는 군주, 국가 대표 기관, 제도, 그리고 주민들 사이의 특정한 법률과 권력 관계가 적용됩니다.
민족 국가를 구획하는 이 인공적 경계들은 각국이 서로의 국경을 상호 인정함을 의미하며, 그 결과 군주와 그들의 법정의 권력에는 한계가 부과되었습니다. 이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그 안의 세력 균형에, 그리고 무엇보다 법과 무법자의 개념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다른 나라의 인정을 받아야만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이론적 개념이 열리면서, 그 나라의 법은 그 나라의 국경 안에서 유효하며, 그 경계 안에서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법과 권리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의 최초의 태동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국가의 법이 보편적 가치를 지니게 되면, 질서 있는 체계 안에서 특정인을 법 바깥에 놓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집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실천의 차원에서 이 야만적이고 미개한 관행이 완전히 버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신대륙의 해적과 유럽의 육적(陸賊)
무법자의 개념과 그에 딸린 법적 지위는 해적 토벌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 "신대륙"에서 계속 생존했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소멸의 길을 걷습니다. 유럽에서는 "육지의 해적", 즉 산적들이 설 자리를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수 세기 동안 유럽의 시골을 유린하고 마을들을 약탈해 온 약탈 무리들은 전시에는 군주를 위해 싸우는 군사 회사, 민병대,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평시에는 다른 종류의 활동에 종사했습니다. 그러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이런 활동은 점차 사라집니다. 그 평화의 결과 중 하나가 유럽 군대의 재편이었기 때문입니다.
30년 전쟁까지는 상비군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대부분 용병으로, 때때로 어느 진영에 서고 누구와 함께 싸울지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여러 서약에 따라 움직였지만, 무엇보다도 토지와 화폐로 표현되는 더 큰 포상의 약속에 끌렸습니다.
베스트팔렌 이후 유럽 민족 국가들에서 상비군의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하고, 이미 고대 로마에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일어난 것처럼, 최고 입찰자의 돈에 좌우되는 용병이 아닌, 급료를 받는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국가의 영구 군대가 만들어집니다.
유럽 대륙에서 군벌과 약탈자들이 감소한 것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무법자, 즉 법 바깥에 놓인 개인이라는 지위가 잊혀지는 데 일조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무법자 선고의 부활 시도
프랑스 혁명기, 정확히는 혁명과 "테러의 시대"(단순화를 허락해 주십시오) 사이에서 무법자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었습니다. 혁명의 적들을 법적으로 파문하자는 제안, 쉽게 말해 구체제(Ancien Régime)의 지지자들을 무법자로 선언하자는 논의가 실제로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결국 기각되고, 재산 몰수와 사형 선고를 포함한 온건한 처벌 방식이 채택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인류의 적"
같은 문제는 약 1세기 반 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검토되었다가 기각된 선택지 중에는 나치 전범들의 법적 지위 자체를 박탈하자는 안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원칙이 제기되었습니다. 나치 전범들을 무법자로 만들어 짐승처럼 취급하는 것은, 나치 전범들이 강제수용소와 절멸 수용소에서 저지른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법이 적용됩니다. 라틴어 "hostis humani generis"(인류의 적)의 원칙과 해적에 대한 법을 바탕으로, 그때부터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라 불리게 될 개념이 정의된 것입니다.
그 후에도 남은 무법자의 흔적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무법자"의 지위는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공식적으로 소멸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세계 무대에는 새로운 대륙의 행위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날의 미합중국입니다. 이곳에서는 법 밖의 지위가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그것도 "와일드 웨스트(Wild West)"의 농촌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법질서로부터의 파문이자 일체의 권리 상실을 의미하는 무법자의 지위가, 20세기 전반 나치·파시즘 체제와 소련에서 산발적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국가와 당의 "적"으로 낙인찍힌 자들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같은 일은 20세기와 그 이후의 모든 독재 정권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더 읽을거리
J. 엘스터(J. Elster), 『전환기의 정의(Closing the Accounts: Justice in Political Transitions)』, 2008, 이야기출판사(il Mul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