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소년의 머리는 난로 뒤에 있었다
1918년 9월, 경찰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17세 소년 프리델 로테(Friedel Rothe)를 찾기 위해 하노버의 육류 상인 프리츠 하르만(Fritz Haarmann)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소년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방문으로 프리츠에게 9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 이유는? 경찰관들이 그를 13세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집안을 좀 더 샅샅이 뒤졌다면, 난로 뒤에 놓인 종이봉투 안에서 프리델의 머리를 발견했을 것이다. 바로 '하노버의 정육점 주인'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어두운 그늘 속에서 자란 아이
프리츠는 1879년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카를 하르만(Friedrich Heinrich Karl Haarman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여섯 자녀 중 막내였으며, 기관차 기관사였던 아버지는 충동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남편과의 험난한 관계를 아들에게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에 프리츠를 몹시 예뻐하고 과잉보호했다.
프리츠 자신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으며, 이러한 성향은 학교 생활 초반의 경험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친구들은 그의 '여성스러운' 행동을 조롱했고, 한 교사는 어린 프리츠를 성적으로 학대하기까지 했다. 이 시기의 트라우마는 소년의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곧 독일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 중 한 명을 탄생시키는 어두운 길로 이끌었다.
16세가 되던 해, 프리츠는 첫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어린 소년들을 희생자로 삼아 어두운 지하실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처음으로 법정에 섰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치의 정신질환자라고 판단해 정신병원 수용을 명령했다. 그러나 프리츠는 그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기회가 되자마자 탈출한 그는 '평범한' 삶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하노버의 정육점 주인의 아파트가 있던 건물
그는 에르나 뢰베르트(Erna Loewert)와 약혼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행복하지 못했다. 프리츠는 늘 연인에게 질투를 부렸고, 이로 인해 수많은 다툼과 불편한 상황이 이어졌다. 게다가 에르나는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결국 낙태를 선택했다.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약혼은 파국으로 끝났다.
직업 생활 역시 프리츠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군 복무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다른 직장들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끊임없는 절도와 각종 경미한 범죄 탓에 190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는 지역 교도소의 단골손님처럼 드나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은 전혀 새롭고 극도로 혹독한 현실과 마주했다. 프리츠는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지역 시장에서 고기와 옷을 팔기도 했지만, 특히 수익이 좋았던 것은 다름 아닌… 경찰 밀정 노릇이었다. 화려한 전과 덕분에 하르만은 훌륭한 정보원이 될 수 있었다. 서류상 '동성애자'로 낙인찍혔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츠는 이 협력 관계를 통해 자유로운 활동 반경을 확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쇄살인자로서의 활동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법 바깥의 삶
하르만의 첫 희생자는 앞서 언급한 1918년의 프리델 로테였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멋쟁이 차림의 한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는데, 그 묘사는 프리츠와 일치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하르만은 13세 소년과의 매춘 혐의로 복역한 뒤 다른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은 채 출소했다.
1919년, 프리츠는 18세의 한스 그란스(Hans Grans)를 만났고, 그는 빠르게 그의 연인이자 범행 동반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주로 기차역 주변에서 가난한 소년들을 표적으로 삼아 사냥을 벌였다. 우아한 차림새와 호감 가는 태도로 청소년들의 신뢰를 얻은 하르만은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며 도움을 제안했다. 소년들을 아파트로 유인한 뒤 성폭행하고 살해한 다음, 시신을 토막 냈고 고기(남은 옷이나 잡동사니도 함께)를 지역 시장에서 판 것으로 추정된다. 뼈는 라이네 강에 버렸다.

프리츠의 아파트에서는 핏자국과 함께 실종된 소년들의 옷과 소지품이 발견되었다.
훗날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에서 프리츠는 시신 처리 방식을 이렇게 고백했다. "배에 두 번 칼집을 넣고 내장을 양동이에 담았다. 피를 빼내고 뼈를 부쉈고, (…) 심장, 폐, 콩팥을 꺼내 잘라 양동이에 넣었다. 뼈에서 고기를 발라냈다."
그의 범행은 5년간 이어졌고, 이 기간 동안 최소 27명을 살해했다. 하지만 하르만 본인은 나중에 희생자가 그보다 훨씬 많다고 자신감 있게 말하기도 했다. 젊은 소년들의 기이한 실종 사건이 경찰에 접수되었고 프리츠의 연루를 시사하는 단서들도 있었지만, 수사 당국은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밀정을 기꺼이 조사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곧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섬뜩한 발견
1924년 5월 17일, 라이네 강변에서 놀던 아이들이 섬뜩한 것을 발견했다. 강가에서 사람의 두개골을 찾아낸 것이다. 초기에 경찰은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며 의료계 '장난꾸러기'나 도굴꾼의 소행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유해가 발견되었고, 마침내 최소 20명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인골의 정강이뼈와 갈비뼈가 담긴 자루가 발견되었다.
이제 경찰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흔적과 증거들은 프리츠 하르만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의 아파트에 대한 압수수색이 명령되었고, 그곳에서 핏자국과 함께 실종된 소년들의 옷과 소지품이 발견되었다. 경찰 밀정은 체포되었다.

형사들에 호위되어 재판장으로 향하는 하노버의 정육점 주인
'하노버의 정육점 주인'의 재판은 도시 주민들은 물론 국제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거의 200명의 증인이 신문되었다. 살인범의 이웃, 그의 손님들, 그리고 살해당한 청소년들을 알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예정되어 있던' 희생자들도 찾아냈다. 즉, 그가 집으로 초대해 함께 잠자리를 같이한 뒤 다음 날 천천히 보내준 소년들이었다.
법정에 제출된 증언 중에는 프리츠가 돼지고기로 판매한 고기에서 기묘한 맛이 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르만 본인은 '인육' 거래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증언 이후 독일 전역에서 고기 판매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결국 45세의 프리츠는 단두대에 의한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공범 한스 그란스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하르만은 형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항소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변명으로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할 뿐이었다. 형은 1925년 4월 15일 집행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하노버의 정육점 주인의 머리는 포르말린에 보존되어 괴팅겐 해부학 연구소로 옮겨졌고, 최근에야 화장되었다. 프리츠의 희생자 최종 숫자 또한 끝내 확정되지 못했다. 그 자신은 최대 40명이라 주장했고, 동반자는 나중에 무려 70명에 이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범죄의 역사는 프리츠 랑(Fritz Lang)과 그의 1931년 영화 《M》의 영감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 자료
- Poppek, 20th century serial killers true stories, G + J Books, 2013.
- https://tvn24.pl/magazyn-tvn24/mogl-bezkarnie-zabijac-jako-informator-dla-policji-byl-zbyt-cenny,48,1085 (열람일: 2021.01.18.)
- https://www.arte.tv/pl/videos/069116-007-A/fritz-haarmann-wampir-z-republiki-weimarska/ (열람일: 2021.01.18.)
- https://www.youtube.com/watch?v=x-zfB7VMtGw (열람일: 2021.01.18.)
- https://www.archiwumzbrodni.pl/byl-popularnym-sprzedaz-dopoki-nie-odkryto-ze-jego-mieso-jest-ludzkie/ (열람일: 2021.01.18.)