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가이우스 그라쿠스 암살, 플루타르코스가 전하지 않은 또 다른 버전

가이우스 그라쿠스 암살, 플루타르코스가 전하지 않은 또 다른 버전

가이우스 그라쿠스 암살 장면 (화가 펠릭스 오브레 작)

플루타르코스의 기록만이 답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이야기는 가이우스 그라쿠스 암살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신뢰받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버전인 것은 아니다. 당대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벌어진 그의 최후는 또 다른 모습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주인을 끌어안고 최후까지 지킨 노예, 필로크라테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1년 로마의 호민관이었던 가이우스는 충직한 노예 필로크라테스와 함께 산 채로 붙잡혔다. 필로크라테스는 사랑하는 주인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그를 힘껏 끌어안고 몸으로 막아섰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적들은 필로크라테스를 여러 차례 찔러 죽인 뒤에야 비로소 가이우스를 해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애도조차 허락되지 않은 미망인, 리키니아

그라쿠스 형제의 정적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이우스의 아내 리키니아는 남편을 애도하는 것조차 금지당했으며, 나아가 관청은 그녀의 지참금마저 몰수해 버렸다고 한다. 승자의 보복이 죽음 이후의 명예와 가족의 슬픔까지 짓밟았던 셈이다.

가이우스와 티베리우스, 두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과 함께 로마는 가장 빛나던 인물이자 정치가 두 명을 잃었다. 개혁을 향한 그들의 도전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로마 정치사에 남긴 흔적은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